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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Feb 20. 2023

무작정 잘못하고 미안하다고?

형식은 분명 사과인데 되려 더 기분나쁜


 부모님은 정신과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안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는게 아니라 현재도 안 좋게 생각하고 있다. 애초에 병원이라는 곳을 매우 안 좋게 보고 싫어하는 분들이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한 달 전을 내내 병원에 계시면서 의사와 신경전을 벌였던 사람들이니 그럴만도 하다. 심지어 아빠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자신은 교통사고가 나서 죽게 생겨도 병원은 절대 가지 않을거라는 말까지 하셨으니 말 다 했다. 그 마음이 왜 생긴지는 이해하지만 교통사고가 나서 목숨이 위험한데도 병원에 안 가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발상이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살아왔으니 나 역시 병원을 가본 기억이 거의 없다. 내가 병원을 갈 거라고 상상조차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정신과에 가겠다고 했으니 이해가 되지 않았을거다. 퇴근하고 병원에 다녀온 날 엄마는 나에게 병원에서 뭐라고 하던? 이라고 물었고 나는 의사에게 들은 말을 전했다. 당시 나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공황발작도 몇 차례 있었기에 의사는 나에게 우울증과 공황장애 같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시선은 TV에 두고 웃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너는 공'항'에 간 적이 없는데 어떻게 공'황'장애에 걸릴 수 있다냐?


 순간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것이지? 싶어서 기분나쁘다는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보았지만 엄마는 계속해서 TV를 볼 뿐이었다. 황당하고 어이없고 기분나빴다. 그걸 지금 나한테 말장난이라고 하는건가. 그것도 의사한테 공황장애 소견이 있다는 말을 들은 사람한테?


 이럴거면 차라리 없는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가 가진 문제는 병원가서 약먹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그게 무슨 암도 아니고 별 거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엄마. 자살 충동으로 응급실을 갔는데 나에게 찬송가 캡처를 보내며 그거 부르면서 거기서 나와라. 라는 말을 보내는 아빠. 증상으로 힘들다는 내 말에 사는건 원래 그런거고 이 세상은 원래 그런거고 나도 힘들다는 말로 말문을 막아버리는 부모님.


 그런 모습과 반응을 끝없이 겪으면서 나는 그나마 있던 부모님과의 소통을 끊어버렸다. 말을 해보았자 나만 속상하고 화나고 상처받고 손해볼 뿐이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부모님과는 대화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어렸을 적 나를 왜 두들겨팼는지, 왜 내 말을 단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는지, 왜 교회에 미쳐살고 나를 거기에 끌고 들어갔는지, 내가 원하지도 않고 필요하다고 해달라고도 하지 않았는데 멋대로 교회 사람이 하는 비상식적인 직장에 나를 몰아넣고 내가 힘들어지니 내 탓을 하는 것인지 싶었다. 그저 본인들 만족을 위해 나를 순전히 이용해먹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제도 거실 창 너머로 보이는 비탈진 산을 보고 있으니 이전의 트라우마가 자꾸 떠올라서 약먹고 방에 들어가서 이불덮고 누워있었더니 교회에서 돌아온 엄마가 너는 왜 낮에 자냐면서 무슨 일인지 얘기하라고 들들 볶았다. 그래서 엄마에게 할 말 없고 내일 병원가서 말할거라고 하니 엄마는 한껏 굳은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듯 쳐다보다가 휙하니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는 갑자기 자신이 다 잘못했다 미안하다 이런 말을 했다. 그 말이 오히려 나를 더 기분나쁘게 했다. 차라리 그 다음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무엇이 문제인지를 모르고 그에 대해 대화해서 풀 마음도 생각도 없으면서 무작정 잘못했다 미안하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정말 기분나쁘다. 내가 엄마에게 한 말만 보면 천하의 불효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엄마가 진지하게 대화해서 이해하고 풀 의지도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말을 해봤자 나만 기분나쁘고 속상하고 화나니 나 혼자라도 해결할 수 있게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문가에게 말하겠다고 한 것 뿐인데 그게 그렇게 기분나쁘다는 표정으로 노려볼 일인가 싶기도 하다. 기분나쁘다면 나 역시 할 말은 없지만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 그 누구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고 엄마는 아빠가 있으니까 편이라도 있는건데 정말 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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