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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비스 May 14. 2024

내가 성급했던걸까

아니면 그냥 내가 멍청한걸까


 이인증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아무튼 해리 비스무리한 증상이 계속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시간이 계속되고 있어서 글을 써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럴 수 없었다.


 퇴원 후 정신없는 일상이 계속되었고 피정까지 겹쳐져서 더더욱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템플스테이의 천주교 버전인 피정을 2박 3일이나 다녀왔고 그러는 중에 문제가 생겼다. 갑작스럽게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기보다는 원래 있다가 저 너머 아래로 가라앉은 문제가 예고 없이 급부상한 것이다.


 피정 프로그램 중에는 내가 오래 전부터 갖고 있던 전 교회에 대한 트라우마를 건들만한 것이 있었다. 피정 특성상 그 누구에게도 피정 프로그램에 대해 알려선 안 되기에 자세하게 말할 수 없지만 나 또한 예상도 하지 못한 채 잠재운 트라우마가 깨어나는 상황이 닥쳐왔다. 생각도 하지 못한 상황이 일어나자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그저 한참동안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었다. 그 날의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 자려는데 트라우마가 트라우마를 끌고 와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황이 되었다. 그거로 모자라 공황마냥 숨이 턱턱 막히기까지 하니 잠을 자려다가 요란하게 벌떡 일어났고, 피곤하고 잠은 오는데 잘 수가 없는 요상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 피정을 나에게 강력 추천한 지인이 원망스러웠다.


 그런 상태에서 피정은 끝났지만 제대로 된 생활이 될 리가 없다. 풀린 눈으로 멍하니 있거나 불안해하거나 아니면 무의미한 짓을 반복할 뿐이다. 병원에 가서 말해야하나 싶어서 메모까지 해두었지만 외래를 가기까지 아직 며칠 남았다는 것을 떠올리고 절망스러웠다. 대학병원은 교수급 의사가 상주하지 않는다. 이전같으면 전공의라도 있으니 정 급하면 응급실이라도 갔지만 지금은 그놈의 이기적인 전공의 파업으로 그러지도 못한다. 결국 이 증상으로 생활이 유지가 되던 개판이 되던 상관 없이 다음 외래일이 될 때까지 버텨야 한다는 뜻이 된다.


 힘이 부친다. 퇴원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정신상태가 이런 것이며 나는 왜 이 모양이고 지인은 왜 나에게 피정을 추천했는가 싶다. 플래시백과 이인증 비슷한 유사 해리 증상이 계속되는 지금 상황에 뭐를 어쩌란 말인가. 내가 퇴원을 성급하게 한 것일까.


 정말 힘든 것도 모자라 내가 누구고 지금 뭐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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