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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Aug 31. 2022

이렇게 돌봄받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은 적응되어 돌봄받는 것에 약간 행복해진 2주일 차




 폐쇄병동 입원 첫 날 안정실과 강박을 경험하고 나니 나는 병동 자체와 치료진들이 무서워졌다. 매일같이 눈치를 살폈고 숨어서 몰래 우는 일도 늘어났다. 식사를 하지 않는 날도 생기고 병실에 박혀 복도에조차 나오지 않기도 했다.


 이를 보다못한 것인지 담당의가 나에게 "병원 생활 힘들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예 안 들은 척 무시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담당의는 "지금 저랑 얘기하기 싫으신가봐요."라고 말하고 돌아갔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기보다는 말할 수 없었다. 솔직하게 말했다가 다시 나를 안정실에 끌고 가서 억지로 강박을 하고 안정제 주사를 놓을까봐 무서웠다.


 며칠을 울면서 보내고 나니 조금씩 적응되는 부분도 있었다.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나 역시 이 낯설고 단조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매일 오전에 있는 회진도, 시간에 맞춰서 바이탈 측정을 하는 것도, 밥때가 되면 밥먹으라고 불러주는 것도, 프로그램 할 때면 참여하라고 챙겨주는 것도, 약먹을 때가 되면 약 먹고 약을 먹었는지 확인하는 것까지. 살면서 처음 받아보는 돌봄에 어색한 점도 있었지만 점차 익숙해졌다.


 나는 이런 돌봄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내가 학교가 끝나면 동생이 다니는 유치원까지 걸어가서 동생을 데리고 집에 왔다. 성인이 되어서 그 길을 다시 가보았는데 성인이 걸어도 상당히 먼 거리였다. 그 길을 나는 여덟 살 때 동생과 함께 다녀야 했다. 배가 고프면 알아서 해먹어야했고 배가 고프다는 말만 해도 너 알아서 해먹으라는 무심한 말만 돌아왔다.


  그러면서 학교 성적에는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크게 혼났다. 성적에는 그렇게 관심이 있으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생활하는지, 아픈 곳은 있는지 관심을 전혀 주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하고 싶은 것과 좋아하는 것이 매우 뚜렷해서 대학교와 학과 목표까지 있었지만(그리고 실제로 그 대학교 그 학과를 입학했지만) 그것에 대해 물어보지도 알아주려 하지도 않았다.


 거의 평생을 돌봄받은 적 없이 살아오다가 갑자기 매일 누군가가 내가 잘 잤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밥은 잘 먹는지, 기분은 어떤지 이런 것을 물어보고 챙겨주니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마냥 나쁘지는 않았다. 그만큼 내가 관심과 돌봄받는 것에 목말라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나는 조금씩 다시 식사도 하고 병동 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루는 컬러링 프로그램을 하는데 내가 칠하는 것을 보고 간호사님이 정말 잘 칠했다고 얘기하셨다. 예쁘게 칠했으니 이름을 적어서 게시판에 붙이자고까지 하셨다. 그래서 신이 난 나는 컬러링 용지 구석에 이름을 적어서 병동 게시판 한 쪽에 붙여두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보호사님께서 내가 칠한 컬러링을 보고 감명깊었다면서 나에게 잘했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그 돌봄과 관심 속에서 아주 조금씩, 약간의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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