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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에 대한 의학적 소고

영화 <벌새>와 시나리오집을 읽고

by OncoAzim

은희: 선생님 오실 줄 몰랐어요...

영지: 나 병원 오는 거 좋아해.

은희: 왜요?

영지: 그냥 마음이 편해. 병원에 오면.

은희: 담배필 때처럼요? .............저도 이상하게 병원이 집보다 편한 것 같아요.


1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내가 좋아하고 흠모하는 모든 여성들이 열광하는, 그 영화 <벌새> 나도 드디어 봤다. 결국 영화관에 가서 보는 건 실패했고, 공식 상영 후 카카오페이지에 올라온 것을 유료결제해서. 대여했다가 소장하려고 한번 더 결제했다. 영화를 보며 왜 나오는 지 모른다는 눈물, 나도 흘렸다. 정말 왜 그런지 모르겠다. 이 아이 은희, 날라리인데. 난 이런 애 아니었는데. 연애하고 노래방 다니는 아이들 한편으론 부러웠지만, 난 그애들보다 더 깨어 있어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그 시절의 나를 지탱해주던 자존심이었는데. 내 인생은 빛날 거라는 생각 의심해본 적이 거의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의 불안과 슬픔이 날것 그대로 전해져 오며 생각지도 못한 장면들에서 왠지 모를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난 왠지 <벌새>에 대한 의학적 소고를 써보고 싶은 생각이 더 앞선다. 사춘기, 20세기말 한국사회, 여성, 퀴어에 대해서는 많은 논평과 감상이 있었지만 이런 것은 나밖에 쓸 사람이 없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병원이라는 장소가 나오고 질병이 중요한 코드로 등장하는데 무슨 병인지도 모르는 영화라니! 좀더 파고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는 나는 영락없는 병원인간인 것이다. 감독님은 <벌새>가 더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되는 것이 좋다고 하셨으니 이런 얘기를 해도 뭐 괜찮지 않을까?


1) 은희는 무슨 병인가?

은희가 귀 밑에 무언가가 만져지는 것을 느끼고, 병원에 가는 장면이 나올 때부터 아아, 저것은 악성림프종인가, 이렇게 신파로 흘러가면 안되는데, 라는 조바심이 들었다. (직업병이다) 예전에 공부하느라 목이 부어오르는 것도 몰랐다던 악성림프종 환아 이야기를 하는 소아과 선생님 말씀도 기억나고. 어린이 때는 엄마들이 병원에 데려가고 성인이 되어서는 본인 몸은 본인이 어느 정도 챙길 수는 있지만, 청소년기가 정말 건강관리의 블랙홀이라며 안타까워하셨었다. 아파도 병원 갈 시간도 없고, 어느 정도 아파야 병원에 가야 하는 지도 잘 모른다고.

아무튼 분명 이 병이 영화에서 중요한 장치일 텐데 이 병의 의미는 무엇일까. 조직검사를 하고, 큰 병원을 권유받고, 입원해서 종괴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는 궁금했다. 저 병은 무슨 병인가? 바로 퇴원하고 그 다음 치료가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악성 종양은 아닌 것 같은데. 왜 어린 아이에게 흉터를 남기면서까지, 안면신경마비를 무릅쓰면서까지, 제거해야 하는 것인가? 영화를 보고 <벌새> 시나리오집을 읽은 이후에야 아, 이 병은 영지 선생님을 병원에 오게 하기 위한 장치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만 역시 궁금해졌다. 사실 은희가 마취에서 깨어나며 자신의 혹이 어디갔느냐고 묻자 간호사가 "버렸지..."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나는 소스라쳤고 순간 분노까지 일었다. 그걸 버리면 어떡해! 조직검사를 해야 할 거 아냐! 그냥 버릴거면 왜 뗐어! (실제 수술 중 제거한 조직은 모두 포르말린에 고정한 후 얇게 썰어서 슬라이드 글라스에 붙이고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조직병리검사를 거친다. 안 하면 의료과실임)

아무튼 나의 궁금함은 '은희가 수술을 받은 부위는 위치로 보아 귀밑침샘, 즉 이하선 (parotid gland)으로 보이는데 10대 여성에게 발생하고 수술적 제거를 요하는 병변은 과연 무엇일까' 하고 트위터에 올리기에 이르는데, 역시 다른 의사선생님들께서 답을 주었다. 나는 두경부암은 진료하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다형선종 (pleomorphic adenoma) 이라는 이하선의 양성종양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로 젊은 여성에게 발생하는 비교적 흔한 질환이라고 한다. 악성종양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으니 수술을 조기에 하는게 좋다고. 이제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아마 은희 조직검사는 했을거야. 버리진 않았을 테니 안심해.

다형선종에 대한 정보는 다음 링크 참조.... http://www.samsunghospital.com/dept/medical/diseaseSub03View.do?content_id=1033&DP_CODE=PS&MENU_ID=003&ds_code=D0004168


2) 병원은 여자에게 왜 편한가?

일견 아늑해 보이지만 어둡고 위태로운 집과는 달리 은희가 입원한 6인실 병실은 환하다. 대부분 중년여성인 다른 환자들도 다 밝은 얼굴이다. 은희의 표정도 편안해 보인다. 실제 '집보다 편한 것 같다'고 하고, 밥도 잘 먹고, 더 배려받는다. 병원은 여기서 무엇을 의미하는 공간일까? 남다은 영화평론가님은 "죽음 혹은 병에 대한 두려움은 단지 공포만이 아니라 내적 평온 또한 동반하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쓰셨고, 그런 시각에도 나 역시 일부 수긍하지만, 병원인간으로서 한마디 더 붙이자면 '여자는 원래 병원에서 편안해 합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대부분의 여성은 집에서 늘 누군가의 부수적인 존재 또는 돌보는 사람이다. 환자가 되어야 관심받고 배려받을 수 있다. 은희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은희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시선과 말투가 바뀌고, 다른 아주머니 환자들은 '아기'라고 불러주며 귀여워한다. 여성에게 입원이란, 어쩌면 질병에 대한 공포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기회인 것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환자가 되어도 집에 있으면 누군가의 밥을 챙기고 빨래를 해야 하는 사람이 여성들이기에, 그들은 가능하면 입원을 원한다.

내가 주로 처방하는 항암제는 2박 3일간 휴대용 약물주입기를 몸에 부착하는 방법으로 투여된다. 집에서도 맞을 수 있어서 입원비를 아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환자들이 불편함과 불안감으로 입원을 원하는데, 이는 인건비와 감염관리의 부담으로 웬만하면 통원치료를 선호하는 병원 정책과 상충되고 입원환자를 돌봐야 하는 전공의의 업무부담이 가중되어 웬만하면 입원지시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입원하지 않으면 오히려 집에서 가사노동을 하며 항암제를 맞아야 한다는 여성들의 호소에는 마음이 약해진다. <벌새>에 나온 병실환자들은 너무 멀쩡해보이고 나이롱 환자같아 보여 병원인간으로서는 다소 불편한 장면이기는 했지만, 몸이 고장나야 올 수 있는 해방구 같은 공간, 그곳의 활기참이라니 어쩌면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3) 터진 고막을 보고 의사는 무슨 생각을 하는가?

오빠에게 뺨을 맞고 고막이 터진 은희에게 '진단서가 필요하니, 증거가 되니까...'라고 말하는 의사는 특별히 좋은 사람이어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고막천공의 원인은 외상이며, 그 외상의 원인은 폭력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의사들은 안다. 어떤 이비인후과 선생님은 '넘어졌다' '귀를 후볐다'는 환자의 말을 대개는 믿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 맞아서 터진 것인데, 가해자와의 관계 때문에 둘러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가정폭력인 경우가 그렇다고 하는데 은희 역시 그런 예이다. 부끄러워서, 민망해서라도 맞았다는 얘기를 하지 못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동학대가 의심되면 바로 관계 부서에 신고를 해야 하는 의무가 의료인에게 부과되기도 했으니 새서울의원 선생님은 아마 요즘같으면 진단서는 안써도 신고는 해야 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오빠에게 맞는 여동생들이 나오고, 그것을 아주 심각하게는 보지 않는, 허용하지는 않으나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하는 분위기 역시 그려진다. 오빠들이 특별히 가학성향이 있는 게 아니었지만 그들 역시 그래도 되는 줄 알고 자랐다. 아마 대부분의 가정이 그랬을 것이고 우리 집도 그랬다. 학교는 더 심했다. 선생님에게 맞아 고막이 터진 아이도 있었고, 발길질을 당한 아이도 있었다. 대개 날라리들이었지만 그들이 안되었다는 생각보다 그들과 나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더 앞섰었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았다. 영화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 같은, 모두가 그리워하는 평온한 90년대의 야만성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성수대교 역시 그런 장치이지만 나에겐 터진 고막이 더 끔찍하게 느껴진다. 물론 고막천공은 그 자체로 심각한 질환은 아니다. 대부분 특별한 치료 없이 잘 재생되고 통증과 청력도 회복된다. 그러나 폭력이 남긴 마음의 상처는 그리 잘 봉합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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