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건 먹는거니
보통같으면 토요일 저녁 즈음에 미사 참례를 하는 것으로 주일미사를 대신하곤 했지만 지난 토요일은 일정상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지난 토요일 지인들을 만나 3차까지 놀고 나니 이미 밤 10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그나마 미사 시간대가 다양한(?) 명동성당도 토요일 밤 10시에 미사가 있을리가 없다. 그래서 내일 일찍 일어나 일찍 미사를 드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서둘러 들어갔다.
하지만 이 계획은 모두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명동성당의 일요일 첫 미사는 아침 7시인데 내가 눈을 떴을 때가 아침 7시였다. 서울에서 하룻밤 잤기에 다행망정이지 만약 집에 갔다면 정말 곤란한 상황을 대면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아침 7시 첫 미사는 물건너갔다. 그 다음 미사는 아침 9시 미사인데 English Mass 즉 영어 미사라고 적혀 있었다. 영어 미사라니. 괜찮을까. 하는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는 내가 헐리우드 배우 덕질을 몇 년째 하고 있는데, 마블을 몇 년째 보고 있고 원서 코믹스까지 보고 있는 마당에 괜찮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 아닌 자만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9시 영어미사를 가기로 생각하고 8시 즈음에 짐을 챙겨 길을 나섰다. 대성전에 들어서니 주보 옆에 영어로 된 미사 통상문이 있었다. 이거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주보랑 영어로 된 미사 통상문을 한 장 들고 자리로 가서 앉았고, 이런 내 착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나며 깨졌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내가 영어를 아주 못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학교다니면서 거의 모든 전공과목을 영어로 공부했고 전공서적도 제대로 된 책들은 하나같이 영어로 되어있었다. 영어를 못하면 일단 학교를 다니는 것부터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거기다가 헐리우드 배우와 그 필모를 덕질하는 것을 몇 년째 하고 있다. 엔드게임 이후로 슬금슬금 mcu를 놓기는 했지만 그래도 코믹스는 꾸준히 보고 있고 언리미티드로 원서 코믹스도 보고 있으니 스스로 영어를 나름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내 착각일 줄이야.
성호경까지는 영어로 이미 잘 알고 있기에 어찌어찌 따라갔지만 그 이후부터는 버퍼링걸린 비디오마냥 버벅대다가 신부님 강론에서는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거기서 내가 알아들은 단어는 jesus와 heaven 그리고 god이 전부였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영어 공부를 그다지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처참할 것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이래서 자만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거던가. 이 날 있었던 일을 다른 곳 가서 얘기하면서 나도 어이없어서 웃고 다른 사람들도 웃고 나도 말하면서 이게 참 뭔지 싶었다. 영어 통상문이 있었기에 헉헉대면서도 어느정도 따라갔지만 통상문이 없으면 알아먹을수도 없고 기도문을 한국어로나 알지 영어로 아는 것도 아니다보니 안 볼수도 없어서 내내 고개를 반 쯤 숙이고 통상문을 더듬더듬 읽으며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다. 영어 미사야 이번이 처음이고 앞으로 특별히 그 시간에 가야 하는 것이 아니면 딱히 갈 일은 없겠지만 참 어렵다. 덕분에 영어 좀 한다고 자만했던 마음은 싹 가셨다. 자만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고 하느님께서 그 날 영어 미사를 가도록 이끌어주셨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