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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Oct 15. 2016

두 달 전  

외할머니를 하늘로 보내며 (1) 

'무슨 이런 베드리든 환자를 여기까지 데려왔어.'

외할머니가 우리 병원에 입원한 둘쨋날 아침에 출근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런 얘기를 들을 까봐 싶은 걱정이었다. 

물론 병원의 누군가가 나에게, 아니 어떤 보호자에게라도 대놓고 이런 얘기를 할 정도로 무례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이가 없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환자들을 병원에서 마주치면 늘 하던 생각이니까. 이미 인간으로서의 자율성을 상실한, 사실상의 식물인간 상태. 어제 입원한 외할머니는 그런 상태이다. 
어제는 방학을 맞이한 둘째를 돌보려고 휴가를 냈던 상태여서, 입원 당일은 할머니를 뵙지를 못해 마음이 불안했었다. 할머니가 안좋을까봐 불안했던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뒤에서 나에게 뭐라고 할까봐, 초기 치료계획이 분명치 않아 우왕좌왕할까봐 (병원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 한편 외가 가족들은 나에게 비싼 병실료에 대해 불평할까봐 (1인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1박 45만원. 다행히 직원할인은 된다고) 마음이 불안했다. 

할머니가 입원하신 이유는 경관영양을 유지하기 위한 위루관 교체를 위한 것이었다. 혈관성치매와 알츠하이머병으로 오랫동안 침상에 누워지내신 할머니는 음식을 삼키지 못하신다. 음식을 삼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구강과 인두의 수많은 근육들이 순서대로 조화롭게 적절한 강도로 수축해야 하는 복잡다단한 운동이다. 이게 안되면 배에 구멍을 뚫어 위로 들어가는 플라스틱 튜브, 즉 위루관를 넣고 여기에 미음을 넣어 영양섭취를 하게 된다. 이렇게 한 지도 어언 2년이 다 되어간다. 

위루관 교체를 인근병원에서 시도하다가 잘 안되었다고 한다. 외삼촌과 이모들은 내가 있는 큰 병원으로 오시기를 원하였고, 나는 곤란해하다가 결국 엄마에게 신경질을 내면서 입원장 발부와 병실 배정을 챙기기 시작했다. 내 앞으로 입원시키는 것은 내 전공과 맞지도 않거니와 전공의들이 힘들어할 것 같아서 상대적으로 업무량이 적은 노년내과로 입원시키기로 했다. 담당교수님과 상의를 하고 입원장을 받았다. 한편 남편과는 이런 상태의 할머니에게 과연 영양공급을 계속 해야 하는 것인지 회의에 찬 대화를 나누었고, 이번 기회에 저 위루관을 제거하는게 차라리 나을 것 같다고 여러 번 엄마에게 말씀드렸다.

 "그래도 어떻게 엄마를 굶겨...."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유지하는게 답은 아니잖아요" 

"내가 하겠다고 해도 동생들이 반대할거야..." 
그러나 오늘 할머니를 오랫만에 뵈니 알 수 있었다. 내가 엄마나 외삼촌의 입장이더라도, 저 위루관을 뽑는 결정을 하지는 못할 것임을.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말도 못하시지만 눈을 끔뻑끔뻑하며 나를 쳐다본다. 할머니의 피부는 뽀얗고 매끈매끈하다. 약간 붓긴 했지만 숨도 고르다. 혈액검사결과를 보니 좀 안좋고, 이전 병원에선 소변에서 반코마이신내성장구균이 나와 격리중이라고 했다. 
최근엔 발열도 있었고 혈액배양에서도 세균이 자라 (아마 단순 오염인 것 같기도 하지만) 항생제를 쓰다가 왔다. 뭔가 많이 꼬여버린 중환의 냄새. 처리곤란의 심란한 몸뚱아리. 그러나 분명히 생명은 있었다. 징후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생명이 이미 없어져 버린 거라고, 그렇게 간단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의사가 된 손녀가 가운 입은 걸 보고 싶다고 하시던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이미 자식들을 못알아보는 할머니의 얼굴에 자신들의 얼굴을 부비대며 사진을 찍은 엄마, 이모들의 휴대폰 사진이 떠오른다.

한편, 20년전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너희들 엄마말 잘 안들으면 엄마 도망갈지도 모른다'며, 혼자된 엄마에게 잘하라며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생이던 여동생에게 상처를 주었던 원망스러운 외할머니도 떠오른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당신의 딸이 안타까운 나머지 하신 말씀이겠지만... 

좋은 기억들, 나쁜 기억들. 사람의 인생이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할머니에게 최선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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