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희 아이 아빠는 불안해서 못나가요. 여기 꼭 입원시켜주세요.”
아내의 입술은 파르르 떨린다. 항암치료를 받던 중 일주일 전 패혈증으로 응급실에 들어왔다가 응급처치를 하고 다른 병원으로 보냈던 환자다. 다른 합병증이 또 생겨서 다시 응급실에 왔고 이번엔 절대 못나가겠노라고 버티는 중이다. 입원을 시키자니 없는 병실을 만들수도 없는 일. 몇 번의 설득 끝에 그럼 다시 좀더 병실이 나기를 기다릴 수 있게 해달라고 응급실에 부탁해기로 했지만, 환자를 내보내라는 응급의학과 의사의 날선 문자가 휴대폰에서 깜빡이고 있다.
“수술이나 중환자실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있는데 이런 분들까지 저희가 입원을 시켜야 합니까? 환자가 고집한다고 말을 들어주는 것은 옳은 일은 아니지 않나요?”
2017년 이래 도입된 응급실 체류시간 제한에 대한 행정조치는 이러한 환자들이 응급실에서 병실을 기다리며 대기하지 못하도록 막는 결과를 낳았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환자들은 24시간 이상 응급실에 체류하지 못하며, 입원을 하던지 신속한 조치 후 퇴원을 해야 한다. 24시간 이상 응급실에 체류하는 환자 비율이 5%가 넘으면 병원은 보건복지부로부터 상당한 금전적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 비율을 맞추고자 병원들이 목숨을 걸고 매달리는 이유다.
그러나 입원을 하자니 병실이 없고, 퇴원을 하자니 상태가 위태로운 환자들은 주변의 다른 병원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일견 타당한 조치이나, 월 1-2회씩 병원에 오가며 항암치료를 받느라 병원이 학교나 직장처럼 익숙해져버린 암환자들은 막상 상태가 나빠졌을 때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조치를 이해하기 어렵다.
어느 응급실에서나 암환자들은 애물단지다. 응급실 의료진의 눈에 그들은 빠른 조치가 필요한 뇌졸중, 심근경색, 외상 환자들이 치료를 받아야 할 공간을 차지하고 의료자원을 잠식하는 존재들이다. 치료하면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환자와, 치료해도 지지부진하다가 결국 생을 마감하게 될 환자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의료의 선택은 당연히 전자이나, 그것이 어디 쉬운 결정인가. 그러나 우리 의료가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할 정도로 빈곤한 것은 아님에도, 소위 ‘5% 법칙’은 암환자들이 응급실에서 밀려나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떠돌게 만들었다.
사실 응급실 체류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신속한 응급조치가 이루어지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체류시간 제한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모두 원활히 입원시키기엔 암환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지역의 종합병원에서도 치료받을 수 있는 암환자들이 자꾸만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몰리고, 병원은 과밀화되어 몸살을 앓고 있는데도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몸집을 불려가며 환자를 유치했다. 적절한 진료의 질을 유지할 수 없는 현실은 도외시된다. 그런 와중에도 어떻게든 의료진들을 갈아넣어 의료기관 인증기준을 충족하고 안전하고 수준높은 병원임을 자임하고, 환자들은 더 몰린다. 그 화려한 이면에는 전원을 권유하는 쪽과 안간다고 버티는 쪽의 실갱이로 가득차버린 응급실의 일상이 있다. 암환자들은 비교적 상태가 좋을 때는 컨베이어벨트 위에 놓여 정해진 검사와 치료를 받는, 병원 입장에서 보면 안정적인 수익원들이다. 그러나 말기에 가까워지며 예측하기 어려운 합병증이 발생하고 응급실의 병상을 잠식하는 존재들이 되면 5% 법칙에 의해 외면당한다.
혹자는 암환자는 진료비의 5%만 내면 되는 건강보험 산정특례제도 때문에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에 몰린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5%라는 염가로 환자들을 끌어들이고 95%는 건강보험공단에서 받아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는 병원들이 굳이 환자 수를 제한하여 박리다매에서 오는 수익을 포기하기를 원치 않았고, 국가는 이를 방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5%의 혜택을 받으며 너도나도 큰 병원으로 몰려들지만 다시 5% 때문에 밀려나는 암환자들의 운명은 얄궂기만 하다.
“환자가 두번째로 응급실에 오신 거라 많이 불안해합니다. 이해해주십시오.”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읍소하는 문자를 보내며 한숨을 쉰다. 다행히 얼마 되지 않아 응급실 내원 25시간째인 이 환자에게는 하룻밤에 100만원이 넘는 고급병실이 배정되었다. 과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환자의 밤이 고급호텔 스위트룸 숙박비에 맞먹는 이 병실에서 제발 편안하기만을 바란다.
지난 3년간 국내에서 코로나로 사망한 환자의 수는 총 3만명이다. 반면 매년 8만명의 환자들이 암으로 사망한다. 그들이 숫자 5%에 좌우되는 애물단지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으며 생을 마칠 수 있도록 도우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막막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