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입김
늦은 아침, 아이들에게 아침에 덜어주고 남은 냄비 속 만두 세알을 데워 먹습니다. 저 만둣국을 좋아하거든요. 특히 오늘처럼 추운 날에는 뜨끈한 국물에 불려져 부드럽게 넘어가는 만두가 외출하고 돌아와 얼었던 몸을 덥혀줍니다. 개성이 고향인 작가님께서는 어린 시절 할머님이 정성스레 빚은 개성 만두를 추운 겨울 별식으로 드셨을런지요. 애석하게도 전 어릴 적에 만둣국이 먹고 싶어도 좀처럼 먹을 기회가 없었어요. 저희 엄마는 이맘때면 제가 싫어하는 떡국을 종종 끓이셨거든요. 시판 만두라도 몇 알 넣어주시면 좋았으련만 만두가 터지면 떡국 국물이 지저분해진다고, 돼지고기를, 만두를 싫어하시는 엄마는 소고기를 넣은 떡국만을 고집하셨어요. 질겅거리는 소고기도, 쫀득한 가래떡도 싫어하는 어린 저는 어찌했을까요? 네, 저는 건더기를 모조리 뺀 떡국 국물 한 국자에 전날 남은 찬 밥을 자작하게 말아먹었답니다.
지난 주말 지방에 사시는 부모님이 제가 사는 도시로 자식들을 보러 올라오셨어요. 이 도시에는 저뿐만 아니라 저희 세 자매가 각자 다른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기차역에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제가 마중을 나갔어요. 역시나, 수십 번 일러도 양손 가득 바리바리 고향 산천에 나고 자란 식재료를 꽁꽁 사매 오셨습니다. 세 딸이 돌아가면서 여러 번 좋게 말씀드려도 보고, 언성을 높여 화를 내어도 봤지만 고집스럽게 기어이 가지고 오시는 그 짐들을 망연히 바라보며 저는 엄마의 한량없는 사랑을 느꼈을까요 끝없는 횡포를 느꼈을까요. 택시를 타기에는 너무 가까운 거리인데 그 무거운 짐들을 들고 걸어가기엔 까마득한 거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울화가 치밀어 올라 역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어요. 누차 말씀드렸어도 끝끝내, 단 한 번도 굽히시지 않는, 수십 년째 이어온 한결같음이 저를 지치게도 했습니다. 한 번은 져줄 법도 한데, 단 한번 만이라도 빈손으로 홀가분하게 오 실 법도 한데, 그게 자식이 진정 원하는 바라면 노력해 봄 직 한데 말입니다. 그러면서 늘 저를 괘씸해하시죠.
집으로 돌아온 저는 종종걸음으로 부모님 저녁상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보냉가방에 싸 온 짐들을 하나둘 꺼내 놓기 시작합니다. 두근 가까이 되는 소고기, 떡국떡 한 봉지, 가래떡 한 봉지, 동치미 두통, 화심 순두부 세 팩, 미숫가루 한 봉지, 어슷썰기 한 대파 한 봉지, 시금치 한 봉지, 냉이 한 봉지… 끝도 없이 나오는 이 짐들을 넣어둘 냉장고 공간이 부족했습니다. 저를 더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던 건 욕심껏 꾹꾹 눌러 싸 오신 이 짐들 가운데 어느 하나 절 위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가져오지 말라면서 네 짐 없는 게 왜 서운하냐 하실 테지만 늘 그렇듯 대접받는 자식 따로, 대접해야 하는 자식 따로 인 게 싫었으니까요. 엄마는 큰 딸에게 줄 냉이와 시금치를 다듬고 씻고 데치고 무치셨습니다. 그리고 막내딸에게 끓여 줄 소고깃국의 소고기를 썰고 마늘과 간장을 넣어 볶아 내셨어요. 음식 맛있기로 소문난 고장에서 저희 엄마 음식 솜씨는 동네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하니 오죽 맛있겠어요. 찬바람이 불면 엄마가 만드신 코다리 조림이 참 맛있는데, 만들어 달라고 차마 말하지 못했습니다. 언니와 동생이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니까요.
아이 둘을 낳고 키우다 보니 큰 아이에겐 호되게 혼을 내고서 그 뒤통수를 바라보면 애잔함에 마음이 미어질 때가 있습니다. 작은 아이에겐 방금 눈을 흘기고 나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헤벌쭉 웃는 저를 발견합니다. 중간에 낀 둘째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은 어떤 마음들로 채워져 있을까요. 유독 그 아이만 좋아하는 음식을 따로 챙길 여력이 없었음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해 주고 싶은 정성스러운 마음, 해 주기 싫은 귀찮은 마음 모두 다 엄마의 것이니까요. 큰 아이처럼 고분고분하지도 않고 막내처럼 마냥 사랑스럽지 않은 그 둘째 아이는 조석으로 방송 3사 일일 드라마를 챙겨보는 엄마가 책을 보는 엄마이길 원했고, 엄마도 잘못하고 미안한 게 있으면 자식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말을 전해야 한다 믿었고, 없는 형편에 입고 쓰는 것은 초라하더라도 자식교육만큼은 욕심을 내주길 간절히 바라왔습니다. 하지만 늘 어긋났죠. 그러니 그 엄마의 차가운 입김과 그 둘째 딸의 싸늘한 시선은 영원히 교차하지 못하는 평행선이 되어 40여 년의 시간을 흘러 오늘에 이르렀을테죠.
어린 마음을 푸근히 충족시켜 주던 평화로움은 이 나이가 되도록 잊히지 않는다… (중략)… 어린 날, 내가 누렸던 평화를 생각할 때마다 어린 날의 커다란 상처로부터 일용할 양식, 필요한 물건, 입고 다니던 입성, 그리고 식구들 사이, 집 안 속 가득히 고루 스며 있던 어머니의 입김, 그 따스한 숨결이 어제인 듯 되살아난다. 그것을 빼놓은 평화란 상상도 할 수 없다. 싸우지 않고 다투지 않고 슬퍼하지 않은 어린 날이 어디 있으랴. 다만 그런 일이 어머니의 입김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행복과 평화로 회상되는 게 아닐까?
뜨듯한 만둣국 한 그릇을 먹으며 벗 삼아 읽은 선생님의 글, 어머니의 입김이 언급되는 한 문장이 저를 목놓아 울게 만드는 겨울날의 정오입니다. 바깥의 매서운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거실에 깔아놓은 카펫 절반을 차지하고 들어온 정오의 햇살만이 어둡게 침잠한 제 마음을 환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세상을 바라보시는, 차갑지만 투명한 겨울바람과도 같은 명징한 시선 너머 어딘가에 제가 서성였더라면, 선생님은 지금쯤 어떤 말씀을 제게 주셨을지 궁금하기도 한 시간입니다. 시집올 때 품에 안고 챙겨 왔던 선생님의 단편 소설 전집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딸아이가 하교하기 전에 어서 눈물을 닦고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겠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를 푸근하게 맞아 주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