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coAzim Sep 09. 2016

잘 부탁드립니다

요즘 들어 이런저런 부탁을 많이 받습니다. 종양내과라는 특성상 절박한 부탁이 많습니다. 목숨이라는 것에 대한 부탁. 그러나 아무리 잘 해도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는 어려운 부탁. 그런 것이기에 슬픕니다. 그래서 부탁을 하는 누군가를 탓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런 부탁을 반복해서 여러 번 받다보면 조금 지칩니다. 나를 얼마나 못믿기에, 병원을 얼마나 못믿기에이러나, 그런 생각까지 들기도 합니다. 계속 환자에 대해 내 머리에 각인시키려는 노력도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닙니다. 워낙 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마치 공장처럼 돌아가는 대형 병원의 특성상, 의사의 정성과 관심을 이끌어내려면  따로 부탁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종종 그리 생각할 때도 있고요. 

그런데 막상 진료를 하는 입장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환자를 처음 볼 때는 그는 많은 평범한 환자들 중 하나입니다. 질병의 종류 또는 발생양상이 독특할 경우, 진단과정이 어렵고 복잡했던 경우는 물론 기억에 남지요. 그러나 흔한 질병, 흔한 증상 호소는 별로 기억에 안남습니다. 그러나 치료를 해가는 과정에서 환자 한 분 한 분은 저에게 각인되기 시작합니다. 치료에 대한 반응과 부작용의 정도, 이를 호소하는 환자의 태도, 설명을 들었을 때의 반응,  그런 속에서 드러나는 성격, 가정사정, 얼굴생김새, 말투, 그런 것들이 각각 머릿속에 박히기 시작합니다. 기억못할 것 같지요? 물론 전부 다 기억은 못합니다. 그러나 환자의 이름과 영상과 차트가 매치되면 대부분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 다른 과는 모르겠지만,  항암치료를 하는 환자들, 특히 진행암 및 전이암 환자들은 대부분 2-3주 간격으로 자주 만나기 때문에 기억에 안 남기도 어렵습니다. 의사도 반복학습을 하며 환자에 대해 알아갑니다. 저만이 아니라 대부분 다른 선생님들도 그렇습니다. 조금은 길게 수 개월을 대면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관계 속에 그는 나에게 특별한 환자가 되고, 잘 봐드리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내 환자니까요. 그러니까 환자를 잊어버릴까봐, 대충 볼까봐 그런 걱정은 너무 하지 않으셔도 되지 않을지요. 오히려 잘 봐드려야 하는 부담감에 치료가 산으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를  소위 VIP 신드롬이라고들 하지요.

무엇보다도 다른 이에게 남다른 관심과 정성을 요구하는 것은, 그 사람의 제한된 시간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의사의 진료시간은 화수분이 아닙니다. 그에게 쏟는 시간이 늘어날 수록 다른 환자들에게 쏟는 시간은 줄어들수 밖에 없는 것이죠. 조금 과도하게 보는 것일런지 모르겠지만, 불평등한 일이죠. 정의롭지 못한 일입니다. 

일단 이런 부탁은, 9월 말부터는 불법이라고 하는군요. 김영란법 말입니다. 입원이나 외래 일정을 당겨달라, 또는 특정 환자에 대해 잘 봐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안된다고 합니다. 그 댓가로 금품이 오간 정황이 있건 없건 부탁 자체도 안된다고 합니다.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문득 12년 전 제가 전공의 시절 만나뵈었던 환자분 생각이 났습니다. 2003년 한번 스치듯 뵈었던 환자가 2004년 작고하셨을 때 신문에 난 그의 부고를 보고, 당직실에서 당시 한참 유행하던 싸이월드에 아래의 글을 썼더랬습니다. 그 분은 입원하실 때 한 마디도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말씀이 없으셨고, 다른 이들의 부탁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다른 평범한 환자들과 다른 대접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일까요. 황달 든 세상에서 "잘 부탁드린다"는 말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셨던 것일까요. 고인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빕니다. 


----------------------------------------------------------------------------------------------------------

아침 신문을 펼쳤을때 눈에 들어온 글이다.

"당신께 암이 재발하고 황달이 찾아왔을 때도 선생님은 황달 든 세상과 노동자를 더 걱정했다. “오늘 노동자의 살길이 노랗고, 죽은 노동자들의 자식들이 노랗고, 불쌍한 다른 노동자들이 노랗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작년 2월 내가 항암단기병동  주치의를 했을 적에 인수인계하는 날에 잠깐 담당하였던 환자이다.

2박3일짜리 항암치료를 하고 곧 퇴원예정인 환자여서 나의 관심범위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분이고, 의례적인 회진을 돌고 안부인사나 나누고 퇴원시켰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2주 간격인 그 항암화학요법을 다시 받으러 입원하였을때에는 내 옆의 다른 전공의의 담당환자가 되었는데  얘가 갑자기 나에게 와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였다.

"너 예과때 김진균 교수님이라고 강의 들어본 적 있어?"

"응?"

"그 사회학과 교수님 있잖아...."

"아아...그 균자 돌림 형제 교수 말이지....(형인가 동생인가 되는 김세균 교수는 정치학과인가 그렇다)"

"그분이 지금 우리 환자로 계신데, 나 진짜 실수해버렸다"

"오옷! 나도 주치의했었는데 그 환자가 김진균 교수란말야?"

"그런데....나 그분 퇴원하는데 이것저것 물어보다보니까 항암화학요법에 대해 하나도 모르시더라구. 그래서 'ABC를 모르시네요'하고 이것저것 설명을 해드렸는데 '그런데 요즘 바빠서 그런 내용을 들을 새가 없었네요' 라고 그러는거야. 암환자가 바쁘긴 뭐가 바쁜가 싶어서 이상하게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까 사회학과 교수님이시더라구....잉...괜히 잘난척하고 설교했네...으으..."

"아아..."

그러니까 내가 건성건성 진찰하고 '괜찮으시네요, 퇴원해도 되시겠어요'라고 한마디 내뱉고 휙 돌아섰던 그 환자가 우리나라 진보학계의 거두였던 김진균 교수였단 말인가. 보통 서울대교수 정도 되는 이가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면 온갖 고상한 분위기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출퇴근을 하게 마련이고 보통 의대 교수 몇 사람은 다녀가며 잘 봐주기를 주치의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가는 것이 보통이기에 그러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naver에서 검색해서 띄워놓은 위의 사진은 그가 효순, 미선의 죽음 당시 '여중생범대위' 공동대표를 맡았을 때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 나온 것이다. 2003년 6월이었으니 한창 병이 진행되었을 당시였을텐데. 그 암환자는 이렇게 '바쁘게 사느라' 항암제 주사를 맞으면 어떤 부작용이 생기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제 몸 돌보는가장 기초적인 것들도 귀담아 들을 새가 없었던 것이다.

그분의 강의는 들어본 적이 없고 책도 사실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 지난 14일 신문에서 그분의 별세 소식이 실리고 살아생전의 인품과 학식을 칭송하며 빈자리를 아쉬워하는 조사들이 신문지면에 올라도, 세상 돌아가는 것엔 영 관심도 없고 잘 모르는, 한낯 무식한 전공의일 따름인 내가 몇마디 덧붙일 말은 없겠다. 내가 오늘 신문에 난 '김진균 선생님을 그리며'라는 제목의, 고병권(연구공간 수유+너머 공동대표)씨의 글을 읽으며 느끼는 것은단지 두가지다. 그 하나는 내가 지나쳐간 수많은 환자들의 삶의 이야기들과 자취들, 그것을 사랑하고 아꼈던 사람들의 마음들, 그것들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이고, 그 두번째는 암이 간까지 전이되어 결국 황달이 생겼을때 의 비참한 몰골과 고통을 수없이 목격해 왔지만 그런 속에서 '황달든 세상과 노동자'를 더 걱정하던 눈물겨운 마음씨는 감히 헤아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04.2.24 

작가의 이전글 태극기와 아이라인에 대한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