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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Aug 18. 2016

태극기와 아이라인에 대한 단상

초3웅변가 어린이에게 

하이 3학년 친구. 인터넷에 나온 사진 잘 봤어. 미안한데 동영상은 굳이 보진 않았어. 아줌만 웅변 별로 안좋아해서 말이야. 뭐 아줌마 취향이니까 이해해주길 바래. 

아줌마 아들은 4학년이거든. 매사에 소심하고 혼자 만화책을 읽거나 좀비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덕후스타일이야. 그래서 똘똘하게 말 잘하는 아들 또래 친구를 보면 좀 부럽긴 하네. 하지만 어쩌겠어. 저마다 자기 스타일이 있는걸. 

그런데 친구는 아이라인 그리는 이쁜 언니들을 만나본 적이 있나? 얘기해본 적이 있어? 사실은 아줌마도 그렇고 내 친구나 동료들 중에서도 아이라인을 그리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 그게 시간을 디게 많이 잡아먹고 또 어렵거든. <아이라이너> <아이브라우펜슬> 등으로 검색하면 수많은 블로그가 나오고 어떤 제품이 쓰기에 좋은지, 이쁘고 쉽게 (그닥 쉽진 않아...) 그리는 방법이 뭔지 가르쳐주는 포스팅이 정말 많지. 하지만 아무나 할수있는게 아니야. 아줌마도 한때는 그거 좀 그려보려고 아이라이너 사서 연습도 좀 했었는데, 잘 그려지지도 않고 번지고 (아줌마 피부가 좀 지성이거든...) 눈은 계속 뻑뻑하고 힘들더라고. 눈썹라인도 상대적으론 좀 쉽지만 대칭적으로 그리는 것은 웬만큼 숙달되지 않고는 힘든 일이야. 사실은 눈썹도 좀 그리다가 최근엔 포기했어. 그런데 잘 그리면 정말 눈이 디게 커보인다? 인상이 확 달라보여. 잘 그리면 정말 좋을 것 같긴 해. 

아줌마가 이렇게 장황하게 아이라인 얘기를 하는 이유는, 친구가 평생 그려볼 일이 없는 아이라인을 여자들이 그리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봤으면 싶어서 그래. 우선 뷰티에 관심이 많고 아이라인을 그리는 것을 즐기고, 아이라인으로 변화된 자신을 즐기는 여성들이 있지. 아줌마는 눈엔 손도 못대고 파운데이션 볼터치 립밤 정도 바르는 수준이지만 어쩌다 화장 잘먹는 날이면 얼마나 기분이 업되는데. 그런데 이런 행복을 즐기는 것이 나쁜 일일까? 꼭 태극기 잘 그려야 즐길 수 있는 그 다음 단계여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태극기라는 국가의 상징은 우리가 진심으로 국가를 사랑할 때 사랑할 수 있는 것이잖아. 국가를 사랑하려면 이 국가에서 살아가는 내가 행복하고 즐거워야 하는 것이거든. 그 행복에는 아이라인을 그리면서 즐기는 것도 포함되지. 친구가 마인크래프트나 클래시오브클랜을 하며 즐기는 것처럼 말이야. (아 이건 우리 아들 기준으로 말한거야.  친구가 그런건 별로 안좋아하고 태극기 그리는 것에서 더 큰 희열을 느낀다면 그건 친구의 취향으로서 존중할께) 

그리고 또 한편으론 싫어도 귀찮아도 꾹 참고 아이라인을 그려야 하는 여성들도 많아. 아줌마가 이번에 휴가로 제주도에 다녀왔는데, 비행기 승무원들 보면 진짜 날씬하고 이쁘고 화장도 깔끔하게 했더라. 아이라인도 안그린 분들이 없었어. 그런데 짐 올리고 승객들 유사시에 대피시키고 그런 나름의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직업인데 그렇게 화장을 하고 꽉 조이는 옷을 입으면 불편할 것 같아. 사실 외국비행기 승무원들은 화장도 더 옅고 옷은 더 활동하기 편하게 입고 다니거든. 한마디로 우리나라 비행기 승무원들은 승객의 안전과 편의 도모라는 본래의 목적보다 외모와 몸매를 드러내는 것에 더 방점을 둔 복장을 하고 있지. 그런데 그들이 그러고 싶어서 그럴까? 실제 승무원 선발과정이나 복장규정 등을 보면 그들의 의지라기보다는 회사의 방침에 따르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지. 회사의 방침이라는 것은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려는 목적이 있는 것이고. 좀 어렵지? 무슨 말이냐면, 많은 일하는 여성들이 본연의 업무와 관계없는 외모 꾸미기를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야. 그건 사람들이 일하는 여성을 대할 때 업무의 과정이나 결과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외모도 항상 평가하기 때문이지. 남자도 그렇다고? 남자도 외모로 평가받는 일이 종종 있기는 해. 그것도 문제지. 그런데 여자는 더하거든. 친구네 엄마한테도 한번 물어봐. 외모로 평가받아 억울했던 적이 없는지. 아마 많았을걸. 학교에서, 직장에서, 친구선후배관계에서 말이야. 아줌마도 체질량지수 23으로 딱 좋은데도 (훗) 살찌고 못생긴 여자 취급을 꽤 많이 받았단다. 한편 평범한 외모의 여성을 직접적으로 비하하는 건 비교적 드물긴 하지만, 예쁜 여자를 대접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180도 다르단다. 좀더 존중하고 경청하지. 결국 여성들은 열심히 화장술을 익히고 외모를 가꾸는 쪽으로 좋든 싫든 진화할 수밖에 없는거란다. 그런데 또 열심히 외모를 가꾸다보면 머리에 든 게 없는 여자로 취급받기도 아주 쉽단다. 대체 어쩌라는 건지 잘은 모르겠다만. 

아줌마가 3학년 어린이에게 너무 어려운 말만 한 것 같아 미안해.  그런데 아들 또래의 어린이라 좀더 사려깊게 생각하는 걸 익혔으면 하는 마음에서 길게 말을 늘어놓았네. 아이라인 그리는 언니들이 태극기 못그려 문제라고 생각하기 전에, 태극기 못그리는게 왜 문제일까? 언니들은 아이라인을 왜 그릴까? 이런 것부터 생각해보면 더 좋을 것 같아. 아줌마가 웅변을 별로 안좋아한다고 서두에 얘기했는데... 그건 일방적인 말하기여서 그런 것 같아. 아줌마도 '반공 글짓기 및 웅변대회'에 나가서 웅변은 안했지만 글짓기는 나름 상을 많이 탔던 사람이란다.  그런데 그때 쓴 글들이 대개는 어른들이 주입시킨 생각들을 풀어내는 것에 불과하였지. 옛날엔 이게 옳다, 이게 바르다, 이런 주입식 교육만 받고 거기에 맞춰서 말하고 글쓰고 그런 것밖에 할 줄 몰랐는데 요즘도 그러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네. 아무튼 친구가 태극기 그리고 광복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는 것도 좋지만, 친구 자신이 행복하고 즐거운 걸 하고, 다른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도 관심을 가지고, 다른 이들이 힘들고 어렵다면 왜 그런지 관심도 가지고 그랬으면 좋겠어. 그래야 우리나라의 미래도 더 좋아지는거란다. 안녕! 


http://www.insight.co.kr/newsRead.php?ArtNo=72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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