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식물상담소, 브라이트, 신혜우 2022
식물에 대한 책이 쏟아져나오는 가운데 구입한 두번째 식물책. <이웃집 식물상담소>. 처음 산 식물책인 '식물의 책' 과 마찬가지로 표지의 예쁜 꽃과 열매 그림에 혹해서 샀는데, 이미 저자가 그렸던 <랩 걸> 한국판의 표지 그림에 매혹되었었기 때문에 지갑을 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러나 다양한 색으로 장식된 표지와는 달리 저자는 정작 ‘인간이 입맛에 맞게 만들어낸 원예품종이 괴물처럼보인다’고 말한다. 꽃을 꺾어서 파는 ‘절화’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이 표지 그림은 절화를 한 꽃과 열매의 모음처럼 보이는데…. 각각의 살아있는 식물을 따로 보고 그린 것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식물에 대한 저자의 태도는 약간 결벽증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분재, 절화 등 인공적 조작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 식물의 학명과 원산지를 알아보라고 권하는 약간 뭐랄까 부담스러운 권유…) 하지만 식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연구하고 그려온 진정한 덕후의 세계에 대해 엿보는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마이너한 학문인 식물학을 전공하고 식물 그림을 그리는 독특한 커리어를 꾸려오면서 식물과 관련된 상담까지, 범상치 않은 길을 걸어온 자의 말에는 은근한 힘이 있다.
“어릴 때 들은 ‘잘한다’는 중독성이 커서 그것만 좇아가게 되기 쉽다. 그러다 할머니가 되어서야 ‘좋아한다’의 중요성을 깨달으면 슬플 것이다."
그림을 좋아했지만 그림대회에 나가서 느낀 낯섦과 공포 이후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었던 이야기, 그러나 순수하게 식물이 좋은 그 순간 덕분에 이 일을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에 역시 ‘잘한다’에 중독되었던 나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잘한다’는 스스로가 뭘 좋아하는지 확신이 없었던 나를 이 자리까지 끌어올린 힘이지만, 동시에 나를 가둔 말이기도 하다. 지금은 뭘 잘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중년의 방황을 하고 있는 시기. 당장 좋아하는 것들 - 글쓰기, 만년필로 글씨 쓰기, 커피와 베이글 같은 것들을 떠올려본다.
‘잘하는 걸 증명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이유를 말하는 건 정말 쉽고 즐거운 일이다’
한 우물을 파지 못하는 연구자를 위해서는 ‘다양하니까 깊어질 수 있는 것’이라는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어떤 식물학 석사 출신 상담자가) 유행하는 분야의 연구 자금이 높으면 아무리 하기 싫은 연구라도 아무 말 없이 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프로 연구자인걸까?’ 라는 고민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올 때,’ 나 역시 그런 자괴감을 늘 느낀다고 말하고 싶었다. AI니 정밀의료니 하는 핫한 키워드를 얼추 잘 버무려서 연구계획서를 써내는 일을 잘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하고 쓸모없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그럼에도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본인이 좋아하는 여러 우물을 조금씩 파는 것 또한 잘못된 것만은 아니라는 말에 약간의 의욕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뛰어난 학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즐거운 일, 행복한 일을 하는 것이 좋으니까’
누구나 할 수 있는, 다소 이상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뛰어난 학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남들보다 못하다는 조바심을 내려놓아도 스스로에게 집중해도 좋다는 속삭임같이 들렸다.
아무튼 이 모든 성찰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식물이라 연구실에 두고 온 화분들이 계속 생각났다. 환기가 안되는 곳인데, 오늘 가서 창문을 잠시라도 열어두고 와야 하나. 하지만 내일 출근할 때 나를 맞이해줄 푸르른 잎사귀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내게 베풀어주었는지를 생각하니 다행스럽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식물을 가까이하게 되어 다행이야. 키우는 식물의 학명을 익히라는 저자의 권고에 따라 네이버에서 이름을 찾아보았다. 뭔가 해부학용어나 세균 이름같기도 해서 (아마도 모두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을 것이기에) 낯설지만 익숙하기도 하다.
블루스타고사리 phlebodium aureum blue star
문샤인 산세베리아 Sansevieria trifasciata cv. Moonshine
트리안 Muehlenbeckia complexa
몬스테라 Monstera deliciosa thai constellation
스킨답서스 Epipremnum aureum
아레카야자 Chrysalidorcarpus lutescens
스파티필름 Spathiphyllum patinii
사철나무 Euonymus japonica
나도풍란 Sedirea japon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