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1028027018
학부모로서 내 아이의 학급에서 몇 명이 공부하느냐는 중요한 관심사다. 한 반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으면 학습 환경도 좋지 않을 것이고 특히 코로나 유행상황에서는 방역도 문제가 된다. 2020년 기준 학급 당 학생 수는 초등학교가 21.8, 중학교가 25.2명이라고 한다. 이는 교육의 질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로서, 교육부에서 매년 발표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는 학급 당 학생 수를 더 줄여서 20명으로 법제화하자는 법안도 발의되었다. 80-90년대 한반에 50-60명씩 들어찬 콩나물 교실에서 공부했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엄청난 변화다.
그런데 환자들은 나를 담당하는 의사나 간호사가 몇 명을 진료하는 지에는 큰 관심은 없는 것 같다. 물론 학교에서처럼 다른 환자들과 동시에 한 공간에 있는 것도 아니요, 내 몸이 아픈데 남들에게 신경쓸 여유는 당연히 없을 터이다. 그러니 의사가 서둘러 진료를 마치며 '다른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면 야속하게 느껴질 수밖에. 그러나 의사 한 명이 몇 명을 진료하느냐는 교사 한 명이 몇 명의 아이들을 담당하느냐와 마찬가지로 진료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의료진이 담당하는 환자 수가 과도하게 많으면 환자 1인당 진료 시간은 짧아질 수밖에 없고, 짧은 진료시간은 불필요한 약제 처방, 항생제 남용, 의사소통의 장애, 그리고 안전사고의 증가와 같은 여러 문제를 낳는다.*
학급 당 학생 수처럼 어느 정도가 적정하냐에 대한 기준은 사실 아직 없다. 그러나 미국에서 이루어진 설문조사연구를 기준으로 말한다면 의사 1인당 하루 외래 진료 환자 수는 20명**, 당직 근무시에 담당하는 적정한 입원환자 수는 15명 정도라고 한다***. 간호사의 경우 대다수의 선진국은 1인당 담당입원환자 수가 5명 내외이다****. 그러나 내가 주로 경험하는 종합병원의 내과를 기준으로 말한다면, 하루 종일 의사 한 명이 진료하는 외래 진료 환자 수는 50-100명가량이다. 입원환자를 주로 담당하는 전공의는 30-40명의 진료를 맡고 당직 때는 100명을 넘어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간호사 1인당 담당환자 수는 15-20명 정도로 선진국의 3배에 이른다****. 솔직히 늘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사선을 넘나드는 일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실은 콩나물 교실을 벗어났는데 병원은 아직도 콩나물 병원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들은 '환자 유치'에 늘 적극적이다. 환자를 많이 봐야 병원의 경영이 유지되는 의료 수가 구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물론 의사는 전문직이므로 노골적인 실적 강요를 받는 일은 드물지만, 어느 병원이나 환자를 많이 보도록 의료진에게 은근한 압박을 가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이것이 민간병원의 탐욕 때문이며, 공공병원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국립병원에서도 근무했었는데, 그곳에서도 환자를 더 많이 보라는 압박은 사립병원과 다르지 않았다. 진료 실적을 진료과끼리 비교하여 의료진 간에 은근한 자존심 싸움을 붙이고, 많은 환자를 진료할수록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은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대한민국의 병원에서는 모두 비슷하게 일어난다. 만약 학교에서 교사들에게 학급에 더 많은 학생들을 받도록 독려하고 그만큼 더 성과급을 주겠다고 한다면, 그리고 교육부가 이를 방관하고 있다면 어떨까? 교사들을 물론 학부모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의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최근 의료 파업으로 인해 의사의 수가 어느 정도가 적정한가에 대한 논쟁은 매우 치열했지만, 아직 합의나 결론에는 이르지 못했다. 적절한 학급 당 학생 수처럼, 의사 수가 아니라 환자의 수부터 출발하는 것이 인식의 차를 좁혀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최소한의 진료의 질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의사 한 명, 간호사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의 수는 몇 명일까? 적절한 질의 진료를 보장하기 위해 병원은 의료진을 얼마나 더 많이 고용해야 할까? 고용에 드는 비용은 누가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모두 어려운 질문들이지만 함께 답을 찾아나가는 것이 환자와 의료인 모두 불만이 가득한 우리의 의료제도를 좀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길이지 않을까 한다.
*https://bmjopen.bmj.com/content/7/10/e017902
"Many of the studies included in this review also found that short consultation length was responsible for driving polypharmacy, overuse of antibiotics and poor communication with patients."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to-your-health/wp/2014/05/22/how-many-patients-should-your-doctor-see-each-day/A 2007 article in "Family Practice Management" took a stab at this one and suggested that at 3.1 visits per year, a doctor who sees 20 patients a day could have about 1,400 people under his care — a heck of a lot fewer than the 2,300 or so mentioned above. At 25 patients a day, that doctor could handle a "panel" of 1,750, still far fewer than the actual average.
***https://jamanetwork.com/journals/jamainternalmedicine/fullarticle/1566604
"Regardless of any assistance, physicians reported that they could safely see 15 patients per shift if their effort was 100% clinical."
****http://www.rapport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18043
배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은 간호사 1명이 평균 16.3명, 병원은 43.6명의 환자를 맡고 있다"면서 "이는 미국(5.7명), 스웨덴(5.4명), 노르웨이(3.7명)와 비교해 적게는 3배, 많게는 11배나 많다"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간호사 1명 대비 과도한 환자 수는 간호사에게 장시간 근무나 초과근무, 높은 업무 강도, 충분하지 않은 휴게시간 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결국 병원은 떠나게 함으로써 인력수급 불균형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 밖의 참고자료
1) 2003년 의협은 환자 수 제한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의료법 시행규칙에 강하게 반발.
"환자 수에 따라 의사 정원을 규정한 의료법 시행규칙 제 28조 6항이 위헌소지 있다는 기사가 보도된 후 의협이 이를 적극 검토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어 "해당 법규는 일반 식당에서 음식을 파는데 정부에서 그 수를 제한 하는 것과 똑같은 맥락"이라며 "이는 자본주의 사회를 떠나서도 정부가 개인에게 이와 같은 과도한 제한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의협의 대응을 적극 환영했다."
http://www.medicaltimes.com/News/1328
2) 2020년 8월 의료정책연구소 안덕선 소장의 글.의사의 수가 충분하다고 주장하였으나 개인적으로는 의사의 과로를 기본값으로 놓고 계산한 결과로서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http://www.healthfoc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6840
3) 2018 SURVEY OF AMERICA’S PHYSICIANS. 평균 일 진료환자수는 약 20명 정도로 답함
https://physiciansfoundation.org/wp-content/uploads/2018/09/physicians-survey-results-final-2018.pdf
4) 2019년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전공의 1인당 담당환자수 제한을 주장
http://www.medigatenews.com/news/2474756338
5) 2018년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전공의 근무환경조사 결과를 발표. 당시 당직 근무시 전공의 1명당 환자 수 : 평균 40명 최대 300명 보통 내과는 100-120명 정도
https://www.medifonews.com/news/article.html?no=135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