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창비 2019
휴가중입니다. 기내에서 작가가 출연한 팟캐스트를 듣고 여행지에 도착해서 이북으로 결제해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도 작가의 첫 작품을 사볼까 했었는데 수위가 꽤 높다고 들었고 내가 과연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면서 (나이 마흔도 넘었고 그다지 순진(!)한 편도 아니지만, 성적표현이 많이 나오는 작품을 접하면 뭐랄까 좀 정신이 없어지는 편입니다..) 구입을 미루었습니다. 하지만 진행자와 작가가 어찌나 재밌게 얘기를 하는지 궁금증이 솟아올라 견딜 수가 없더라구요. 휴가와서 읽을 책 4권을 가져왔음에도 일단 결제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전에 작가의 첫 작품도 동성애를 소재로 한 문학이라는 홍보문구를 접하고는 솔직히 말해서 BL물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흠. 저는 개인적으로 아는 동성애자가 없고 (있더라도 그/그녀는 나에겐 얘기하지 않았고) 동성애에 대해 아는 것은 BL 만화를 통해서밖에 없었습니다. BL 물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낯선 성애를 보여주는 것은 순간적인 자극을 목적으로 하는 것들이라 본격 문학작품에서 어떻게 다뤄질 것인지 궁금했죠.
제가 실제로 만난 적이 있는 동성애자들은 병원에 입원한 (감염경로를 찾기 위한 병력조사를 통해 그 성적지향이 타의에 의해 드러날 수밖에 없는) HIV 환자들밖에 없었죠. 하지만 그래서 그들이 아주 별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는 세계와 저의 세계는 무척 다를 것입니다. 저의 세계가 보편적이라고 할 수만은 없겠지만, 작가가 보여주는 삶에 비해선 대부분의 이성애자 독자들의 삶에 더 가까운 것만은 분명하겠죠. 책을 읽기 전 저의 의문은 그 낯섦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어떻게 문학적일 수 있는가, 어떻게 낯섦 속에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책을 덮은 후의 결론은 그는 그것을 훌륭히 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한 부분과도 같은 이들에게서 보이는 내 모습에 부끄러워 소스라치는 마음. 간절히 붙잡고싶으면서도 차마 손을 뻗을 수가 없는 마음. 제어할 수 없는 열망으로 얼룩진 시기에서 빠져나왔을 때의 허망함. 자신의 성적지향을 바꾸려 애썼던 어머니의 성경쓰기에 대한 집착을 볼 때. '나'를 가르치려만 드는 자의식과잉의 운동권남이 걸친 남루한 옷과 백팩을 볼 때. 애틋함, 그리고 동시에 느껴지는 견딜 수 없는 거부감, 읽고 마음에 계속 떠오르던 감정을 표현하자면 언젠가, 연인, 배우자, 부모, 시부모 등에게서 조금씩 느껴보았던 애증과 약간씩 닮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듯 스피노자가 말한 마흔여덟가지 감정 중 어떤 것도 작중 등장인물이나 읽는 독자인 저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책 속의 공간은 우연히도 저의 행동반경과도 겹쳤는데, 어릴 적 자란 제주도 (저도 섬을 벗어나 '육지'에 오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며 틈틈이 북쪽 바다를 바라보던 아이였습니다), 학교 앞의 낙산공원 (거기서 고백을 하거나 받아본 적은 없지만), 직장 근처의 올림픽 공원(그 앞에 요양병원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학원과 맛집들밖에 안보였지만 어딘가 숨어있겠죠 놀랍지는 않습니다), 저의 연구실에서 가까운 산부인과 병동. 그곳에서 좀더 생생히 그 감정들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작중 어머니와 같이 몇 번의 수술을 거치고 복부의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며 수액폴대를 붙잡고 걷는 많은 환자들이 저의 연구실 앞을 수없이 지나다닙니다. 그 앞을 지나다니는 수많은 우주, 수많은 애증, 그런 것들도 대병원(!)에서의 수많은 사랑법들 중 하나들이겠지요. 그 수많은 감정들을 내가 알 것이라고 감히 생각하지 않는 것. 마흔 여덟가지의 감정으로도 표현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 그것은 서사에 드러난 사물과 풍경과 시선으로서만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이 책을 읽으며 뭔가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느끼는 고리타분한 95학번 (네 고리타분한 운동권남이 95학번이었습니다...)이 내리는 결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