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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Apr 24. 2021

스크럽

마지막으로 스크럽을 선 것은 십수년 전 모 대학병원 혈액종양내과 펠로우 때였다. 인턴 때 이후 4년만이었고, 첫아이를 임신하고 8-9개월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삭의 몸에 간신히 남자용 대짜 수술복을 걸쳐 입고 뒤뚱뒤뚱 수술방으로 향했다.

‘스크럽을 선다'는 것은 수술장의 무균구역(sterile area: 환자의 수술부위가 노출된 주변 공간)에 들어가는 행위를 말한다. 사실 그대로 번역하면 말이 되지 않는다. ‘긁는 것을 선다’고? 스크럽 (scrub)은 수술방에 들어가기 전 소독액 비누가 묻은 솔로 2-5분간 손과 팔을 박박 긁어 문질러 닦는 것이다. 요즘은 솔로 문지르는 것은 피부에 상처를 유발해서 권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손에 묻은 세균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비누 말고도 충분한 마찰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의학드라마에서 흔히 묘사되는 장면이라 일반인에게도 비교적 익숙할 것이다.

복도에서 씻은 손을 올리고 (오염을 막기 위해 팔꿈치 위로 올려야 한다) 당당하게 수술장에 들어가면 스크럽 널스 (먼저 무균 필드에 들어와 있는 간호사)가 다가와 손을 닦을 소독 수건을 주고, 소독 가운을 앞 방향에서 입혀준 후 장갑을 끼워준다. 이 때 스크럽 널스가 벌려준 장갑입구를 거쳐 다섯손가락이 제 위치에 한번에 쑥 들어가도록 리듬감있게 움직여야 프로다. 서큘레이팅 널스 (무균 필드 바깥에서 보조하는 간호사)가 뒤로 다가와서 가운의 뒷부분을 단단히 여며준다.두 간호사의 시중(아님)을 동시에 받으며 왠지 대단하고 왕이 된 것 같은 (보통 드라마 <하얀거탑>의 둥둥, 두두둥~ 하는 배경음악이 머릿속에 흐른다) 기분은 딱 여기까지다. 무균구역에 들어가면 감염위험 때문에 손을 가슴 아래로 내려서는 안되고 등을 돌려서도 안된다 (등은 소독이 안된 부위이므로). 가장 힘든 것은 앉을 수 없고 가운을 벗기 전까진 계속 서 있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스크럽 선다’고들 말한다. 수술은 짦으면 1-2시간이지만, 수십시간이 걸리기도 하는 이식수술에 들어가면 다리에는 쥐가 나고 배는 꼬르륵거리며 사지가 후들거리는 건 흔한 일. 화장실도 문제다. 물론 대개 미리 다녀오기는 하지만, 생리 양이 많은 여성 의료인이라면 스크럽 서는 건 꽤 고역이다. 일단 생리통으로 서 있기도 힘들지만 생리대를 갈러 갈 수가 없으니 넘치는 건 다반사다.

수술장에 갈 일 없는 내과계 의사에게 스크럽을 서는 경험은 대개는 인턴때로 끝나는데, 펠로우 때 오랜만에 스크럽을 서게 된 이유는 골수 채취 때문이었다. 조혈모세포 이식에 쓸 골수를. 조혈모세포 이식은 백혈병, 림프종 등의 혈액암의 중요한 치료 방법중 하나로, 공여자의 조혈모세포를 채취해 환자의 혈관에 주입해주는 시술이다. 조혈모세포는 피를 이루는 적혈구, 백혈구 등을 만들어내는 줄기세포로, 뼛속의 골수라는 조직에 모여있다. 보통은 공여자에게 조혈촉진제를 주사해서 조혈모세포를 말초혈관으로 나오게 한 후, 헌혈을 하듯 공여자의 피를 뽑아 조혈모세포를 채취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펠로우를 하던 2000년대 중반에도 이미 대부분의 이식을 그런 방법으로 했으나, 골수의 조혈모세포를 직접 채취하여 주는 경우도 드물게 있었다. 그 날의 스크럽은 공여자의 골수를 뽑기 위해서였다. 

수술장에서 전신마취한 공여자의 골반뼈에서 뽑아낸 골수는 ‘피같은’이라는 형용사를 쓰기에는 너무 귀하다. 말 그대로 피보다 더 진한 피의 씨앗들이니까. 환자의 골수로 스며들어 새로운 혈액세포를 만들어낼 씨앗들 말이다. 임신 막달에 스크럽을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교수님과 골수를 뽑았다. 계속 서 있다 보니 뱃속 아이의 머리부분이 골반을 내리누르며 아랫도리가 빠개지는 듯 했지만,  골수를 뽑느라 공여자의 골반에 낸 수십개의 구멍에 비길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수는 무사히 잘 뽑기는 했으나 그날의 이식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조혈모세포이식은 내과 치료 중 사망위험이 가장 높은 치료다. 치료성적이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10-20%의 환자가 치료 중 부작용이나 재발로 사망한다. 하지만, 하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잘 했다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라고 한점 부끄럼 없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경우는, 고통스럽지만 별로 없다.

 



스크럽을 섰을 때 실수로 손을 뻗어 흘러내린 안경을 치켜 올린다던지, 마스크에 손을 댄다던지 하는 일상적인 행동은 모두를 경악하게 하는 만행이다. 물론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실수로 무균구역이 아닌 곳에 손이 닿아 쫓겨나서 가운을 벗어야 했던 경험은 대부분 학생실습 때나 인턴 때 한두 번은 겪게 된다.

“아오 저거 컨탬!”

의료인들이 의학드라마를 잘 보지 못하는 이유 중 주요한 것 중 하나가 ‘컨탬(contamination)’이다. 무균구역에 소독안된 물체가 턱 놓이거나, 스크럽한 손으로 컴퓨터 모니터를 만지거나 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요즘 드라마에서는 드물다고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면마다 자잘하게 보이는 ‘컨탬’은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결국은 채널을 돌리기 십상이다. 무균법에 오감을 길들여놓은 대가로 의학드라마는 보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리고 만다. 얼마전 지하철에서 본 모 한방병원의 광고에서는 스크럽을 다 한 것처럼 가운과 장갑, 마스크를 낀 의료진들이 태블릿 PC를 손에 들고 같이 보며 의논하는 장면이 나와 아연실색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가 늘 '컨탬 빌런'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내가 스크럽의 중요성을 처음 실감하게 된 계기 역시 의대생 때 본 드라마였다. 의학드라마는 아니었고 그냥 의사가 ‘서브남주’로 나오는 보통의 로맨스물이었는데, 부엌 싱크대에서 손을 오랫동안 정성스레 빡빡 씻는 모습이 나오고 친구들이 ‘얘 또 버릇 나온다’며 혀를 끌끌차는 장면이었다. 아 의사는 저래야 하는구나. 부엌에서도 화장실에서도 빡빡빡. 아무 상관은 없지만  왠지 그러고도 여주인공의 사랑을 차지하지 못하다니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손톱부터 팔꿈치까지 2-5분간 꼼꼼히 닦는 ‘스크럽’은 손위생 (hand hygiene)이라 불리는 손씻기 중에서도 외과적 손위생(surgical hand hygiene)으로 분류된다. 칼로 몸을 가르거나 두꺼운 바늘로 구멍을 내는 등 말 그대로 ‘피를 보는' 일을 할 때 외과적 손위생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어도 환자를 진찰하기 전후에도 기본 손위생은 필수다. 40-60초간의 물과 비누를 이용한 손씻기 (hand wash),  또는 20-30초간의 알콜 소독젤을 이용한 손위생 (handrub)은 진찰이 아니라 환자 주변의 물품만 만진 전후에도 해야 한다는 것이 세계보건기구의 권고다. 그래야 어딘가에 묻어 있는 병원균이 전파되는 고리를 막을 수 있을테니까. 

손위생만 잘 해도 의료관련감염 (병원 내에서 전파된 병원균으로 인한 감염을 의미한다)으로 인한 사망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 미국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의 big5 대학병원 규모의 2000병상 병원에서 의료관련감염으로 사망하는 환자는 매년 약 70명 정도이다. 그러므로 손을 잘 씻는 것만으로도 거의 30-40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은, 이런 간단한 일로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지만, 의료인 모두가 언제나 손위생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아니다. 논문에 보고되는 손위생수행률 수치는 매우 다양하지만 대개 국제적으로는 약 40% 전후이고, 우리나라에서 2015년 보고한 수치는 간호사가 72%, 의사가 54% 정도였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조사한 2016-2017년 결과는 간호사가 87%, 의사가 72%였는데, 물론 조사 대상 병원이나 규모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더라도 2015년 메르스를 기점으로 상당히 향상된 것임을 알수 있다. 아마 코로나19 판데믹 이후에는 훨씬 더 올라갈 것이라 예상이 되기는 하지만, 어쨌든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매번 손을 정성들여 닦는 의사는 10명 중 5-7명 정도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컨탬'이라며 의학드라마도 못 볼 정도로 오염에 예민한 성정을 키워온 이들 치고는 일상 속의 위생관념은 일반인의 예상보다는 높지는 않았던 셈이다. 아마도, 외과적 손위생에 주로 예민한 성정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쯤에서 제대로 손을 씻지 않는 의료인들 때문에 감염병으로 죽게 되는 환자들을 생각하며 화가 치미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특히 의료관련감염으로 사망하거나 장애를 입게 되는 사건들이 자주 있기도 했다. “어떻게 병원에 갔는데 병을 얻어 올 수가 있나!” 라는 직관적 분노는 의료인의 게으름, 부도덕, 양심의 부재를 탓하는 가치 판단의 영역으로 순식간에 넘어가기 쉽다. 지구상 어떤 병원에서도 손위생 수행률은 100%는 아니고, 의료관련 감염으로 한 명도 죽지 않는 사회는 없다는 말은 진실임에도, 사랑하는 이의 희생 앞의 분노와 슬픔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의료는 완벽할 수 없는 일을 하면서 완벽해야 하고, 완벽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커리어 초기에는 이런 상황이 늘 원망스러웠고 억울했다. 열심히 골수를 뽑고 환자의 회복을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환자를 잃고 마는 현실도 미칠 것 같고, 부지런히 손을 씻어도 매번 100% 잘 씻지 못한 탓에 누군가는 결국 내성균 감염으로 목숨을 잃게 되는 현실도 믿고 싶지 않았다. 그 업보가 아마도 저승에 차곡차곡 쌓여 나의 지옥행 도로의 보도블럭으로 깔리게 될 것만 같았다. 

의료는 완벽하지 않다. 변명같지만 사실이다. ‘병원이 병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믿음은 일종의 완벽주의이다. ‘내가 완벽하게 못했으니 지옥에 갈 것'이라는 두려움 역시 완벽주의이다. 그러나 의료관련감염은 어느 정도 일어날 수밖에 없고, 단 그것을 줄이려면 과연 얼마나 일어나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감염관리의 개념이다. 1960년대에 처음 생긴 이 개념에 따라 미국에서는 70년대부터 의료관련감염률 조사를 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조사가 처음 이루어진 것은 90년대였다. 감염병 연구자들이 15개 병원에서 자발적으로 조사한 이 결과를 놓고 언론은  <병 고치러 갔다가 병 얻기 정부 첫 확인, 입원환자 4% 병원감염 충격, 8만여 명 중 3,200여 명 각종 질병 옮아’(경향신문 1997년 7월 7일자)>라는 다소 센세이셔널한 제목으로 보도했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애써 들추어 욕과 불신만을 초래하느니 모두가 차라리 덮고 지나가기를 원했다. 한동안은 언론보도의 폭탄과 비난을 피하기 위해 전국적이고 공개적인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40여개 병원을 대상으로 다시 감염율 조사가 재개된 것은 2006년에 이르러서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간 메르스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병원 내 감염관리의 필요성에 대해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하게 되었고, ‘감염률 제로가 디폴트'라는 완벽주의적 인식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 메르스 유행 이후 병원의 감염관리 전담인력 지원이 강화되었고, 2020년부터 의료관련감염을 전국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감시체계가 비로소 법제화되어 운영되게 되었다. 아직 미진한 점이 많기는 하지만, 병원이라는 곳에 불가능한 완벽보다는 완벽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많은 이들이 이해하게 된 것 같아 다행이다. 사실 수차례의 신종감염병을 겪으면서 병원은 물론 우리 사회가 생각만큼 완벽하고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덕이 크지 않을까 한다.

‘의료는 완벽하지 못해도 의사는 완벽주의자여야지 않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완벽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완벽을 지향하는 것이 완벽주의라면 의사들은 완벽주의자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다만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감시하고, 감시당한다. 외래 진료를 마친 전과 후 제대로 결정했는지 다시한번 리뷰하고, 간호사와 약사는 내 처방을 감시하며, 감염관리실은 내가 손을 30초 이상 잘 씻는지 감시한다. (감염관리실에서는 손위생을 잘 하는지 숨어서 관찰하고 부서별 개인별 점수를 매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간 진료를 하며 잃지 않을 수도 있었을 많은 생명에게 다 속죄하지는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크럽을 서며 뽑은 골수가 생착에 실패한 한달 후, 아이를 낳았을 때 탯줄 혈액을 공공제대혈은행에 기증했다. 누군가의 골수에 제대혈의 줄기세포가 자리잡아 피어나기를 바라며. 내가 뽑았지만 결국은 자라지 못한 조혈모세포에 속죄하며.


참고문헌: 

전준영, 김홍빈. <손 위생> 대한의학회지 2018년 1월호 J Korean Med Assoc 2018 January; 61(1):13-20 

https://cleanhands-safehands.com/hand-hygiene-saves-lives/ 

Kim H, National hand hygiene campaign in Korea-progress and challenges. Journal of Microbiology, Immunology and Infection (2015) 48(2) S11 

질병관리본부, 주간 건강과 질병, vol12, No42, 2019

최영화, 우리나라 의료 관련 감염 감시체계. 대한의학회지 2018년 1월호 J Korean Med Assoc 2018 January; 61(1):21-25

이재갑, 감염관리정책의 현재와 미래.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지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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