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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역사, 여성의 역사

<김지은입니다> , 김지은, 봄알람, 2020

by OncoAzim

2018년 8월, 안희정에게 1심 무죄판결이 내려진 직후 나는 가족들과 여름 휴가를 떠나고 있었다. 너무나도 화가 나고 답답했지만 그 사건이 중산층 전문직 워킹맘의 일상을 흔들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했고 사실 그러했다. 휴가 가서 잘 놀긴 했으니까. 그러나 여행가방에 챙긴 황현산 선생님의 <사소한 부탁>을 휴양지로 향하는 기내에서 읽으면서 왠지 자꾸 눈물이 났고 기내음료수와 같이 받은 냅킨 한장으로 계속 눈을 훔치는 꼴불견을 연출하던 기억이 난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그 때의 마음을 적어놓았던 그 때의 나에게 고맙다. (https://brunch.co.kr/@cathykimmd/108) '우리 각자의 삶을 형성하고 있는 무수한 이야기는 글로 쓰지 않으면 사라지고 만다'는 말을 한나 아렌트가 했다는데, 사실 무수한 이야기 중 어떤 것을 글로 써서 남길 것이냐, 라는 선택과 집중이 문제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이 문제를 선택하고 그 순간 집중했던 것이 다행스럽다. 이후 대법원 항소심에서 김지은씨가 거둔 작은 승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투쟁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기록을 다시 펼쳐본다. 눈물이 났던 이유는 이육사의 시 <광야>에 대한 평론인 <닭 울음 소리와 초인의 노래>를 읽고서였다. 황현산 선생님은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라는 첫 연을 이렇게 해석한다.


‘천지가 개벽하는 순간, 하늘이 어떤 지고한 소리를 울려 자신을 진리 그 자체로 선포하고, 신성한 뜻을 가르쳐 인간이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미리 정해놓았던 것은 아니라고 시인은 생각한다. 따라서 시인이 천지개벽의 닭 울음소리를 부정할 때, 그것은 이른바 저 섭리의 목소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천지가 단지 그렇게 열렸을 뿐 어찌 지엄한 닭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렸겠냐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제 운명을 제가 설계해야 하며, 제 노래를 스스로 만들어 불러야 한다. 하늘의 섭리가 아니라 인간의 역사와 그 진보를 믿는 자인 육사의 의지가 바로 이렇게 한 '땅의 역사'로 표현된다."


<광야>의 다음 연들에서는 그 ' 땅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노래한다.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
지금 눈 내리고 /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땅의 역사'를 만들기 위한 '가난한 노래의 씨'가 마치 그 날의 1심 결과인 듯 하여 눈물이 났다.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끊임없는 굉음'은 어찌 이리 참혹한가. 그럼에도 1심 선고 바로 당일 나온, 누구보다 많이 좌절하고 아팠을 당사자인 김지은씨의 입장문에 담긴 힘과 의지는 놀라웠다. 그녀가 뿌린 노래의 씨를 언젠가는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목놓아 부를' 날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녀의 입장문을 옮겨적었더랬다. <김지은입니다>를 읽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날 이후 제대로 걷지도 못한 채로 재판정을 나선 후 블랙아웃처럼 기억이 통째로 없어졌었다고. 사흘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했으며, 토하기를 반복하는 상황이었다고. 그 와중에 이런 글을 썼던 것이다.


하늘 아래 여자는 이러해야 한다는 자연의 섭리, 닭 울음 따위는 없었으니 인간인 여성의 힘으로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는’ 하루가 바로 8월 14일이었음을, 우리는 김지은씨의 말에서 알 수 있다. “제가 굳건히 살고 살아서, 안희정의 범죄 행위를 법적으로 증명할 것입니다. 권력자의 권력형 성폭력이 법에 의해 정당하게 심판 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저를 지독히 괴롭혔던 시간이었지만 다시 또 견뎌낼 것입니다. 약자가 힘에 겨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세상이 아니라, 당당히 끝까지 살아남아 진실을 밝혀 범죄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초석이 되도록 다시 힘을 낼 것입니다.”


몇 달 전에 출간되지마자 사둔 <김지은입니다>를 꺼내든 것은 또다시 금요일 하루 휴가를 내어 강원도에 다녀오던 날이었다. 최근 일어난 일들 - 손정우 석방, 안희정 모친상, 그리고 휴가 당일 새벽에 일어난 박원순의 자살 - 때문에 오히려 다른 책을 읽으며 마음을 쉬게 해야겠다 싶긴 했지만, 더 이상 이 책을 안읽은 채로 두어선 안되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성폭력이 그 자체로, 그리고 2차 가해로 어떻게 한 사람의 존재를 피폐하게 만드는지, 그럼에도 콘크리트의 틈 속에서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어떻게 고통을 삭이며 살아내는지를 생생하게 그린 글들을 읽으며 더 늦기 전에 읽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실은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코로나의 일상이 아직까지 매일 얼굴과 몸을 둘둘 가리고 다녀야 하는 그녀의 상황에 약간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아 안도가 되기도 했다. 미세먼지가 반갑고 빗속의 우산이 자신을 가려주어 보호받는 것 같다는 느낌이 차마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지난 한 주는 정말 여성들을 좌절하게 하는 사건으로 가득했다. 당연히 미국으로 송환되어 여기서 치르지 못한 죄값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손정우는 책상물림 판사의 얼토당토않은 사법주권 자존심을 채워주기 위해 자유의 몸이 되었다. 김지은씨의 승리로 마무리되고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한 안희정은 옥중에서 당한 모친상을 다시금 자신의 인맥과 위력을 자랑하는 기회로 삼았다. 박원순은 본인에게 제기된 성폭력 의혹을 풀 기회 자체를 죽음으로써 차단해버렸다. 피해자에 대한 한 마디 언급이나 사과도 없이.

박원순 씨를 지지하고 사랑했던 이들은 그가 떠난 것이 황망하고 억울할 것이다. 노무현처럼 정치적 공격이 참혹해서, 노회찬처럼 작은 오점을 저지른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해서 갔을 거라 느낄지도. 아마도 누군가를 탓하고 싶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작은 피해를 참으면 더 큰 좋은 세상이 왔을 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아니, 피해가 없었을 지도 모르는데 모함을 당했을거라고 생각하고 싶을지도 (그러나 상식적으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을만큼 유약한 이도 아니었고 대처를 못할 만큼 힘이 없지도 않았다. 3선 서울시장인데!). 그러나 성폭력은 작은 범죄가 아닌 건 다 알지 않나. 왜 내 편이 당한게 아닐 때는 하찮은 것이 되어버리나. 피해자의 인격을 말살하고 파괴하는 행위라는 것을 모두가 알면서도 왜 참고 넘기라고 하나. 게다가 대개 직장에서의 성범죄는 성범죄 자체에 그치지 않는, 그 뒤에 숨은 위력과 비민주성, 부정과 불의의 결과임을 <김지은입니다>에서는 말하고 있다.

"나는 정신이 너덜너덜해진 채 매일 밤 세탁기를 돌리면서 내 더러워진 영혼도 함께 돌렸다. 빠지지 않는 찌든 때를 빼기 위해 독한 표백제를 넣어 돌렸다. 안희정에게 첫 피해를 당할 때 쯤에는 이미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오직 대권만을 바라보는 사람들 속에 갇힌 채, 어디에도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없음을 절실히 느끼는 상태였다." (p.87)


박원순이라는 개인은 한 역사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시민운동을 통해, 변호사로서, 시장으로서 남긴 감동과 희망이 아무리 크다 한들 성폭력 범죄를 가릴 수는 없다. ‘성희롱'이란 법률 용어를 처음 도입하게 된 재판에서 변론을 하고, 여성인권신장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던 정치인 역시 성범죄를 저질렀다면, 그에 맞는 평가와 처벌을 받는 것이 그가 만들고자 했던 세상에 더 가까울 것이다. 서울광장 한가운데에 큰 영정을 세우고 5일간 조문을 받는 것보다.

박원순의 삶 만큼이나 <김지은입니다> 역시 하나의 역사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에 희생되었던 개인이 "이기든 지든 싸움의 끝에 나는 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견뎌내고 "살아서 인정받을 수 있는 사례를 만들"기까지 (p,254), 육사가 노래하였듯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기까지" 겪어야 했던 아픔의 기록은 역사가 될 것이다. 미국에서 흑인민권운동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인종차별을 생각하면 이 나라에서의 뿌리깊은 성차별과 성폭력 역시 끈질기게 여성들을 괴롭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온한 일상으로 되돌아가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녀의 기록을,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역사로 읽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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