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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냥이 Oct 01. 2021

직장에서는 일만 하고 싶어서



면접 제의일지도 모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평소에는 광고성 전화일지 모르니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로 온 전화는 받지 않지만, 걸려오는 모든 전화를 받아야 하는 때가 있다. 바로 입사 지원 한 뒤이다. 전혀 상관없 지역번호가 아닌 이상 070과 지원한 회사의 지역번호의 전화는 일단 받아야 한다. 기다리는 전화를 위해 수십 통의 광고성 전화를 받아야 하는 것은 취준생의 비애이다.


그렇게 중요한 전화를, 만에 하나 면접 제의일지도 모르는 그 전화를 받지 못했다. 받을 수 없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폰 화면에 유선전화번호가 뜨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전화는 곧 끊겼지만 기분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고, 흥분된 기분을 가라앉히는 동안 든 생각은 이것 하나였다.


다시 사회성을 연기하면서 직장에 다니기 싫다


새로운 곳에 가서 사람들과 안면을 트고 이름을 기억해야 하고, 어떤 성격인지 업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소통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분위기는 어떤지, 개인 사생활에 대한 공유를 어느 정도까지 원하는지, 일하는 중간에 대화는 어느 정도 허용되거나 반드시 해야 되는 분위기인지 등등 남들은 크게 의식하지 않고 적당히 해내는 것 같은 이러한 일들을 나는 입사 초반에 신경을 세워 의식적으로 공부를 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알아낸 사실을 바탕으로 내 성격이 이곳에 적당한 성격 인양 연기해야 한다. 다정하게 업무 요청하는 것을 원하면 부드러운 척, 똑 부러지게 거래처에 말하길 원하면 야무진 척, 낯선 사람과도 쉽게 친해지길 원하면 활발한 성격인 척했다.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아는 얼굴도 잘 알아보지 못해 정말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의심할 정도라서 새로운 직장 동료를 기억하는 것도 힘든데 그들의 성격, 특성까지 파악하려고 하니 입사 초반에 할 일이 너무 많다. 업무 적응이 제일 쉬운 일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세상이 원하는 성격을 연기해야 하는 것, 그것은 언제나 내 회사생활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직장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성격


다른 글들에서 드러나듯이 내 본래 성격은 사회생활에 적합하지 않다. 비단 돈 버는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그 어떤 목적을 가진 무리에서도 잘 어울리지 못한다. 공부든 취미든 일이든 말이다. 스몰 토크를 좋아하지 않고 간섭과 관심의 애매한 경계를 지키기 어려워 타인의 사생활에 아예 관심을 갖지 않으니 직장 동료와 나누는 대화는 회사와 업무 관련 이야기뿐이고 그런 타입은 직장 동료들과 쉽게 어울리기 어렵다. 좀 쉬고 싶은데 항상 일 얘기만 하기 때문이다.


취향 없는 사생활에 별 목표 없이 흘러가는 내 인생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별로 없으니 상대방이 하는 말만 열심히 들어주는데, 잘 들어주는 것도 대화의 기술이 되는 것은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만 해당이 되는 것인지 직장동료는 자신의 이야기만 풀어놓는데 지쳐버린다. 자기는 개인적인 얘기 다하는데 왜 너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냐며 마음이 닫힌 거 같다고 한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할 얘기가 없는 매일이어서 그런 건데 오해를 받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본인들은 상사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며 대화를 하려고 하면 회사에서는 일만 하면 안 되냐며 질색을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자유로이 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회사일까, 그런 것 전혀 없이 일만 하는 회사일까?


아무튼 분명 내가 원하는 곳은 후자임이 분명하다. 눈에 보이는 간단한 일회성 일은 시키지 않아도 후딱 해치워버리고 기존 업무처리 방식을 계속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수정해 나가고 처음 맡는 일도 하는 방법을 찾아서 어떻게든 해내는 성격은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성격이지 원하는 성격은 아니라는 것이 참 어렵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할 거면 직장 동료들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완성시켜야 한다. 소위 예쁨 받을만한 성격이 아닌 사람이 일 하려고 하면 반드시 트러블이 생기는 것이다. 그 트러블은 업무의 타당성보다는 내가 이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사람 때문에 생기는 것인데 항상 평소에 살갑게 굴지 않은 내가 문제인 것으로 결론이 난다. 친하지 않아 일 부탁하기가 어렵다 말하는 그쪽이 문제인데 내가 친하게 지내지 않아 어려운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이 문제라는 식이다.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은 겁나지 않는다. 전문직이 아닌 이상 대부분 3개월이면 충분히 습득할 수 있고 1년이면 적응이 된다. 하지만 살가운 척하는 것은 이제 너무 힘들고 하기 싫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든다. 






업무 이야기만 하고 일만 하는 회사 어디 없나요


회사 사람들과는 업무 상으로만 엮이고 싶다는 것은 사회초년생일 때부터 꾸준하게 지속된 내 바람이다. 평소에 인사만 한 사이라는 이유로 중요한 연계 업무를 뒷전으로 미루는 개념은 아무리 경험이 쌓여도 이해할 수가 없다. 업무의 중요도를 따져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담당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니 체계 없는 중소기업이라서 그런 것인가라며 억지로 이해하려 해 보았다.


기업의 규모와 상관없이 일을 하고 돈을 받는 것으로 계약을 한 것이 고용인데 왜 일에 중점을 두지 않고 사람에 중점을 두는 것일까?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이 먼저 살갑게 대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항상 본인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살갑게 말을 걸며 업무 외 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기를 바란다.


살가운 성격인 척, 타인에게 관심 많은 척, 상황에 적절한 대사를 연구해서 대화에 활기를 더하고 다른 사람을 챙기고 신경 쓰고 대화를 하면서 일은 일대로 해내야 했다. 업무도 적성에 맞지 않는데 인간관계까지 챙겨야 하니 내 정신은 빠른 속도로 소진되었다. 그러다 보니 입사 초반에는 성격이 좋고 사람들과 잘 친해진다며 평이 나지만 퇴사 직전에는 거의 외톨이일 때가 많았다. 타고난 연기자가 아닌 바에야 다른 성격인 척 연기하면서 지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간혹 인터넷에서 너무 대화 없이 일만 하는 회사라서 다니기 힘들다는 하소연을 보면 내가 그 자리로 가고 싶다. 다들 외근 나가서 혼자 하루 종일 사무실에 혼자 있고, 며칠만 바쁘면 한가한 업무라 너무 심심하다는 글을 보면 내가 거기에 지원하고 싶다. 더 싸게 일해드린다면서 더 적은 연봉에 나를 내놓아서라도 그런 곳에 가고 싶다.


일이 많은 건 괜찮다. 야근해서라도 해결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연히 같은 회사를 다닌다는 이유로 사적인 친밀감을 형성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싶지는 않다. 인간관계는 사적인 영역에 두고 사내에서는  대한 일들만 벌어지는 그런 회사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잃고 싶지는 않다. 만약 그렇다면 구직 의욕을 완전히 상실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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