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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냥이 Oct 12. 2021

모두가 규격 외 인간이라서



점을 찾으려다 무수히 많은 단점만 발견했다


단점을 고치려 하지 말고 장점을 찾아 강점을 만들어라는 말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구석구석 살펴보면서 아주 작은 단점까지 찾아냈지만 장점은 사소한 것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는 장점을 찾으려다 어렴풋하게 짐작만 하고 있었던, 단점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확인사살만 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나쁘다거나 못 생겼다는 말을 자주 듣고, 남들 같이 못 한다며 많이 혼났기 때문에 그에 맞춰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며 나에 대한 평가가 나아지지 않는 시간 속에서, 그래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나 자신은 알고 있지 않냐면서 스스로 위로하며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도 나에게는 아무 장점이 없다니 너무 실망스러웠다.


그러다 남들은 나와 같은 단점을 가지고도 잘 살던데 왜 나는 그렇게 안될까 라는 원망의 마음과 함께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가진 무수한 단점들을 전부 아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나도 그 사람들의 단점을 다 알지는 못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은 그렇지 않다며, 그것을 단점이라며 개선하려고 노력 중인 적도 많았다. 어쩌면 나에게도 그런 것이 있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고 해도 단점을 장점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내가 장점이라고 생각해도 세상이 단점이라고 정해놓은 것이라면 국은 단점이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에 인정받을 수 있는 장점과 강점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런 것은 없었다.






세상은 그 무엇도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외향을 가진 두 친구가 있었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친구는 작은 키에 여린 몸매의 친구를 부러워했다. 한편 작은 키에 작은 체구의 친구는 반대로 훤칠한 그 친구를 부러워했다. 나는 두 친구 모두 각자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 반대되는 매력을 가진 두 친구는 서로를 부러워했을까? 그것은 세상이 그들이 가진 장점을 단점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키 큰 친구는 덩치 큰 여자는 매력 없다는 소리를 들었고, 키 작은 친구는 반대의 소리를 들었다. 어떤 특성이건 간에 세상은 그것을 단점이라 지적하며 좋은 점에 대한 말보다 안 좋은 말을 더 많이 쏟아냈다. 그게 전혀 근거가 없고 편협하다는 사실을 숨긴 채, 진실을 이야기하는 척 폭력을 휘둘렀다.


나의 특성을 단점처럼 묘사하는 말을 듣는 것은 세상의 잣대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타인에게 함부로 말하는 이를 만난 것뿐이다. 그 사람이 사는 세상은 그런 세상이고, 내가 반드시 그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에 따라 내 세상이 달라진다. 아는 사람이 많고 적으냐는  세상의 넓이나 깊이를 정하는 요소가 아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세상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내 세상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준다.


나 또한 그들의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일 뿐이다. 그래서 세상은 무엇하나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고, 이미 존재하는 그 사실에 대해 인정을 한다는 것은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의 어떤 특성에 대해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어 했던 소망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던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있을 수 있는 세상으로


항상 나는 연기를 해 왔다. 편식 없이 많이 잘 먹는 척했고, 활발한 척했고, 회사일을 좋아하는 척했고, 무난한 성격인 척했다. 그럴수록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적합한 세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먼저 친해지기 위해 다가서야 하고 뭐든 잘 해낼 수 있어야 했고 고민이 아닌 것을 고민인 척하고 현실에 수긍하는 보통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했다. 그 보통의 삶에 다양한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규격을 스스로 만들어내서 그 규격에 맞추기 위해 내 모습을 바꾼 것은 나였다. 너무나 다양한 모습의 세상이 있는 것을 모르고 나에게 맞는 세상을 찾기보다 나에게 잣대를 들이대는 세상에 맞추어 계속 나를 바꾸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나만의 색을 가질 수 없었고, 스스로 목표를 정할 수 없었고 꾸준히 노력할 수도 없었다. 세상에 인정을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모른 채 얼마나 더 노력해야 세상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나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은 세상이 아니라 바로 나였 것이다.






나는 내향인이고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며 여러 가지 일을 부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피부와 건강, 몸매를 위해 일상의 좋은 습관을 더하는 것 정도는 부담 없이 할 수 있다. 술은 못 마시지만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친한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 이제 무섭지 않다.


지금껏 살아온 세상에서의 나는 단점이 너무 많고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의 모든 특성이 단점이 되는 세상에서 잘 맞는 척하면서 살고 있었고,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것 같았지만 나는 불편함과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다. 사이즈는 맞지만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옷보다는 내 체형을 잘 커버하면서 멋지게 보일 수 있는 옷을 찾아 입는 것처럼 나에게 맞는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고치고 싶은 단점도 있고 바꾸고 싶은 성향도 있다. 그 기준은 내가 원하는 것이어야 하지 누군가가 요구하는 기준에 따라가서는 안된다. 그래야만 진정 내가 살고 싶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 세상에 정해진 규격은 없고 결국 모두가 어딘가에서는 규격 외 인간이다. 나에게 왜 그렇게 사냐며 손가락질하는 그 사람조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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