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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Oct 19. 2016

할머니의 사진첩

외할머니를 하늘로 보내며 (3)



할머니의 빈소는 내가 일하는 병원에 마련했다. 재작년 외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셨을 땐 해외학회에 참석하느라 제대로 빈소를 지키지 못해 마음에 짐으로 남았던 터라, 이번엔 가급적 빈소에 오래 머무를 작정이었다.


할머니는 자식 다섯을 낳고 군인 출신의 가부장적인 남편을 섬기다시피 살아온 평범한 주부였고 독실한 가톨릭신자였다. 일견 평탄한 일생을 살아오신 듯 하지만, 나름의 상처가 있다.  하긴 알고보면 상처가 없는 사람이 있으랴만은. 우선 외할머니보다 앞서 간 사위가 둘이나 된다. 하나는 암으로 40대에 세상을 뜬 우리 아빠이고, 또 하나는 역시 40대에 뇌출혈로 할머니와 비슷한 식물인간 상태로 장기간 병원 생활을 하며 고통을 겪었던 작은 이모부이다. 딸들이 차례로 자신보다 남편을 먼저 잃는 것을 봐야 했던 슬픔을 겪는 경우가 흔하진 않을 터. 그러나 무엇보다 할머니의 인생에 가장 큰 상처는, 본인이 인생의 마지막 몇 년에 겪었던, 인간으로서의 의지와 자율성이 박탈되었던 그 시기였을 것이다.  그것을 고통으로 느끼셨던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으나. 어떻든 가족들이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할머니의 모습임에는 분명했다.

 십여년 전 준비해두셨다는 수의로 갈아입은 할머니의 모습이 엄마와 이모들에게는 차라리 위로가 되었던 모양이다.

“매일 환자복 입은 것만 보다가… 수의로 갈아입히니까 보기는 좋더라”

“난 상조회사에서 생화를 왜 가져왔나 했는데 그걸로 장식을 해주니까 엄마가 이뻤어”

“그런데 아버지 수의보다 훨씬 좋지 않아? 아버지 것은 옷감이 뻑뻑하던데 자기 것은 좋은 걸로 준비하셨네”

자매들의 수다는 슬픔을 이기게 해 주는 힘이 되는 것 같다.


할머니의 사진첩에서 나온 몇 점의 사진을 돌려본다. 가장 행복했던 시기의 사진이 나온다. 90년대에 큰이모부가 하와이에 교환교수로 가 계셨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모댁에 초대받아 여행을 가셨었다.  하와이의 따스한 햇살과 여유로운 미소들, 다채로운 자연의 색깔들은 서울의 회색 하늘 아래에서 단조로운 삶을 살아가던 60대 주부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활짝 웃는 할머니의 하와이 사진들은 나도 대학생 때 본 적이 있다. 한편 귀국하는 비행기에서의  할머니의 표정은 너무나 우울했다는 이모의 말에, 나는 평온하게만 느껴졌던 중산층 주부로서의 삶이 본인에게는 감옥과도 같이 느껴졌을 것이란 생각을 처음으로 했었다.

의외의 사진도 나왔다. 아빠가 어린이대공원에 남동생과 나를 데리고 가서 찍어준 사진이었다. 의외라고 생각했던 것은…. 할머니의 사랑에 대해 약간 냉소적으로 생각했던 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 손녀에게 할머니가 주셨던 정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실 나는 가장 먼저 태어난 아이로서 어린 시절 외가식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러나 한참 후 거의 열댓살 터울이 나는 외사촌동생이 태어나면서 느끼게 된 것은, 친손자에게 주는 사랑은 뭔가 차원이 다른 것이랄까, 뭐 그런 것. 외가에서의 성차별은 아주 노골적이지는 않았으나 드러나지 않을 정도도 아니었다. 아니, 우리에게 소홀하셨다기보다는, 아들과 친손자에게는 너무나 각별하게 잘해주셨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 사진을 보니 뭔가 목으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할머니는 당신이 입원한 병원엔 거의 찾아가보지 않았고 일년에 두어 번 볼까 말까했던 외손녀와 외손자의 어릴 적 사진을 가지고 계셨구나. 물론 아프시기 전에 정리한 앨범이겠지만 말이다.

가족을 잃은 사람을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 사실 나는 매일 하는 일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자의 가족을 만나는 것이라 이럴 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았다. 뭐라 말할 지 모를 때 나오는 피상적이고도 영혼없는 위로의 말 (좋은 데 가실 거에요/ 더 이상 고통이 없으실 거에요)을 해놓고는 후회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는, 고인의 생전 모습을 추억하고 고인이 유족들에게 남긴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한다.

 할머니는 나에게 무엇을 남기셨을까. 그냥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에 활짝 미소를 띤 할머니가 떠오른다. ‘어이구~ 우리 선영이 왔어?’라며 맞아주시던 목소리에 담긴 따뜻함. 할머니의 화장대와 이부자리에서 나던 그리운 향기로움, 그런 것들이면 충분한 것 같다. 할머니의 삶은 나에게 남겨주신 그 기억만으로도 분명히 충만하였고 아름다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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