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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Aug 29. 2022

우울증 공황장애가 뭐 어때서요

중요한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잖아요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의심된다는 정신과 전문의의 소견을 받았을 때 나는 스물다섯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자신이 너무나 버겁고 힘들었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원래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 생각했다. 다들 그저 버티면서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회사가 힘들었다. 힘들었다기보다는 어려웠다. 어이없는 이유로 나를 괴롭히는 같은 부서의 평사원도 힘들었지만, 같은 부서의 과장님은 나에게 이 회사에서 일 잘 하는 것으로 인정받고 싶지 않냐는 말을 강압적으로 밥먹듯이 하는 것도 어려웠다.


  과장님은 그 질문에 의욕적으로 "네! 인정받고 싶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모습을 원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곳에서 전혀 인정받고 싶지 않았다. 원하지 않는 회사, 원하지 않는 입사, 원하지 않는 업무, 원하지 않는 인생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과장님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마 과장님은 그런 나를 보며 '뭐 저런 정신나간 수습이 다 있지?'라고 생각했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게 나의 마음인 것을 뭐 어떻게 한단 말인가.


 회사가 힘들다는 말을 해도 돌아오는 말은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산다는 말이 괜한 것인 줄 아니? 너만 유난스럽게 그러지 마."였다. 그래서 나의 힘듦을 평범한 것으로 여기려고 참 많이 애썼다. 내가 회사에서 겪은 일을 누군가에게 말하면 가끔 나보고 힘들겠다고 하는 말은 그저 사회 초년생에게 하는 흔한 인삿말 정도라 생각했다.


 나 자신에게 정신과적 문제가 있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단순한 절망이 아니었다. 사실 병원을 찾아갔을 때 이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나한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내가 아프다는 것을. 나는 그걸 전문의를 통해 확인받았을 뿐이다.


 그랬기에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새삼스럽게 하늘이 무너진다던가 멍해진다던가 할 것도 없었다. 이후 밀려온 약간의 허무함은 지금 당장 그 이상으로 무언가 할 수는 없으니 약을 먹으면서 경과를 지켜보자, 약을 먹으면 해결된다는 것이었다.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의사의 무미건조한 말이었다.


 의사 입장에서는 건넬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이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했던 노력들은 아무것도 아닌 헛수고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약을 먹으면 해결될 문제를 여태껏 힘낭비 시간낭비하며 버텨온 것일까.


 우울증과 공황장애라는 병명과 온갖 약이 내 삶에 들어온 이후 한동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약 때문이 아니었다. 예상을 하는 것과 그 예상이 맞아떨어졌을 때의 느낌은 확실히 달랐다. 예상하고 있었기에 큰 충격은 없었지만 그 예상이 현실이 되었기에 한동안 무기력감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무기력감에 익숙해질 즈음, 매우 긴 시간이 지나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이던 공황장애던 뭐 어때. 그냥 살아가면 되는 것 아냐?


 우울증이던 공황장애던, 그게 맞던 아니던, 내가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같았다. 달라질 것도 없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이 삶을 살고 있고 지금도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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