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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냥이 Oct 04. 2021

끈기가 없어서



도전과 포기의 반복


어렸을 적에는 동물학자를 꿈꿨었고 학생 때에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둘 다 모두 직업적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그 나이답지 않은 이유로 놓아버렸고 대학에 와서는 정해진 시험에 합격하면 취업 자리가 보장이 되는 공무원을 꿈꿨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보니 오랜 시간 앉아서 집중하는 성실함도 없고 암기력도 많이 부족해서 늦기 전에 포기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학점과 경험, 자격증과 시험, 모든 것이 부족한 탓에 공채는 몇 번 시도 끝에 포기하고 작은 회사만을 전전했다. 회계 업무를 하고 싶었으나 전산회계 자격증 시험에 떨어지고, 경리로 들어간 회사에서는 어째서인지 경영지원과 영업지원 쪽 업무만을 지시했다. 기술직으로 전환하고자 인테리어 설계일을 배웠으나 한 달 생활비조차 벌지 못하면서 잠도 못 자는 생활이 이어지자 일년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사무직으로 돌아왔다.


매 순간, 과감하 시작을 하고 나름 최선을 다해 깊게 파고들었고, 충분히 생각한 후에 노선을 변경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재의 내 모습은 한 분야를 진득하니 파고들지 못하고 조금 힘들면 도망쳐버렸던 성실하지  못한 무능력자 뿐이다.






많은 걸 배웠지만 아는 것은 없는


엑셀, 영어, 캐드, 맥스, 워드 그리고 약간의 파워포인트와 포토샵, 회계사무소 전까지의 장부정리 등 사무실 내근 업무 대부분 처리할 수 있지만 자신 있게 잘한다 라고 말하기는 . 회사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 범위는 그다지 넓지 않았고 어쩌다 한번 사용하는 경우에는 필요한 기능만 검색해서 결과물만 만들어내는데 그쳤다. 좀 더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괜히 잘하게 되면 일만 더 늘어나게 될까 겁이 났다. 그런데다 영어 외에는 공식적으로 능력을 검증해 줄 자격증도 하나 없다. 영어도 토익 점수만 있지 요즘 다들 가지고 있는 말하기나 쓰기 점수는 없다.


이직을 할 때는 일단 몸값을 낮춰 어떻게든 작은 회사에 들어가면 워낙 다양한 걸 할 줄 알고, 일 요령이 좋아서 기존 직원보다 더 많은 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처리해 연봉을 올릴 수 있었지만, 또다시 이것저것 모든 것을 해야 하는 멀티플레이어의 상황에 지쳐 그만두게 된다. 이제는 어떠한 전문 분야가 없는 것도 문제고 한 회사를 오래 다닌 이력이 없는 것도 문제라 몸값을 낮추어도 사무직으로 이직하는 것이 어려운 것 같다. 더 이상 멀티플레이어로 최저시급에 주 52시간 채워서 일하는 건 내 쪽에서 사절이라 선택지는 아예 없다시피 하다.


왜 이렇게 끈기가 없는지, 남들은 다 그냥저냥 다니는데 왜 나는 이것 하나 참지 못하고, 견디지도 못해서 매번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는 건지 한심하게 느껴졌다. 취미라도 뭔가 하나 정해서 일 년 이상 해보자며 이것저것 시작해 보았지만 역시나 며칠 가지 못하고 질려버리거나 힘들어서 지속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퇴사하면서 또 포기하는 나를 한심해하며 다짐했던 것은 이것이었다.


뭐라도 하나 꾸준하게 일 년 지속해보자!






끈기 있게 지속할 수 있는 것 찾기


뭘 해야 꾸준하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고 싶었지만 퇴사 직후에 기력이 다 빠져있어서 생각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당장 생각나는 독서와 영어공부를 시작했고, 기운이 좀 난 후에는 글쓰기와 재테크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독서와 글쓰기이고 영어는 취미의 영역으로 넘겼으며 재테크 공부는 중지 상태이다. 그리고 전산회계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중간중간 새벽 기상도 시도해보고 꾸준히 운동도 해보려고 했다. 서평단 신청해서 다양한 책을 접하면서 동영상 편집도 해보고 캐드도 다시 해보고 엑셀에 대해 조금 더 공부하였다.


반년이 넘도록 추가적인 수입 없이 벌어놓은 돈으로 버티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았지만 아무 결과도 남기지 못했다. 자격증을 따거나 책을 만들거나 사업을 시작하거나 이직을 한 것도 아니다. 다만 나 스스로 성장했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독서와 글쓰기만큼은 힘들어도 지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읽었던 그릿 Grit을 다시 읽어보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끈기 이상의 무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릿은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몰입의 단계에 이를 때까지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끈기와 열정을 가지고 지속해나가는 힘이라고 이해되었다. 어떤 것에 그릿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스스로 여러 가지 도전을 하면서 발견하거나 혹은 역으로 의식적인 연습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릿 능력도 함께 성장한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난 시간들이 그리 헛되게 느껴지지 않았고, 독서와 글쓰기를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쉽게 포기했던 이유는 어떤 것을 하면서 이것을 계속한 뒤에 정말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일을 끝까지 해냈을 때 그 끝에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지 예상할 수 없거나 내가 원하지 않는 미래가 있었다. 등대가 보이지 않는데 거친 파도를 헤치고 나갈 힘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독서와 글쓰기도 비슷한 상황이기는 하다. 이것으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수입을 위해 기존에 했던 일을 하는 직장을 구해도 계속 지속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데도 하루 대부분을 독서와 글 쓰는 일에 시간을 쓰고 있다. "꾸준하게 일 년 동안 지속"이라는 다짐이 아니었다면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포기했어야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독서와 글쓰기는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이직과 소득에 대한 부담을 책을 읽을 때와 글을 쓸 때만큼은 내려놓을 수 있다. 분명 무언가를 했는데도 휴식을 취한 기분이 든다.


그냥 계속할 수 있으니까 계속하고 있는 이것을 끈기라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무언가 끈기 있게 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 게 끈기인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끈기란 한참 지나고 난 뒤에, 그때 독서와 글쓰기 하나는 끈기 있게 했었어라며 회상할 때나 쓸 수 있는 단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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