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따라 길 따라
천주교 서울 순례길 순례자 여권은 8000원 이상 금액을 기부하면 받을 수 있고-어찌보면 판매이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 수익금은 모두 기부되니까- 여권을 포함한 세트가 담긴 파우치를 주시는데 안에 지도가 함께 있는 안내책자, 여권, 손수건, 와펜뱃지, 지향카드가 들어있다. 정해진 기간 내에 이 여권을 들고 코스를 따라 가면서 총 24곳의 성지 및 순례지를 모두 방문해 스탬프를 찍어 정해진 날짜에 제출하면 축복장을 받을 수 있다.
1코스는 명동성당에서 시작해 좌포도청과 종로성당을 거쳐 광희문성지와 혜화동에 있는 가톨릭대 성신교정을 지나 가회동성당까지 가는 코스다. 총 아홉 곳의 성지와 순례지를 거쳐가게 되어있다. 집에서 대충 아침을 먹고 순례자 여권과 안내 책자를 들고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예비신자교리 때문에 매 주 오는 곳이긴 하지만 평일에 오는 것은 상당히 오랜만이라 사람도 주변 관광객도 별로 없는 한산한 모습이 낯설게 다가왔다. 이미 순례자 여권에 도장은 사전에 찍어둔 상태지만 그래도 시작점에서부터 출발하고 싶었기에 잠시 들러 사진 한 장만 찍고 출발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울 것도 서울 도심가는 길이 반듯반듯하게 나있고 내가 지도를 보는 것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종이 지도는 너무 오랜만이었지만 gps 기능이 있는 구글 지도 하나만 가지고 해외 이곳저곳을 쏘아다닌 경력 덕분에 gps 기능이 없는 안내 책자의 종이 지도를 보고 충분히 코스를 찾아갈 수 있었다.
지도를 따라 청계천을 끼고 걷다보니 좌포도청 터가 나왔다. 이 곳에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받았고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 중에는 나에게 여러모로 충격을 주었던 유대철 베드로 성인도 있다. 그의 아버지인 유진길 아우구스티누스는 당시 역관-국가와 국가 간 외교를 진행할 때 통번역 업무를 하던 관리-였다. 요즘 말로 하면 좀 있는 집의 도련님인 셈이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천주교 신자가 되고 아들도 천주교 신자가 되었는데 박해가 일어나자 순교하고자 하는 욕망이 일어나 아버지가 체포된 후 자신도 체포하라며 자수한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 소년을 체포하는 것보다 배교하라고 어르고 엄포하지만 유 베드로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체포되었다. 이후 어떤 포졸이 고문하려고 벌건 숯덩이를 입에 넣으려 입을 벌리라고 하자 예 하고는 입을 크게 벌려 포졸들이 놀라 물러서고 말았다고 한다. 그리고 1839년 14살의 나이로 순교했다.
그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순교성인들 또는 복자들처럼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아마 내가 그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면 차라리 나는 종교탄압을 받고 있다면서 키우는 개 고양이 그리고 짐가방만 챙겨들고 난민신청을 해서 도망갔을 것이다. 어찌되었던 내가 살아야 하니 잡혀가서 순교하는 것은 결코 꿈꿀 수 없는 일이다. 그런 내 모습을 떠올리며 생각하니 순교자들이 얼마나 대단한가 싶었다. 자신의 믿음과 신앙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버렸고 또 그 분들이 계시기에 지금까지도 신앙이 이어져왔으니. 나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광희문 성지를 지나니 상당히 익숙한 구간이 나왔다. DDP와 동대문 종합시장부터 평화시장 동평화시장 청평화시장까지로 이어지는 길이 눈에 들어왔다. 일 때문에 이전부터도 그랬고 지금도 종종 가는 곳이다. 특히 동대문 종합시장은 각종 부자재와 재료, 도구 등을 사러 가는 곳이기도 하다. 시장을 지나 낙산성곽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니 혜화에 있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가 보였다. 천주교에 입교하기 전 어쩌다가 인터넷에서 가톨릭대 신학대에 대한 다큐멘터리 내용 캡처요약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곳은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통제구역이라는 내용이 생각나 그러면 도장을 어떻게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입구에 들어서기 직전 그 앞에서 얼쩡대고 있으니 입구를 지키던 경비아저씨께서 신학대 방학 기간에 내부 성당만 가보는 것은 가능하다고 알려주셨고 성지순례를 왔음을 알리는 명찰을 패용하고 성당만 갔다가 돌아오면 도장을 찍어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명찰을 받아들고 옷에 부착한 뒤 알려주신 돌길을 따라 올라갔다.
방학이라 그런지 학교에는 사람이 몇 보이지 않았다. 간간히 어쩌다가 검은 수단과 로만 칼라 차림의 신학생만 보일 뿐이었다. 성당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자리에는 신학생들의 것으로 보이는 성서와 묵주가 놓여 있었다. 불이 켜지지 않아 어두운 공간이었지만 감실의 불은 그 가운데에 밝게 켜져 있었다.
다음 목적지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해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서둘러 교정을 빠져나오는데 잔디밭 옆의 길로 지나가는 수단에 로만칼라 차림의 신학생이 보였다. 곧 저 분도 사제서품을 받고 사제가 되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흘러갔다. 바람 스치듯 아주 잠깐 지나간 이름 모를 그 분이 앞으로 하느님의 이끄심 아래 훌륭한 사제가 되시길 마음 속으로 기도했다.
성신교정을 나온 뒤 조금 서둘러서 가회동성당까지 찍고 1코스를 마쳤다. 마치고 나서 스마트워치를 보니 8km를 조금 넘게 걸은 것으로 나왔다. 안내 책자에 1코스는 8.4km 남짓이라 나와있었으니 비슷한 수치다.
2코스는 멀지 않은 날 기상 상황을 봐서 가지 않을까 싶다. 스케줄이 상당히 빡빡해져서 스마트폰의 캘린더만 봐도 당분간은 수면 채무가 어마어마하게 밀릴 것만 같다. 벌써부터 토요일 일요일 일정은 모두 가득 차있다는게 실화인가 싶기도 하고 9월 말부터 10월 15일(세례 날짜)까지는 정신없는 스케줄이다보니 벌써부터 힘들다. 이제 진짜 6개월의 여정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구나 싶기도 하다.
언제 끝나나 목빠지게 기다렸는데 벌써 한 달 남짓 남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