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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냥이 Sep 17. 2021

맵찔이라서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사람에서 맵찔이로 퇴화하기까지


김치를 못 먹으면 밥상머리에서 혼나기 일쑤였던 시절, 매운 것을 못 먹는 데다 장이 약해서 김치를 먹으면 배까지 아팠던 나는 거의 매 끼니마다 곤혹이었다. 매운 것을 먹어 버릇해야 더 잘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왜 고통을 겪어가면서 그 맛에 훈련이 되어야 되냐고 대꾸하는 당돌함을 갖춘 어린이는, 김치를 안 먹는 사람은 이완용급 매국노가 되는 어른들의 눈 밖에 나기 충분했고, 그래서 어른들, 특히 남자 어른들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는 내게 눈물로만 기억되어 있다.


그렇게 한국인으로 살기 위해 김치 정도의 매운맛은 견디며 겨우 겨우 빨간색 음식을 조심하면서 먹는 어른이 된 나는, 해외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하면서 물 만난 고기처럼 내 입맛에 맞는 안 맵고 느끼한 음식들로만 식단을 채웠다. 후추조차 줄여가며 매운맛을 극도로 피하는 생활을 2년,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5년 간 자취생활을 하면서 볶음 김치와 순한 맛 라면 외에 모든 매운맛을 기피하는 생활을 한 끝에 맵찔이로 진화할 수 있었다. 세상은 오히려 이것을 퇴화라고 했다.







언제부터 매운맛이 범국민적 도전과제가 되었나요?


내가 그토록 열심히 매운 음식을 피하는 동안 세상은 계속 달라져서 더 이상 빨간색만이 매운 음식이 아니고 하얀 국물조차 매운 맛 여부를 숨기고 "칼칼한"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나를 습격했다. 어디에나 캡사이신은 마치 참기름처럼 둘러져있었고, 치즈를 잔뜩 뿌리고는 느끼함을 잡는다며 또 매운 고추를 잘게 썰어 뿌리는 이중인격과 같은 음식들이 난무했다.


더 끔찍한 일은 "불"이 들어간 매운 음식들이 속속들이 출시가 되면서 벌어졌다. 이 정도도 못 먹으면 사람이 아닌 양, 모든 음식의 기본이 매운맛이 되었고, 매운맛, 더 매운맛, 더더 매운맛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모두가 매운맛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동네 분식집 외에 배달이 되는 떡볶이는 그 냄새부터가 공격적이었고 "순한 맛"이 붙은 음식은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안 그래도 경쟁이 심해서 문제라는 한국에서 이제 매운 것으로까지 경쟁이 붙는구나 싶었다. 된장찌개나 칼국수를 먹어도 칼칼한 맛은 기본이었으며, 밑반찬으로 나온 전은 종류가 무엇이 됐든 매운 고추가 꼭 들어가 있었다. 운 좋게 안 들어간 조각을 먹고 안심했다가 지뢰를 밟은 듯 매운 고추를 씹고는 메인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물 한 병으로 배를 채워버리기도 했다. 외국 음식인 쌀국수를 시켜도 매운 빨간 고추를 고명으로 올려 깜박하고 섞어버리며 국물에 매운맛이 배어 나왔다. 매운맛이 들어가지 않으면 음식이 완성되지 않는 냥, 마치 마지막에 떨구는 참기름 한 방울처럼 떤 음식이건 간에 매운맛이 첨가 되었다.


마치 크게 나온 55 사이즈, 정사이즈 55, 작게 나온 55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55 사이즈를 입는다 라는 것과 같이 다양한 음식이지만 결국은 다 매운맛으로 통일시켜 버린 듯했다. 안 그랬던 식당도 손님들이 매운맛을 요구하자 어쩔 수 없이 매운 고추를 첨가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단골 식당도 잃어버렸다. 기존 메뉴에 매운맛을 가미하고도 메뉴판 표시에 변함은 없었다. 미리 매운 여부를 확인해도 뚝배기 하나에 매운 고추 하나 정도 들어가는 것은 매운맛이 아닌 이 나라에서 나는 속기도 참 많이 속아야 했다. "이게 뭐가 매워요"라는 말과 함께...






맛의 단일화라는 폭력성을 용인하는 세상


맵찔이로서 통각인 매운맛을 "맛"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에 불만이 크다. 묵직하면서 끝 맛이 개운한, 담백하고 뭉근한 맛, 약한 비린 맛이 오히려 향긋하게 느껴질 정도의 감칠맛, 고소한 치즈가 고기의 지방 풍미를 살려주면서 쫀득한 그 식감이 입 안에 가득 씹히는 맛이 "매운 통각" 아래 모두 같은 맛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맛에 대한 묘사는 사라지고 신라면보다 맵다, 불닭보다 맵다, 10단계까지 있는 매운맛이라는 표현 밖에 남지 않았다.


맵찔이라는 단어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느끼한 것을 잘 못 먹는 사람을 늒찔이, 단 것을 잘 못 먹는 사람을 단찔이 라고 하지는 않지 않는가. 그냥 매운 것을 잘 먹는 사람은 매운 것을 잘 먹는 사람일 뿐이고 느끼한 것을 잘 먹는 사람은 느끼한 것을 잘 먹는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좀 더 매콤한 맛을 선호하는 것이 권력화 되어 맛의 다양함을 줄이고 매운맛을 끼얹어 마무리하는 것으로 단일화시켜버렸다. 통각이 마비된 수준이라 강도 높은 매운맛을 잘 못 느끼고 남들이 맵다고 하는 음식에 대해 "난 별로 안 매운데?"라며 자신이 대단한 미식가라도 되는 마냥 으쓱대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맵찔이 입장에서는 다양한 요리 재료의 맛과 각각 느껴지 향신료의 향은 배제되고 그저 얼마나 매운지의 여부만이 남아, 맵지 않으면 맛이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행태가 더 편협한 맛의 세계를 가지게 한다고 생각된다.



내가 단 것을 잘 먹는다고 해서 두통이 생길 만큼의 단 맛으로 모든 음식을 덮어버리고 "난 별로 안 단데?"라면서 어깨를 으쓱하면 그것은 폭력이 된다. 왜 매운맛에 대해서는 이토록 관대한지 모르겠다. 본인이 매운맛을 잘 못 느끼는 것을 이미 알면서 안 매운 음식이라며 맵찔이에게 권하고, 맵다고 반응하면 매운맛을 못 느끼는 자기 자신을 뿌듯해하며 상대방을 "맵찔이"로 만든다.


음식에 대해서는 다양한 식성이 존재하는데 매운맛에 대해서는 그것이 맛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양성을 지워버린다. 매운맛도 존재를 해야 하는 것이지 모든 것을 매운맛으로 마무리해야만 맛있는 것, 깔끔한 것, 한국적인 것은 아니다.

다행히 요즘은 매운 정도를 조절하는 선택지를 두는 음식점도 많고, 점점 매운맛을 빼는 추세이기도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된장찌개와 전에 들어가 있는 매운 고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이것은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나라는 개인의 문제이므로 불만은 없다. 어딘가에는 맵지 않은 된장찌개를 끓이고 순수하게 부추만 넣은 부추전을 부치는 곳도 있다면 말이다.


하여간 무언가 유행한다고 하면 단일화시켜버릴 기세로 그것만 쏟아내는 기업들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자본주의라는 비료를 먹고 자란 기업들이 마치 사회주의 마냥 선택의 폭을 줄이고 특정 기호를 중심으로 선택지를 줄여버리니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순한 맛이라고 표현되지만 사실은 제일 기본인 맛을 지워버리고 매운 라면, 매운 떡볶이, 매운 치킨 만을 메뉴에 올리고 마치 언젠가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목표처럼 마케팅해대는 것에 진한 차별성을 느끼는 나는 맛의 소외계층인 맵찔이다.







P.S.1

맵찔이의 유용함은 어린 조카가 어린이용 식단을 떼고 어른식을 함께 먹을 수 있을 때 발휘되었다. 대부분 어른들이 맛을 보고 매운맛이 없다고 판단되어도 아이들에게는 자극적인 음식이 많다. 이럴 때 맵찔이 이모는 연약한 아이들의 혀와 장을 지켜주는 영웅, 기미상궁이 된다.


P.S.2

브런치의 키워드조차 매운맛은 있는데 순한맛은 없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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