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푸른 Feb 05. 2020

Episode 05. 원래부터 이렇게 바쁜 사람이었나

나를 찾아 떠나는, _Lisbon(01.11. Sat.)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난 여행인데 일상보다 바쁜 날의 연속이었다. 잠깐 쉴 틈도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여유로운 여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휴식을 취하지 않고 걸어서 그런지 발가락이 아팠다. 그래도 아무 말 없이 언니들 옆에서 걸었다. 각자 여행하는 방식이 다른 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목적지를 향해 갈 때마다 재잘거리던 나는 어느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언니들이 사진을 찍고 있을 때 나는 우두커니 서서 찍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여행 온 사람들과 우리는 같지만 달랐다. 낯선 나라를 여행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빠른 속도로 여행지를 돌아본다는 점에서 달랐다. 다른 여행자들은 관광지에 도착해서 풍경과 건물의 모습을 찍으며 한참 동안 같은 곳에 앉아 있기도 했다. 우리는 각자 사진을 찍고 잠깐 멈춰 볼 것을 보고는 금세 빠져나갔다.



바쁜 와중에 잠시 멈춰 담은 리스본의 모습. 처음 보는 곳인데도 낯설지가 않다. 땡땡 종을 울리며 지나가는 트램이 정겹다.


이 같은 여행 방식은 벨렝 지구를 갈 때까지 이어졌다. 식당에 가려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니 숨이 턱턱 막혔다. 아침부터 낮까지 걷다가 식당에 도착하니 졸음이 쏟아졌다. 밥을 먹고 나니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버스를 타고 벨렝 지구에 도착한 우리는 수도원과 성당을 둘러보고 유명한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 가게를 찾아갔다. 3명의 사람으로 유명한 가게였다. 그 3명은 에그타르트 레시피를 가지고 있는데 각자의 비법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기 위해 비행기도 따로 타고 다닐 정도인 사람들이었다. 레시피의 비밀로 만든 에그타르트의 맛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여행자들과 현지인들이 한데 섞여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포장하는 줄에 선 우리는 지친 상태였기에 말없이 차례를 기다렸다.


1837년에 생겨 지금까지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에그타르트 가게. 사람들 틈에서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한국에서 먹던 에그타르트 맛과 얼마나 다를까.


에그타르트를 받자마자 앉을 곳을 살펴봤다. 어디를 가도 자리가 없었다.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야외 테이블이 놓여 있는 곳으로 가 앉았다. 간이 카페가 있는 곳이었다. 앉아만 있는데도 누워서 쉬는 듯이 편안했다. 드디어 내 발가락도 휴식을 취했다. 오래간만에 즐기는 여유였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쏟아지는 햇살을 만끽했다. 눈이 부셨지만 따뜻함과 함께 피로가 나를 덮쳐 졸음이 쏟아졌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러다 벨렝 탑을 보러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아무리 버스를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언니들과 나는 버스 노선을 확인했다. 분명히 벨렝 탑으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오는 버스마다 타려고 시도했지만 운전사는 손만 내저었다. 우리는 말 그대로 당황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왔다갔다거릴 뿐이었다. 1시간 정도 기다린 우리는 걸어갈까 했지만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 조금만 더 있어 보기로 했다.

햇빛에 물들어 색깔이 변하고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지켜보는 것이 여행의 묘미인 듯하다. 평소라면 눈여겨 보지 않았을 것이기에 더 그런 듯하다.


갑자기 어디선가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가 궁금해서 두리번거렸다. 버스 정류장 뒤편에 한 엄마가 아들을 붙잡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오줌을 누이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 깜짝 놀라 얼른 눈을 돌렸다. 때마침 노을이 지고 있던 터라 내 관심은 풍경으로 옮겨갔다. 석양이 지는 모습의 아름다움에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그때 버스 한 대가 지나갔다. 벨렝 탑으로 가는 버스였다!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치려 하자 우리는 냅다 달렸다. 언니들 중 한 명이 뛰어가다 문제의 오줌을 밟고 말았다. 급하게 뛰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웃음이 터져버렸다. 우리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버스를 탈 때까지 웃고 있었다. 하마터면 숨이 넘어갈 뻔했다. 오줌을 밟은 언니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해준 언니를 몰래 마음속으로 고마워했다. 급했던 우리가 조금이나마 여유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들과 다니며 생기는 이런 작은 일화가 기억에서 오래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나게 웃어젖히던 나와 언니들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평범한 모습인데도 내 눈을 사로잡는다. 크레인이 있다고 해서 아름다움을 헤치지 못한다. 알록달록한 집 여기저기에서 툭 튀어나와 있는 크레인이 집과 어우러진다.
여행자들과 현지인들이 섞여 사진을 찍거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나 또한 그들 틈에 섞여 자연스러운 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우여곡절 끝에 벨렝 탑에 도착한 우리는 각자 핸드폰을 들고 카메라에 모습을 담았다. 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한 요새로 쓰였던 벨렝 탑은 어느새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장소로 변해 있었다. 벨렝 탑은 공원을 통과해 들어와야 했다. 공원에는 여행자들도 많았지만 산책을 즐기는 현지인들도 많았다. 나와 언니들은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언니들이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동안 슬쩍 녹음기를 꺼내 들었다. 이 순간을 소리로 담아가고 싶었다. 소리를 들으며 순간의 기억을 회상하고 싶었다. 공원에서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소리,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내지르는 소리, 물속에 살짝 잠겨있는 벨렝 탑 주변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소리를 녹음했다. 조용히 앉아서 물이 모래에 부딪치는 소리를 녹음했다. 가족과 바닷가에 놀러 가면 모래사장에 쭈그려 앉아 파도 소리를 듣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녹음하면서 여유로워졌다. 잠깐 동안의 여유를 마음껏 만끽했다. 언니들도 마찬가지였다. 핸드폰을 집어넣고 지친 다리를 쉬게 하고 있었다. 




적들의 침입을 막으며 외로이 서 있었을 탑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 되었다.



소소한 여유를 느끼고 있는 순간이 좋다. 여행에 와서야 깨달았다. 나는 원래부터 바쁜 사람이었다. 여행하는 동안 쉬지 않고 걸은 덕분에 알게 되었다. 매일 성장하는 것에 목표를 두었던 나는 정신없이 할 일을 해나가느라 몰랐던 것이다.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가서 내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행에서 즐겼던 여유를 말이다. 하루하루를 나아가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강박감, 나를 지치게 하는 강박감에서 벗어나게 하는 여유를.  


       

이전 04화 Episode 04. 함께하는 여행의 의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