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적응하는 존재여라

새로운 세계관에서 적응하기란

by 울새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비상용 항불안제를 먹으면서 예비자 교리를 들으러 가니 의외로 생각보다 버틸 만했다. 정신과 약 중에서 2-4주, 길게는 6주는 꾸준히 복약해야 효과를 보는 약도 있고 먹고 나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면 약효를 보는 약도 있다. 전자는 대표적으로 항우울제 종류가 해당되고 후자에는 항불안제(안정제)와 수면제 종류가 들어간다.


그렇게 약을 먹고 가면 졸린게 조금 그렇지만 겁이 없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강의 시간 때 수녀님 질문에 답도 하고 나눔 교리 시간에 얘기를 해도 돌아가면서 성경을 한 절씩 읽어도 그 때처럼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나 덜덜 떨리면서 공황이 올 것 같은 예기불안이나 심하게는 잊고 있던 트라우마에 압도당해 중간에 뛰쳐나가는 일은 없었다. 더 나아가 가톨릭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에 적응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있다. 분명 약 때문에 졸린 것은 있지만 조금 졸린 것이 나눔교리 참여조차 못할 정도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결국에는 뛰쳐나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이정도면 무사히 10월 정해진 날짜에 세례를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과거 개신교에 있었을 때 숱하게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병원에 가면 안 된다' 또는 '약을 먹으면 안 된다' 였다. 그 말을 교회에서도 들었고 집에서도 들었고 주변 교회 사람들에게서도 지겹도록 들었다. 그래서 나 역시 병원에 가면 큰일나는 줄 알고 있었고 약은 절대 먹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막상 내가 공황발작으로 연달아 쓰러지고 심각한 우울로 온갖 충동에 시달리자 병원에 안 갈 수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회사에서 나보고 사무실 창문을 열으라 해서 여는데 사무실이 있는 7층에서 아래 길바닥을 내려다보고 '지금 여기서 뛰어내리면 정말 아름답겠다. 오히려 괜찮고 좋은데?' 하는 생각이 들기에 이르자 이대로 병원에 가지 않으면 정말 큰 사고가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나는 가장 빠른 날짜에 내원이 가능한 정신과를 찾아 전화를 돌리다가 한 곳에 예약을 하고 방문해서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 사실을 안 교회 주변 사람들은 나를 가만 두지 않았다. 약은 해결해주지 못하니 신앙과 말씀으로 해결하라는 말부터 시작해,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그런 병에 걸릴 수 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정말 상태가 악화되어 퇴사를 하고 정신병동에 입원할 때에도 겨우 그런거로 입원은 오버하는 짓 아니냐는 말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고 황당한 주장에 불과하지만 그 당시 믿었던 주변 사람들의 냉대하다못해 무지한 반응은 되려 나를 더 아프게 했다.


시간이 지나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고 나서 떠올리니 약 역시 결국에는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전에 의사쌤은 내 일화를 듣고 자신도 개신교지만 약도 하나님이 내려주신거라 생각한다 라는 얘기를 했다. 정말 맞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행복하길 원하시지 불행하길 바라시는 분이 아니니까 불행과 아픔을 낫게 하는 약 역시 결국에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시고 내려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약을 먹으면 그게 어떠한가. 그렇게 해서 예비자 교리 내내 버틸 수 있고 살아갈 수 있고 새로운 곳에 적응해나가고 더 나아가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면 약 좀 먹는게 그렇게도 호들갑 떨 일인가. 사람이라는 존재는 적응하는 존재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곤 한다. 어떻게든 적응하고, 적응이 정말 어려운데 적응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반드시 적응하게 되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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