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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냥이 Sep 30. 2021

술을 못 마셔서



깡으로 마시던 젊은 날의 패기


어른이 됐다는 자유를 술로 실감했던 때가 있었다. 술을 마시면 온 몸이 빨개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기에 내가 술을 안 받는 체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술 분해 효소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젊음의 힘으로 이겨내고 있었음을 모르고 밤새는 술자리며 연일 이어지는 술자리에도 잘 빠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깡으로 버텼다.


것을 못 먹어 소주의 쓴 맛이 싫었는데 복숭아 향 이온음료와 섞으면 술이 달아져서 잘 넘어갔다. 남들은 오히려 독해서 피하는 소주와 이온음료 칵테일을 마시고도 헝클어진 모습을 보이기 싫어 악착같이 정신을 차리며 버텼던 것을 술이 세다고 착각을 했었다. 다행히 몸을 망가뜨리는 그 생활은 새내기 1년으로 끝이 났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밤새 떠드는 것에도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본디 시끄러운 장소를 싫어하는지라 술 마시는 자리 자체를 피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같이 술자리에 어울리지 않고 따로 노느냐는 말에 같이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자는 내 제안을 거절하는 그들을 보면서 아이러니를 느꼈다.


그렇게 점점 술을 마시는 횟수와 양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맵찔이가 된 것과 같은 과정을 거쳐 알코올은 냄새만 맡아도 취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술자리에서 사이다만 마시고도 취기가 올라오는 놀라운 능력을 얻게 된 것이다.


술을 전혀 못 마시게 되었다는 것을 안 것은 30대 초반, 친구와 무알콜 칵테일을 마신 날이었다. 몸에 감각이 없어지는 것 같더니 기억이 중간중간 끊겼다. 집까지 도착은 했으나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는 내용이 남아 있지 않았고 집까지 돌아오는 길이 몇 컷 안 되는 단편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술주정을 부리며 한 시간 동안 잠도 안 자고 꿍얼거렸다고 한다. 다음날 감기 몸살 기운에 병원에 가려는 나를 엄마는 숙취라면서 억지로 꿀물을 먹이고 잠을 재웠고, 두 시간 자고 일어난 뒤 기하게도 몸살 기운이 없어졌다. 정말 숙취였던 것이다.


무알콜 칵테일을 마시고 필름이 끊기고 술주정을 하고 숙취에 시달렸던 그날의 일은 아직도 가족들 사이에서 회자되곤 한다.






뻔뻔해질 수밖에 없는 회식 자리


억지로 술을 권하고 억지로 마셔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 회사가 있긴 하겠지만 그때는 문화이자 예의였다. 못 마신다 거절해도 따라주어야 하고 받은 술은 무조건 마셔야 했다. 그런 세상에서 술을 절대 마시면 안 되는 인간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마시고 죽거나 거절하고 미운털 박히거나... 마시는 척 잔을 비우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술을 몰래 버리거나 물로 채워 놓고 마시는 척하는 수법은 이미 널리 알려져 버려서, 막내 여직원이 자기가 따라 준 술을 정말 마시는지 어쩌는지 상사들이 끝까지 지켜보게 된 것이다. 요령 없는 나의 선택지는 죽느니 미운털 박히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고집 센 성격은 입사 초반에 익히 알려져 있어서 싸움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꿋하게 나 혼자 마실 사이다를 주문하는 걸 보면서 혀만 끌끌 찼던 그분들은 지금 생각해보니 그리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술을 마시지 못함에 따른 불편함은 술자리가 아니라 그 후에 시간을 들여서 서서히 느껴졌다. 술자리에서 만들어지는 그들만의 끈끈함에 서서히 겉돌게 되었던 것이다. 남초 직장에서 여자 없는 술자리가 편하지 않냐며 회식을 빠지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그것을 핑계로 업무상 트집을 잡히는 일이 생겼다. 부당한 지시에 대한 항의는 언제나 내가 직원들과 친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함께 술을 마시며 친해지면 본인이 할 일을 제대로 다 하고 나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것이고 그것을 회사 문화인 것 마냥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실을 정당화하는 기준이 왜 "친밀감"이어야 하고 친밀감을 만들려면 왜 꼭 술이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친하게 지내고 싶다면 나와 같이 커피를 마시면서 3시간 동안 수다를 떨면 되는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건 피차 마찬가지 아니냐고 생각했다.






아쉽진 않지만 아쉬운 건 있다


술을 못 마시는 게 한국 사회에서 아주 조금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게 술이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할 수 없는 것 하나가 있다는 것은 그것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없다는  술이 아닌 다른 어가에도 적용이 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술을 아주 잘 마실 수 있다고 해도, 나에게 좋은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차에 조예가 깊어서 차를 즐기지 않는 나와 찻자리를 갖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결국 마찬가지이다. 꼭 잡아야 하는 기회라면 풀  물을 향긋 척 마시거나 숙취해소 음료를 미리 들이붓고 술을 마셔야 한다. 술을 못 마시는 것은 내가 잘 못하는 수많은 것들 중 하나 일 뿐이지 그것이 치명적인 문제로 다가온 적은 없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안타까워할 뿐이다. 술자리에 끼지 못하는 나와 다음날 숙취로 괴로워하는 그들이 서로 안타까워할 이유는 없다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건 있다. 힘든 하루를 끝내고 혼자 즐기는 맥주 한 잔이 부럽다. 조용한 밤에 딸각, 취익 소리를 내며 서늘하게 차가운 맥주캔을 따 꿀꺽꿀꺽 들이키고는 크윽~ 하면서 그날의 피로를 날려버리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그 기분을 느껴보고 싶다. 사실 몇 번 도전은 해봤으나 한 모금에 필름이 끊겨 내가 상상하는 그 느낌을 제대로 느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술을 못 한다는 것, 그것은 이렇게 술을 마셔야만 할 수 있는 것을 못 한다는 것뿐이다.


술을 좋아하고 술자리에서만 사람을 사귀는 부류와는 친해지기 어렵다. 그 내 지인들은 전부 커피나 과일 음료 하나 앞에 두고 세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물론 자신의 음료 취향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어떤 것을 즐기던 서로 맞는 사람들끼리는 통하기 마련이다. 언제나 문제는 일방적인 강요인 것이다.





 


술은 마시지 못하지만 술을 즐기기는 한다. 막걸리를 빚는 취미가 생기면서 맛은 못 봐도 냄새를 맡으면서 술에 취해 헤롱거린다. 못 마시기 때문에 술을 만든다기보다는 누룩을 배양하는 것에 가깝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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