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때 활동하던 동아리인 교지편집위원회의 한 선배는 본과 3학년 때 일년의 병원 실습을 마친 후 <킹덤일기>이라는 제목의, 제법 괜찮은 사진 르포 기사를 만들었다. 실습을 하던 동기와 선배들의 모습을 찍은 흑백 스냅사진들, 그리고 그들이 실습 중에 쓴 여러 단상과 메모를 수집해서 만든 기사였다. 제목은 아마도 당시 국내에 개봉한 지 얼마 안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킹덤>에서 따온 것으로 기억한다. 넷플릭스의 국산 좀비 시리즈물이 아니라 1994년에 나온 이 덴마크 영화는 종합병원에서 일어나는 범죄와 비리와 심령사건들을 그린 공포물인데, 본과 3학년에 진입하는 20대의 청춘들에게 종합병원이란 시스템을 맛보는 과정은 아마도 그런 두려움과 무력감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었기에 '킹덤'이라는 단어를 빌려오지 않았나 싶다. 그때 편집과정에 참여한 나 역시 적절한 제목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리고 다음 해에 실습을 시작할 나에게도 역시 병원은 거대한 '킹덤'과도 같았다.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 초까지 교지를 만들었던 편집위원회 “아오타 (대동맥을 의미하는 해부학용어)”는 간호대와 의대생들의 연합동아리였는데 결국 명맥을 잇지 못하고 소멸했다. 우리가 썼던 기사는 대부분 다시 읽어보면 20대에 쓴 글들이 대개 그렇듯 이불킥을 유발하는 내용들이지만, 그래도 그중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기사는 지금은 한 요양병원의 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선배가 쓴 <킹덤일기>이다.
자그마치 22년만에 다시 들춰보는 <킹덤일기>에서는 영화 <킹덤>의 이미지와는 딴판의, 아득한 따스함이 느껴진다. 흑백사진이라 그런가. 당시 실습학생들의 앳되고 긴장된 얼굴들을 보니 웃음이 터진다. 지금은 40대 후반의 날고 기는 중견 의사가 되어 있는 그들도 처음 병원이라는 공간에 들어섰을 때 떨리고 움츠리지 않았을 리 없지 않은가. 그 얼굴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아는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짭짤한 재미를 선사한다.
킹덤에 입성하기 전에 바라보던 고층건물의 위압감은 사실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솔직히 모교 병원은 지금 다시 바라봐도 숨이 막히고, 그보다 덩치가 더 큰 현재의 내 직장의 어마무시한 건물 역시 마찬가지다. 회진 한 번만 돌아도 5000보의 걸음이 거뜬히 스마트폰에 찍히는, 거대하고 육중한 건물에 서린 권위와 무게, 삶의 죽음을 가르는 긴장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이들의 개성을 한데 갈아버릴 만치 강력하다.
그러나 한편 킹덤은 이제 내 삶과 정신이 뿌리박은 제 2의 고향이 되었다. 가끔은 이 킹덤에 이민와서 결국 시민권을 취득한 이주노동자같은 느낌도 든다. 피부색은 노랗고 김치가 익숙하지만 미국시민이라는 정체성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코리언 어메리칸처럼, 내 정체성 역시 나라는 인간의 고유성과 별개로 병원이라는 공간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지방 일반고 출신의 흙수저라는 정체성은 킹덤 안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방출신이던 강남출신이던 환자에게 소변줄을 꼽고 관장을 하며 킹덤의 이주 노동자 일을 시작했던 것은 비슷했다. 학생 때만 해도 차림새나 향유하는 문화가 조금씩 달랐던 이들이 모두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 나는 은근히 좋았다. 물론 1년이 지난 후 각자 전공을 선택하면서 많은 것이 달라지게 되기는 하지만. 미국에서도 백인과 흑인, 아시아인이 놓인 환경과 그들이 받는 대우가 다른 것처럼 (달라서는 안된다는 당위와는 별개로 현실에서는 다르다) 병원 안에도 다양함과 그에 따른 불평등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미국시민이라는 공동의 정체성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병원 안의 여러 전공과 직종 종사자들은 공동의 문화와 언어를 기반으로 한 킹덤의 시민이 된다. 그 이중적인 정체성이 나는 왠지 늘 흥미롭다. 본과 3학년 실습은 마치 킹덤에 가는 공항 대합실과도 같았고, 거기서 서성이며 망설이던 마음을 <킹덤일기>를 통해 다시 들여다본다. 어느 정도 성공해서 정착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그때의 불안을 간직한 이민자의 복잡한 마음으로.
"킹덤의 통용 언어를 익힌다.
그것은 조각난 지식들을 엮는 언어이고 서로 소통하기 위한 언어이다.
수많은 언어들은 의학이라는 학문의 벽돌이기도 하고
병원이라는 구조의 벽돌이기도 하다.
우리는 앞으로 그 언어속에, 아니 벽돌 속에 기꺼이 갇히게 될 것 같다."
나 역시 지난 20년을 그 벽돌 속에 '기꺼이' 갇혔다. 의학을 배우는 것은 학문을 익히는 것보다는 외국어 학습에 가깝다. 여느 외국어처럼 처음엔 무조건 외웠다. 우리의 알파벳은 해부학 용어였고 문장은 질병의 이름들이었으며 문법은 생화학과 생리학이었다. 임상의학은 리스닝, 병원실습은 스피킹. 의학용어 그 자체 뿐만 아니라 그것이 일상어와 합쳐진 기묘한 조합, 그리고 병원 바깥에서와 달리 쓰이는 일상어까지 익히고 나서야 비로소 그 나라의 비속어와 유머까지 이해하는 킹덤의 시민이 된다.
내가 갇힌 그 나라의 언어라는 벽돌을 하나씩 찬찬히 뜯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그 언어가 어디서 왜 나왔으며 어떤 함의가 있는지, 그 언어를 발화하는 사람의 어떤 마음이 담겨있는지를 살펴보고 싶었다. 물론 의학용어를 설명하려는 생각은 아니다. 흥미로운 병원 은어를 가르쳐주며 호기심을 자극할 생각도 없다. 가령 이런 것이다. ‘대박'은 왜 병원에서는 일반적인 의미와 다르게 쓰일까? 왜 사회에서는 횡재했다는 뜻인데 병원에서는 고생한다는 뜻일까? 혹시 누군가의 횡재가 누군가의 고생과 동의어여서 그런 건 아닐까? 치다, 보다, 잡다, 올리다, 내리다 등의 흔한 한국어 동사들이 병원에서는 어떤 의미로 쓰일까? 우리는 어떻게 그런 동사들을 생경한 의학전문용어와 짝을 지어 쓰게 되었을까? 그 단어들을 곱씹다보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고 어떤 기억들이 딸려나오는가?
전작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 이후에 몇 번의 출간제안을 받았다. 의사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원하는 출판인들은 누구나 인생에서 한번쯤은 어쩔 수 없이 여행하게 될 이 킹덤의 안내서, 특히 이 안을 어쩔 수 없이 여행해야 하는 이들이 맞닥뜨리는 부조리에 대한 글을 원했지만, 아무래도 그럴 자신은 없었다. 다만 이 킹덤의 돌길과 건물을 이루는 벽돌 하나하나의 재질과 이음새를 들여다보며, 이 풍경의 아름다움과 흉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작업은 어떨까 싶었다. 그러다보면 킹덤을 관망할 수 있는 어딘가에 닿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어딘가에 가 닿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늘 괜찮은 전망대의 사진보다 한 구석의 스냅사진을 더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선배의 흑백사진처럼, 언어로 그린 킹덤 역시 몇 장의 스냅사진이기를 바란다. 20년을 살아왔지만 여전히 낯설고 낯설어지고 있는 중인 이 곳에 대한 애정과 환멸을 동시에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