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은 다소 비격식적인 속어이지만 일상에서 상당히 많이 쓰이는 단어다. 보통 주식, 부동산, 복권 등으로 큰 돈을 벌어들이는 상황이 연상된다. 대개 예상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큰 소득이나 성과를 얻었을 때를 의미하는 것 같다. 사업이 잘 되거나, 상품이나 콘텐츠가 잘 팔리고 히트를 칠 때도 ‘대박났다'고들 한다.
가장 간단하게 표현하자면,’’대박’이라는 단어는 ‘인풋 대비 아웃풋이 많은 것’으로 정의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전 대통령이 말한 ‘통일 대박’은 그래서 실소를 불러일으킨 것 같기도 하다. 대통령이라는 공식적인 지위에서 발화하기에는 격이 낮은 단어여서만은 아니었다. 이미 대중의 소망에서 멀어져버린 그 단어는 중첩된 국내외의 갈등과 복잡한 상황 속에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그것에 들어갈 엄청난 인풋이 걱정되는 상황에서 손쉽게 아웃풋을 기대하고 ‘대박’이라는 단어를 붙여버리는 해맑음에 모두가 아연실색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병원에서 ‘대박’이라고 말하는 상황은 일반적인 의미와는 정 반대다. 쓰이는 용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아.. 어제 당직 정말 대박이었어..”
“그 환자 대박이지…”
“어제 응급실 진짜 대박터졌다…”
병원에서는 아웃풋이 아니라 인풋이 많이 드는 상황을 ‘대박’이라 부른다. 즉 일반적인 경우보다 어렵고 힘들고 손이 많이 가는 상황, 즉 인풋이 많이 드는 경우다. 환자가 많거나,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거나, 복잡한 상황의 환자이거나, 아무튼 의료진이 대단히 무리해서 일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그건 ‘대박’이다.
예를 들자면 ‘대박적’이었던 레지던트 2년차 때의 어느 날은 이러했다. 응급실에서 아침 7시에 근무를 시작한다. 밤새 당직이 받았던 환자들을 파악하고, 밀려오는 환자들을 진찰하고 검사를 보내고 처방을 하고 응급시술을 어레인지한다. 낮에 응급실 근무를 하면 저녁에는 교대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날은 저녁당직까지 스트레이트로 서야 했다. 저녁 6시부터는 당직이 되어 응급실에서 근무를 계속한다. 여느 때처럼 새벽동안 끊임없이 들어오는 환자들과 울리는 콜에 밤을 샌다. 응급실에서 만 24시간을 꼬박 일하고 녹초가 된 상태로 다음날 근무교대지인 병실에 올라가 곧바로 이어서 병실근무를 시작한다. 갑자기 담당의사가 바뀐 환자들은 어디선가 나타난 추레한 의사의 졸린 눈에 경계의 눈길을 보낸다. 차례로 다녀가는 교수들의 회진을 눈을 부릅뜨고 따라다니며 견뎌낸다. 그러던 중 이전 담당 레지던트에게 곧 퇴원시키면 된다고 인계받았던 환자가 열이 나고 혈압이 떨어진다. 중환자실에 연락을 해보니 자리가 없다. 단 병실에 올라가려고 준비중이었던 환자가 한 명 있어서 그를 받고 그 자리에 내리면 된단다. 망설이는 보호자를 간신히 설득하여 환자를 중환자실에 보낸다. 새로 올라온 환자를 받는다. 그런데 이분도 좋지 않다. 산소포화도가 간당간당하다. 처방을 내고 지켜보다가 저녁이 되었다. 36시간째 수면박탈 상태. 이제 간신히 오프인데 환자가 이 모양이니 집에 갈 수가 없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당직실에서 잠깐 눈을 붙이다가 병동간호사의 연락에 깬다. 중환자실에서 올라온 환자가 경련을 시작했는데 병실 당직이 연락이 안된단다. 항경련제를 일단 몇 번 투여하지만 반응이 없다. 신경과 당직에게 연락한다. 좀더 강력한 항경련제의 지속주입을 시작한다. 손발의 떨림은 좀처럼 멈추지 않는 가운데 보호자는 중환자실에서 무리하게 올라와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냐고 따지기 시작한다. 어제 아침에 출근해서 응급실에서 근무를 시작했던 것이 아득한 옛날같이 느껴진다. 머릿속엔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심연만이 펼쳐져 있다. 이거 도대체 언제 끝나지. 사고 안 내고 이 악몽같은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는 훗날 전쟁 무용담같은 레퍼토리가 되어 ‘(36시간이상 연장근무를 금지한) 전공의 특별법이 없었던 라떼는’이라는 수식어로 시작하며 전개된다. 이걸 듣는 레지던트나 학생들 (그리고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의)의 내적 하품을 유발하며 수차례 변주되게 마련이다. 지금은 되돌아보며 웃으며 말하기는 하지만, 이 ‘대박’적 순간들에 갈아넣은 인풋, 즉 나의 건강 수명은 과연 몇 년이나 될까. 어느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가 당직 중 과로사한 것은 2018년으로 그리 옛날이 아니다. 그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겠다고 만든 전공의 특별법도 그 죽음을 막지 못했다. 그들이 느끼는 근골격계 통증과 우울, 자살충동이 일반근로자에 비해 높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이후 전문의가 되었을 때의 수입과 사회적 지위라는 보상이 있으니 참고 넘길 만한 것으로 여겨지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대박적 상황’에 의료인 개인이 치러야 하는 댓가 또는 ‘인풋’은 상당한 것일런지 몰라도, 의료시스템 전체가 들였던 인풋은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수도권 대형병원 응급실의 내과 환자과 혈압이 떨어지고 경련을 하는 중환자를 포함한 20여명의 병실 환자들을 40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하고 연속근무를 하는 레지던트에게 적절한 백업 의료진이 없는 상태로 맡겨놓을 때 시스템이 들이는 인풋은 ‘푼돈’이다. 힘들어서 사직하는 간호사들을 신규면허자로 대체하고 간호대 정원을 늘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역시 ‘푼돈’이라 가능하다. 이제까지 한국 의료시스템이 얻은 아웃풋은 이 ‘푼돈’에 비해서는 나쁘지 않았다. 80대에 육박하는 평균 기대수명과 이미 세계적 수준이 된 몇몇 질병의 치료 성적, 판데믹 직전까지도 열심이었던 의료관광과 해외환자 유치, 코로나 사망률을 세계 최저 수준으로 유지했던 자랑스러운 K- 방역…..이렇게 적은 비용으로 이만한 성과를 올리는 국가가 과연 있을까. 그러니 이 모두가 어찌 보면 인풋 대 아웃풋의 비율만으로 보면 병원 바깥의 ‘대박’의 정의는 충족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시스템에 속한 개인들은 늘 ‘대박적 상황’을 견디어야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 아웃풋은 누구의 것인가. 물론 누구나 원할 때 병원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시스템의 큰 미덕이다. 건강보험이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웬만한 의료비용은 보장하고 있다는 것 역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것이 과연 지속가능한 것인가 싶은 생각이 늘 든다. 사람을 갈아넣는 ‘대박 의료’의 관습은 크게 변하지 않아서다.
'대박'의 아웃풋의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중환자실 병상이 없어서 갑자기 병실로 올라와 연장근무에 비몽사몽하는 전공의에게 목숨을 맡겨야 했던 환자의 입장에서도 아웃풋이 대박인 걸까. 세계 어느 국민들보다 오래 살고 병의원에 쉽게 갈 수 있지만 늘 스스로가 지쳐있고 병들어 있다고 여기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과연 의료시스템의 아웃풋은 대박일까. 과로에 지쳐 사직하고 심지어 세상을 등지기도 하는 방역 인력들에게 과연 K 방역의 성과는 대박인가. 오랜 ‘대박 의료’, 아니 ‘가성비 갑 의료’의 관습과 문법을 이제는 좀 달리 바라봐야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