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내가 실습대상이 되었다고요!”
내시경검사실에서 병동에 곧 도착한 환자가 소리지른다. ‘초짜의사’가 자신의 위 안을 헤집었다는 것이다. 달래면서 물어본다.
“무슨 문제가 있으셨나요?”
“그거, 뺐다가 또 집어넣고! 잘 안보인다면서 계속 휘젓고! 중간에 내시경 잡은 의사가 바뀐 다음부터 그랬다고!”
“이곳저곳 꼼꼼하게 보려면 원래 그렇게 합니다, 환자분.”
“아니 내가 내시경 검사 한두 번 받는 줄 알아요? 전엔 안그랬다고!”
모니터에 뜬 영상과 판독을 보아도 특별한 점은 찾을 수가 없어서 내시경실에 연락을 해보았다. 별다른 문제는 없었고 중간에 3년차 전공의가 내시경을 잡기는 했으며, 소화기내과 전문의가 옆에서 같이 봐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뭔가 주저하고 서툴러진 손길을 환자가 귀신같이 알아챈 모양이다. 내시경실 간호사에게 묻는다.
“그게 이와이였대요?”
“그건 아니래요. 전에 몇번 해보셨다고.”
그래. 이와이도 아니고 별 문제도 없었는데 뭐. 그런데 진짜 이와이였다면? 그럼 우리는 정말 사과라도 해야 하나? 그런데 모두가 숙련된 전문가에게 진료를 받아야 한다면 의사들은 어떻게 술기를 배우나? 하지만 내가 환자여도 정말 괜찮은가? 억울함과 죄책감이 버무려져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되고 만다.
수련중인 의사가 수술이나 시술을 처음으로 해보는 것을 ‘축하’라는 의미의 일본어를 딴 은어로 “이와이”라고 한다. 대개는 선배 전공의나 전문의의 감독 하에 진행하고, 이와이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이들에게 ‘이와이 턱’을 내는 것이 보통이다. 후배에게 얻어먹으면 전문의시험에 떨어진다는 징크스 때문에 늘 후배들에게 밥을 사줘야 하는 선배들이 유일하게 식사대접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이와이 날이다. 물론 감독 없이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극한상황도 가끔 일어나기는 하고, 보통은 의사 인생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이 된다.
이와이로 축하받고 식사를 대접한다고 해서 ‘초짜의사’들이 이것을 즐긴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들은 잔뜩 긴장하고 위축되어 있으며, 한편 어떤 의료행위이던지 할 수 있는 면허의 권한과 부족한 자신의 경험 사이를 메우고자 평온하고 자신있는 표정을 짓기 위해 애쓴다. 그날의 전공의도 그랬을 것이다. 내과 3년차 전공의는 사실 ‘초짜’는 아니다. 입원환자 진료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있는 단계다. 1,2년차를 거치며 병동과 중환자실의 산전수전을 다 겪고 이젠 숨이 조금만 붙어있으면 다 살린다는 자신감이 절정에 달할 때다. 그런데 또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한다니, 간신히 득도를 했더니 저 너머 초인의 길이 기다리고 있는 듯한 아득함에 어지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손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며 선배들의 시술장면을 몇 번이고 머릿속에 새겨넣었을 것이다. 무사히 시술을 마쳤는데 환자가 ‘초짜의사가 시술했다’며 소리를 질렀을 때 그의 마음은 무너져내렸을 것이다. 아니 내가 이제까지 살린 목숨이 몇인데 초짜라니. 순간 자괴감이 엄습했겠지만 공장처럼 돌아가는 내시경실의 사정상 우울해할 틈도 없었을 것이다. 얼른 다음 환자를 준비하며, 더 이상 초짜가 아니게 될 날을 상상하며 입술을 깨물었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대가들 역시 한 명도 빠짐없이 이 과정을 거쳤다는 것은 분명하다. 태어날 때부터 내시경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태어날 때부터 제왕절개수술, 간 이식수술, 심장판막수술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는 건 누구나 안다.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고, 처음이 없다면 의술은 후세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처음’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어찌 이기적이라 비난할 수 있겠는가. 숙달된 전문가가 해도 합병증의 위험이 생길 수 있는 시술을 받는데 내 몸을 초심자에게 의탁하고 싶은 이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결국 그래서 대부분의 이와이는 환자에게 고지 없이 이루어진다. 나도 환자에게 말하지 않고 많은 이와이를 했다. 상처 봉합, 기관삽관, 중심정맥관 삽입…. 당연히 환자 개인의 입장에서는 마치 괴담같이 느껴질만한 일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런 기본적인 술기를 해본 적이 없는 의사가 있다는 것이 더 무서운 것이 아닌가.
환자에게 말하지 않는 이유는 당연하다. 십중팔구 거부할 텐데 누가 허용하겠는가? 게다가 괜히 초심자가 시술한다고 말했다가 불안감과 불신만 생겨 앞으로의 진료과정에서도 사사건건 따질 가능성이 커질테니 아예 숨기는 것이 낫다고 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혹자는 수련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것은 초심자에게 시술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웬만한 큰 병원은 죄다 수련병원이니 환자들이 병원의 교육적인 설립목적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그러니 초심자에게 시술을 받는 것을 환자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충분한 설명과 논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사실은 여기까지 쓰고 나서도 정말 이게 현실적인지 의문이 든다. 미국의사협회의 의료윤리 저널에도 비슷한 고민이 증례와 해설로 실려있다. 증례에는 요추천자시술을 받아야 하는 한 환자가 등장한다. 의대생A에게 시술을 받는 것을 거부하는 환자에게 옆에 있던 전공의가 해야 할 말의 모범답안은 아래와 같다.
“환자분, A 선생은 정말 훌륭한 학생입니다. A 선생이 요추천자를 어떻게 하는지 배워야 미래의 환자에게도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어요. 저는 A 선생에게 시술에 대해 자세히 가르쳤고, 잘 할거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시술을 하는 동안 통증이 좀더 있을 수도 있고, 처음 시도가 실패할 수도 있어요. 만약 그렇다면 제가 바로 이어서 할 겁니다. 저는 A 선생이 시술을 하는 동안 세심하게 지도할 거에요. 환자분은 시술을 받으시는 것이지만 A 선생과 그녀의 미래의 환자들에게 선의를 베푸시는 것이기도 해요. 그래도 많이 불편하시다면, 제가 시술을 하고 A 선생은 제 시술을 관찰하고 보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와우.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대화의 표본. 이렇게 말하면 웬만한 환자는 흔쾌히 동의해줄 것 같기도 하다는 환상이 잠시 머릿속을 스치다가 얼굴엔 냉소가 떠오른다.
‘세상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전공의가 어딨으며, 있다 해도 이런 말을 할 시간이 어디있나.…’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더 이런 설명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의대생에게 간단한 말초혈관주사 정도는 허용해도, 요추천자같이 좀더 난이도가 있는 시술을 맡긴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당신이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미래의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공동선을 위한 명분이 환자들에게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환자의 선의에 호소하여 이와이에 대한 허락을 얻었다 하여도 고민은 남는다. 미래의 환자들을 위해 초심자의 시술을 견디는 위험을 무릅쓰는 환자는 분명 매우 소수일 것이다. 이와이의 기회를 기꺼이 내주는 이타적이고 착한 소수의 환자들이 혹시 더 많은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들에게 이와이의 위험을 떠안기기보다는 차라리 환자들의 눈을 가리고 랜덤으로 이와이가 걸리도록 해서 위험을 분산하는 지금의 방식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 지금의 방식은 온전히 랜덤인가? 우리는 소위 VIP라 불리는 유력 정치인, 기업인 환자에게도 이와이를 할 수 있는가? (물론 이런 이들은 좀더 신경써서 돌보다가 오히려 문제가 생기는 VIP 증후군이라는 또다른 위험이 있기는 하다) 생각할수록 복잡해지는 문제다.
이와이를 안전하고 능숙하게, 마치 ‘경력같은 신입’ 처럼 할 수 있다면 그런 고민은 조금 덜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환자에게 실제 시술을 하기 전에 연습을 해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 장비들이 더 많이 보급될 필요가 있다. 비록 질감이나 촉감은 실제와 다소 다르겠지만, 시술의 순서와 방향을 손에 익혀놓는 동작기억의 강화만으로도 안전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한 병원의 중환자실에서는 레지던트들이 중심정맥관 시술을 연습할 수 있도록 사람의 목과 피부, 혈관을 재현한 “CentraLineMan”이라는 시뮬레이션 모형을 고안하여 사용한 결과 시술 합병증은 물론 혈행성 감염 및 이로 인한 의료 비용이 줄어들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가상현실을 이용한 시뮬레이터로 복강경 수술 또는 로봇 수술을 연습한 의사들이 실제 수술과정에서 실수가 적고 더 능숙해졌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나 아직 현실과 이상간의 거리는 아직 멀다. 아무리 좋은 시뮬레이션 센터가 병원 안에 있어도 레지던트에게 거기 갈 시간이 없다먼 무용지물이다. 바쁜 현실 속에서 한번 본 후 바로 직접 해보고 곧 후배를 가르쳐야 하는 (see one, do one, and teach one) 의학 술기 교육의 전통은 현장에 여전히 살아있다.
아무리 시뮬레이션으로 연습을 한다고 해도 결국 실제로 처음 시술을 해보는 것은 이와이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떨리는 손으로 이와이를 하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것이 이와이인 줄 모른 채 시술을 받고 있을지 모른다. 환자가 자신이 이와이 시술을 받는다는 것을 알 권리가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괴롭지만 그렇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아는 것이 자기 자신과 사회에 좋은 방향으로 작용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는 아직 뭐라고 답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이 논쟁적 이슈와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실천은, 나의 이와이 대상이 되어 준 여러 환자들에게 평생 감사하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환자가 된 나에게 이와이를 해도 되겠느냐고 묻는다면, 기꺼이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의사로 만들어 준 수많은 환자들에 대한 보답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