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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Feb 20. 2023

마냥 도망치기만 할 수는 없어서

도망치지 않고 솔직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더니


 나는 1월 중순부터 2월이 끝날 때까지가 대체로 살기 버겁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 일이 있기 전에 그 기간은 그저 그런 평범한 나날 중 하나였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나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실 묻어두고 살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고 모두가 그렇게 살기도 했고 나 역시 그렇게 살아갈 것을 강요받았기에 막연하게 그렇게 하면 괜찮으리라 착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착각임을 머리로 알면서 이에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나 어떻게 살았는지를 모조리 밝혀야 했고, 그렇게 하면 사람들은 편견에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볼 것이고, 또 그것들을 밝히지 말고 숨기면서 살아갈 것을 긴 시간동안 언제나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2014년 1월 말 친하게 지냈던 동생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서 항상 그 아이는 평소 다른 지역으로 대학교를 진학하고 싶어했으니 먼 곳으로 공부하러 갔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건 원시적이다못해 병리적인 방어기제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망상에 가까운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사고로 갑자기 죽은 것도 모자라 나는 그 어떤 애도도 슬퍼할 시간을 가지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부모님은 단톡방에 올라온 부고 소식에 슬퍼하는 나를 보고 조용히 하라면서 너가 그 애랑 무슨 상관이냐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그렇게 음울하기만 한 겨울방학을 끝내고 개강시즌이 되니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는 진작에 다 그 일을 정리했고 이젠 괜찮다는 듯. 그래서 나는 아직 그 일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안 좋다고 말했고, 사람들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황당하기도 하고 나를 화나게 했다. 그 아이는 좋은 곳에 갔는데 너가 왜 그러냐. 그 아이는 순교한거다. 라는 식의 대답이었다.


 어쩌면 그 때부터 나는 조금씩 교회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즈음부터 나는 불가지론에 기울어진 것 같다. 무슨 일이 있던 다 하나님은 뜻이 있으시니까. 라고 뭉뚱그려 말하면서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너가 인생을 잘못 살고 있어서 징계를 주시는거다. 라는 말을 하고 단순히 종교 수준을 넘어서 대화할 생각조차 없는 반지성주의적 사고방식으로 범벅이 된 사람들을 보며 이게 맞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이 곳에 스스로 발을 들인 것이라고는 하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학교 친구들과는 차단되어 교회 내에서만 살아왔으니 낯선 타지에서 그나마 익숙한 곳을 찾아간 것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모든 것이 낯선 곳에서 그나마 익숙한 곳을 찾아갔을 뿐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내가 죽을 것 같아서. 어떻게든 이 곳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사실 그 사건 말고도 같은 해에 슬픈 일이 참 많았다. 4월에는 세월호 침몰, 5월에는 학과 동기가 살해당하는 일이 있었다. 그야말로 연달아 폭격을 맞은 셈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부모님은 병원을 절대 못가게 하시기에 정신과에 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나 혼자 속으로 앓을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느 날부터는 밤에 잠을 자기가 어려워졌다. 그나마 밝은 낮에 잠깐잠깐 자고 밤부터 새벽까지 자취방에서 공부를 하거나 과제를 하거나 논문을 읽거나 책을 읽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예 게임만 하거나 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잠시라도 이 곳을 떠나있자 싶어서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떠나기로 했다.


 그 장소를 떠나있으면 어떻게든 해결될 것 같았다.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다른 신분이 되고 싶었기에 어찌 보면 당시 나에게 딱 적합한 선택이었다. 회피다. 하지만 회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음식물 쓰레기가 보기 싫다고 음식물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카페트를 끌고 와 음식물 쓰레기를 덮어 당장 눈에 안 보이게 할 뿐이다. 일단 눈에 보이지는 않으니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음식물 쓰레기는 카페트 아래에서 썩고 있으니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아니다.


 고민을 한참 한 끝에 최근 정신과 의사쌤에게 살면서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를 얘기하기로 했다. 6년 남짓 정신과를 다니면서 현재 병원이 외래만 계산하면 일곱 번째 병원이고 의사는 12명 남짓, 응급실에서 만난 레지던트까지 하면 더 많은 의사를 거친 끝에 그 누구에게 말하지 않았고 말할 수 없었던 이 일의 모든 밑바닥까지 다 말하기로 했다. 솔직하게 말하기로 결심하기까지 참 어려웠다. 말하는 것이 맞을까. 말해야만 하는걸까. 말했다가 그로 인한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이상으로 나빠질 것도 사실은 없었다. 6년간 응급실은 밥먹듯 들락날락하고 정신병동 입원도 수 차례 있었다. 외래를 다니던 병원 중 자신들은 나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며 진료의뢰서만 쥐어주고 내보낸 곳도 몇 곳 있었다.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나아지는 데에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양심에 찔렸다. 트위터에서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그러지 않고 있다는 것이 나를 괴롭게 했고 어떻게든 나 자신을 멈추어야 했다. 허구한 날 스마트폰으로 당시 기사를 찾아보면서 굳이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을 멈추고 싶었다.


 다행히 의사쌤은 내가 걱정했던 반응을 보이시진 않았다. 오히려 내 걱정이 무색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하셨다. 물론 그 말만으로 모두 마법처럼 샤라란 하고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해결까지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너무나 멀고 험하다. 그렇다면 그 온갖 위험부담을 안고 솔직하게 모두 말해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 물음에 내가 트위터에서 밥먹듯이 말했던 말을 대답으로 해주고 싶다. 자신 스스로에게 솔직해짐으로서 나아지기 위한 출발선에 서고 타인에게 솔직해짐으로서 필요한 위로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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