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익숙하지 않거든요
그런게 익숙해지는 날이 오긴 할까요
퇴원이 생각했던 날짜보다 미뤄지고 평소 알고 지내는 신부님과 수녀님께서 면회를 와주셨다. 여전히 병동은 외부인 출입 제한이 걸려있어서 병원 1층 카페에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공동체 월례미사 때문에 정기적으로 뵈었던 분들이지만 이렇게 만나려니 왠지 기분이 묘했다.
수녀님께서 조각케이크와 책을 주셨고 내가 지갑을 들고 갔음에도 음료값을 신부님께서 계산해주셨다. 그리고 어디서도 제대로 말해본 적이 별로 없는 내 뒷배경 얘기를 두 분께 꺼내었다. 나는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받은 가톨릭 신자지만 우리 집안이 어떤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일을 겪으며 살아왔고 어떻게 내가 개종을 했는지까지. 끽해야 병원 진료실에서 그리고 대모에게만 말했던 구체적인 뒷배경을 얘기할 수 있는 최대치 선까지 말했다.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은 이야기다. 얘기하고 싶지 않았고 심지어 그게 내 과거 기억이라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것들이었다. 사실 지금도 그닥 받아들이고 싶진 않다. 그리고 설령 말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에 대해 어떻게 나를 보는지 이미 많이 겪어서 말하고 싶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다 털어버리고 가려 한다.
나는 보통 사람들이 이단이라고 말하는 교회 출신이다. 부모님은 거기서 결혼하셨고 나와 동생은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 교회를 다녀야 했다. 그 교회에서 살다시피 해야했고 부모님은 나에게 언제인지는 몰라도 어쨋든 곧 예수님이 재림하시니 자고 일어났는데 자기들이 없으면 자기들은 휴거된거고 너넨 버려진거라며 저급한 공포마케팅을 시전하기도 했다.
정말 여러 이유로 나는 그 교회를 갈 수 없게 되었고 나 또한 가고 싶지 않아져서 불가지론 상태로 살며 이 종교 저 종교를 찌르고 다니다가 친구가 있다는 이유로 성당에 가기 시작해 명동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거기까지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교회에서의 인간관계를 모두 버려야 했고 사람들에게 배신자라는 꼬리표를 붙임당해야 했으며 부모님에게는 실컷 키워놨더니 마리아교로 간 멍청한 놈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친하게 지냈기에 인간적인 관계는 계속 될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도 내가 개종한 것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며 떠나갔다. 씁쓸하고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본인들이 개종한 나를 싫다는데 내가 그 사람들을 위해 자해하면서 그 교회에 있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 교회 안에 있으면서 그 누구도 단 한 명도 내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하고 혐오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가 소수이긴 하지만 내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던 상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봐주시고 이해해주시는 분들을 만나니 정말 갑자기 다른 세상에 옮겨진 기분이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고 이런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울 상위권 대학의 간호학과 출신이면서 나에게 약에 의존하지 말고 신앙과 건강식품으로 해결하라는 개소리를 전시하는 인간을 보다가 있는 그대로 얘기를 들어주시고 연대해주시는 분들을 만나니 너무나도 낯선 기분이다. 이런게 익숙해지는 날이 내가 살면서 오기는 할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살아있으면서 있는 그대로 나를 봐주고 들어주는 친절에게 익숙해지는 시간이 나에기 오기나 할 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