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줘야 할 때와 아닐 때
나의 호의를 누군가가 극구 거절할 때
거절당하는 사람도 서운하구나를 느꼈다.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 "플란다스의 개"에서
배두나 배우가 지하철에서 아이를 업은 방판판매 하는 여자에게
자리를 내어주려고 일어나서 자리를 강권할 때
그 배려가 오히려 그 당사자한테는 그리 기쁘지 않은 배려여서
그사람은 오히려 소리치면서 다른 칸으로 가버린다.
이 장면을 보면 꼭 좋은 의도에서 시작한 호의도
받는 사람에 의해서 완전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동진 평론가가 말한 적이 있다.
호의도 가끔은 얼마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었다.
주위에 친한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내 딴에는 하는 배려들이
한 번 두 번 거절당하면 아. 이 사람이 이걸 불편하게 생각하는구나를 느껴서 더 이상 강권하지 않았다.
최근에 나온 "은중과 상연"이라는 드라마에서도 은중이 매달 보내주는 월세를 받으면서
상연은 "너만큼 나를 혐오스럽게 만드는 사람은 없다"라고 그 배려의 행위가 비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물론 극 중에서 상연은 이미 은중과 갈등의 서사가 깊어서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일 수 없는 지점까지 왔지만
보통의 사람이라고 해도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심신이 이미 많이 피폐해지고 약해진 상태에서 호의를 받으면 다른 생각이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 오히려 반대로 남의 호의를 받는 것도 어쩌면 배려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의 손길을 받는 것도 사람이 서로 도우면서 사는 이치겠구나 생각했다.
"응답하라 1988"에서 택이 아버지가 선우 엄마에게 했던 말처럼 말이다.
"좀 신세 지고 살아도 돼. 내가 지금 우리 동네 사람들한테 신세 지는 거 언젠가는 갚을 날이 오겠지.
내가 살면서 그들한테 신세 갚을 날이 오지 않겠나? 그러니까 너무 혼자 애쓰지 말고 도움 받아야 할 때 도움 받고
또 나중에 도울 일 있으면 도우면서 그렇게 살아도 돼"
정확한 대사는 아니었겠지만 그 뉘앙스는 서로 도우면서 신세 지면서 갚으면서 사는 게 사람 사는 이치라고 말한다.
사람과의 관계 특히 거절하고 도움을 받고 하는 이런 이해관계가 얼마나 어려운가 느낀다.
도와주려고 할 때에도 타이밍과 방법이 상대방이 받고 싶어 하는 방식이어야 하니 참으로 어렵다.
요즘은 선뜻 도와주려고 나섰다가 봉변을 당하는 경우도 많아서
점점 도와주는 것에 인색해지고 위축된 사회로 가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줘야 할 때에는
거절당할 거 두려워하지 말고 한번 더 손을 내밀어보자 싶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조금은 더 건강하게 더 안전하게 되지 않을 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