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수검사는 혈액질환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검사다. 백혈병에 걸린 비련의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에도 시련을 상징하는 소재로 종종 등장한다. 극한의 고통을 수반한다고 알려진 이 검사는 혈액질환의 진단과 치료 결과 판정에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과정이다. 골수는 영어로 본 매로우 (bone marrow), 골수검사는 본 매로우 이그잼(exam)인데 혈액내과 의사들은 대개 본 매로우, 또는 매로우라고 줄여서 부른다. 이제 매로우 할 때가 되었네. 다음 매로우는 6개월 뒤. 매로우 결과가 어떻지.
나는 손기술을 타고난 의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매로우는 잘했다.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했기 때문에 잘할 수밖에 없었다. 매로우를 많이 한 이유는 레지던트 때 세부전공으로 혈액종양내과를 선택한 탓에 남들이 기피하는 혈액종양내과 낮병동 근무를 많이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분과에서 골고루 내과의사로서의 포괄적 역량을 키우는 수련의 목표와는 반대방향으로 나는 낮병동에서만 거의 7-8개월을 근무했다. 심장초음파도 내시경도 배우지 못했다. (어차피 배워도 혈액종양 전문의로 근무한다면 쓸 데가 없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말도 안되는 스케쥴을 보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을 정도로 당시의 수련 시스템은 엉성했다. 낮병동에서는 주로 항암제를 처방하는 일을 했지만, 종종 외래에서 예약된 골수검사가 아침에 잡혀 있어서, 나는 늘 하루를 환자들의 골반뼈를 쑤시면서 시작했다.
엎드린 환자의 엉치뼈를 만지며 위치를 잡고, 리도카인 마취제를 골막에 주사하여 마취하고 무지막지한 크기의 바늘을 뼈에 쑤셔넣는 것이 골수검사의 과정이다. 끈적한 액체로 된 골수를 먼저 뽑고, 바늘을 좀더 깊숙히 쑤셔넣어 길쭉한 뼛조각을 채취한다. 뼛조각이 길게 나올 수록 검사는 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가끔 내과 레지던트들은 "나는 본 매로우가 몇 cm 짜리가 나왔어!" 라며 서로간에 소위 '플렉스'를 하기도 하는데, 나는 아직 3cm가 넘게 나왔다는 모 선생님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다. 대개 잘 나오면 1.5-2cm 정도니까.
여튼 이 무지막지한 검사를 반복하면서 나는 골막을 효과적으로 마취하는 나름의 노하우를 얻게 되었고, 손도 빨라졌다. 환자들은 입원했을 때 했던 것보다 덜 아프다며 좋아했고, 병동에서는 대개 1-2년차 전공의들이 검사를 하므로 3년차인 내가 하는 것이 덜 아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3년차도 보통 3년차가 아니었지. 골수검사를 손에서 놓게 되는 보통의 3년차가 아니라, 낮병동에 처박혀 골수검사의 달인이 되어버린 3년차. 나중엔 골수검사를 두려워하는 환자들에게 무슨 사이비 교주처럼 “내가 하면 안아프다”며 큰소리를 치고 있었고, 그동안 함께 일해 익숙해진 간호사도 “우리 선생님이 잘하신다”며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수 개월간의 짧은 ‘매로우 달인 클리닉’을 운영하면서 나는 이 검사에 애정과 열정을 느끼게 되었다. “와 이번엔 정말 안아파요!”라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환자들을 보면 보람도 있었고, 주사기 안에 차오르는 걸쭉한 빨간 골수액과 길쭉하게 나오는 뼛조각을 볼 때면 왠지 모를 희열까지 느껴졌다. 아, 성공이야. 왠지 그럴리도 없지만 골수판독실에서는 ‘이 검체 참 잘 나왔다’며 검사자를 칭찬하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까지 들었다. 판독하는 사람 입장에서야 검체의 질이 나쁘면 욕을 하지만 좋다고 칭찬을 할 리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골수판독실의 6인용 현미경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검사자를 성토하는 일은 실제 종종 있다.
“이 검체는 다일루션 (dilution: 희석)이 많이 되어 판독이 영 어렵네요….”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아… 다시 해야 하나요? 웬만하면 이걸로 좀 봐주시죠. (옆의 펠로우에게) 이 검사 누가 했어? 좀 찾아보고 교육 좀 잘 시켜.” (혈액종양내과 교수)
이런 식이다. 종종 검사가 제대로 안되면 골수 주변의 혈관에서 말초혈액이 같이 뽑혀져 나오는데, 이것이 가장 흔히 하는 실수다. 좀더 세포 농도가 낮은 말초혈액이 골수액에 섞이므로 이를 희석이라고 한다. 환자 입장에서 그 고통스러운 검사를 받고도 제대로 진단이 안된다는 것은 한마디로 악몽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매로우 장인. 일단 나에게 오면 희석이란 없다는 얼척없는 자부심이 뭉게뭉게 솟아올랐다.
골수검사는 수술이나 내시경처럼 전문의가 하는 일이 아니다. 위에 적었다시피 레지던트 1-2년차가 하는 침상술기 (bed side procedure), 즉 병실에서 하는 비교적 간단한 시술 중 하나다. 3년차만 되어도 대개 손을 뗀다. 전문의는 골수검사결과를 놓고 치료를 결정하는 사람이지 골수검사를 직접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골수검사는 늘 경력 1-2년째의 초심자의 몫이 되고, 환자들은 종종 서툰 손길에 극한의 통증을 느끼게 된다. 꼬여버린 수련 스케줄 때문에 본의아니게 매로우의 달인이 되어버린 3년차를 만나는 행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말이다. 골수검사는 개원을 해서 쓸 수 있는 기술도 아니요, 검사대상 환자의 수도 소수의 혈액질환 환자로 제한된 까닭에 이걸 잘 한다고 해도 그다지 이점이 없다. 골수검사의 달인이 된들 인정이나 보상을 받을 길이 없으니, 잘 하는 사람이 좀처럼 없는 것이다.
외국의 병원에서도 이에 대한 고민은 비슷했던 것 같다. 독일의 한 병원에서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간호사에게 골수검사방법을 교육하고 수련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의사들은 이런 로우-테크 (low-tech) 기술에 시간을 투자하고 싶어하지 않고, 여러 과에서 로테이션 근무를 하는 수련의사가 주로 골수검사를 하므로 숙련도가 들쑥날쑥했기 때문이었다. 골수검사수련을 받은 전문간호사와 의사의 시술을 비교해본 결과 환자들의 만족도는 전문간호사의 시술에서 더 높았다. 시술 후 통증이 거의 없거나 약간만 있다고 대답한 비율은 전문간호사에서 90%, 의사의 시술은 76%였고, 검체의 질은 양쪽이 비슷했다. 중대한 합병증은 양측 모두 없었다. 적어도 간호사가 골수검사를 한다고 해서 크게 위험하거나 검사에 실패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고, 어쩌면 시술자가 의사냐 간호사냐보다는 누가 더 많이 해보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실은 우리 나라의 모 병원에서도 전문간호사가 골수검사를 담당했던 시기가 있었다. 골수검사의 공포에 더 민감한 소아암환자의 불안을 덜기 위해 전문간호사 한 명이 골수검사만을 담당하도록 교육을 시켜 투입한 것이 시작이었다. 부모들의 반응이 좋고 만족도가 올라가자 성인 혈액암환자를 담당하는 골수검사 전문간호사도 두게 되었다. 그들은 아마 수 년간 매일같이 하루 종일 매로우만 하고 살았을 것이니, 십수년전 레지던트 3년차 때 하루에 1-2개씩 수개월을 매로우를 하고 달인이 된 나보다도 더 높은 경지에 다다랐을 터였다.
그러던 중 그들은 갑자기 매로우를 중단하게 되었는데, 의료법 위반으로 한 의사단체에 의해 고발이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간호사가 골수검사라는 의사 고유의 업무를 하는 것은 면허 범위 밖의 행위라는 것이 고발 이유였다. 결론은 기소유예로 마무리되었으나, 어쨌든 법 위반의 소지가 인정된 만큼 다시 전문간호사가 골수검사를 시행할 수는 없게 되었다. 골수검사는 다시 의사생활 첫 1-2년만 하고 마는, 영원한 미숙련자의 노동이 되었다. 특별히 흥미롭거나 크게 발전할 만한 일이 없는 시술이라, 앞으로도 전문의가 하는 영역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골수를 뽑지 않고도 혈액질환의 진단이 가능할 만한 표지자를 찾는 것이 차라리 더 기대되는 방향이기는 하지만, 워낙 골수에서 알 수 있는 정보가 많고 연구를 위한 값진 재료이기도 해서 쉽게 골수검사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낮병동 근무를 마친 후 나중에 보니, 내 뒤에 낮병동에서 근무하게 된 후배들은 인턴에게 골수검사를 가르쳐서 시켰고 이후에는 자연스레 인턴이 하는 일이 되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부아가 났다. 1년차가 하는 것도 못미더운데 한달만 로테이션 하고 가는 인턴에게 매로우를 맡기다니. 하지만 그런 생각이라면 그 누구도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가 없겠지. 모두가 숙련자에게 시술을 받을 수는 없는 거잖아. 게다가 워낙 낮병동의 골수검사 건수가 많다보니 한달을 일하고 가는 인턴들은 웬만한 내과 1년차 레지던트보다 골수검사를 더 잘하는 실력을 갖추고 낮병동을 떠나기도 했다.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고 잘했다고 칭찬하지도 않는 골수검사에 나는 너무 깊은 애정을 쏟아부었나 싶어 머쓱해졌다. 지금은 혈액암 진료를 하지 않으므로 골수검사에서는 더욱 더 멀어졌지만, 가끔은 그렇게 몸으로 하는 일에 단순한 열정을 불살라본 적이 언제였던가 싶어 그 때가 그리워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