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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Aug 29. 2022

그래도, 물고기

그럼에도 계속 이 길을 걷는 이유




 수산생명의학과을 전공하면서 분명 환멸나는 날도 있었다. 내 손으로 물고기를 죽여야 할 때도 적지 않았고 해부실습으로 난도질당한 물고기를 신문지에 싸서 뒤처리한 날도 있었다. 나는 분명 관상어가 좋아서 관상어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어서 이 곳에 왔는데 왜 이런 것을 배우고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전공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적지 않은 환멸과 자괴감, 괴리감이 나를 괴롭혔지만 그럼에도 나는 수산생명의학과를 졸업했다. 건강상 사유로 국가고시를 바로 응시하지 못했지만 졸업을 무사히 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의미있는 일이다. 졸업을 했다는 것은 수산질병관리사 국가고시 응시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후 나는 정말 여러 임시직을 거쳐왔고 온갖 다양한 것을 배우기도 했다. 아동미술학원 강사, 공장 아르바이트, 애견카페 아르바이트, 꽃집 아르바이트, 회사 회의 녹취록 작성 아르바이트, 일본어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고 웹디자인, 애견미용, 제과제빵, 플로랄 디자인을 배우기까지 했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다시 물고기로, 원래의 전공으로 되돌아왔다.


 물고기는 나에게 운명과도 같은 무언가가 아닐까 싶다. 운명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이어지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간 운명을 거슬러 한눈팔기도 실컷 해보았으니 이제는 운명에 맞추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볼까 싶기도 하다.



 확실히 쉬운 길은 아니다. 여전히 한국에는 관상어와 관련된 정보나 전문 서적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책을 보려면 외국어, 특히 영어는 필수가 아니라 기본이다. 또한 임상이란 평생을 공부해도 항상 모자르다. 더 많은 물고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더 공부하고 더 노력하고 더 알아야 한다. 생명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은 끝이 없다. 항상 겸허한 마음으로 공부하고 배우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 해야 한다. 고인 상태에서 임상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행위라 생각한다.


 쉽지 않고, 어렵고, 피곤하고, 때로는 환멸나고, 항상 노력하고 배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물고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해도 나는 물고기가 좋고 물고기가 사랑스럽다. 그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나의 전문적인 지식을 다해 물고기를 돌보고 질병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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