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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단상

by 캐서린의 뜰


전업주부의 단상


십 년간 이력서 한 줄 채울 일을 못 했다.


칼라가 있는 셔츠를 입을 일이 없었다. 지인 결혼식이라고 큰맘 먹고 재킷 하나를 샀으나 한 철에 한 번도 입지 못하고 여러 해를 묵혀놓았다. 그 사이 유행이 지나서 이젠 입을 수도 없게 되어버린.

언니가 준 고가의 핸드백은 어울리는 옷이 없어 혹은 메고 나갈 곳이 없어 더스트백에 담겨 옷장 한쪽에 모셔져 있다.

그간 구두는 살 일이 없었고 갖고 있던 몇 켤레의 구두 가죽은 삭아버렸다. 기껏해야 운동화나 로퍼를 샀다. 이젠 발바닥과 허리가 아파 중년 컴포트화 섹션을 기웃거린다.


유기농 코너에서 장바구니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열과 성을 다해 이유식을 만들었던 것 같고 어느 날은 시골 밥상으로, 또 어느 날은 이탈리안 레스토랑 느낌으로 끼니를 차렸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농심 짜파게티와 튀김우동을 가장 좋아한다. 상처받는 모심.

누구는 이유식을 만들다, 집밥을 차리다 책도 쓰고 블로그로 수익을 내던데 나는 먹고 설거지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다 그러고 사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누군가의 번뜩이는 행보를 바라보다 한없이 초라한 내 발자취를 더듬어 본다.


아이들의 한글, 덧셈 뺄셈과 파닉스는 주먹구구식 엄마표로 가르쳐 학교에서 배움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지만 괄목할만한 성취는 없다. 보통의 지능과 집착을 가진 아이들이다. 뉘 집 자식과 엄마가 빚어낸 교육서의 영광스러운 결말은 흉내 내지 못하리라. 그렇지만 이 평범함이, 평균값에 수렴하는 성장이 그저 고마움을 해를 거듭할수록 느낀다. 1인분의 몫이라도 해 내라고, 그게 어디냐며.


비가 오락가락 흐린 날, 서둘러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놓고 아침부터 차려입고 버스를 타고 어딘가를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이 안락한 시간을 감사히 여긴다. 비록 오늘도 이력서에 한 글자도 채울 일은 하지 않는 전업주부의 삶이지만, 빨래를 널다 베란다 난간에 맺힌 빗물을 바라보며 그 안에 담긴 내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의 순간들을 누릴 수 있어서 그저 다행으로 생각한다. 흐렸던 하늘 저 멀리서 희붐한 광선이 퍼지는, 밀렸던 빨래 널기 좋은 시간이다.



* 사진은 핀터레스트에서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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