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CMA 계좌를 만들었을 때는 막 재테크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고 관련 카페들이 생겨나던 때였다. 수입이라고는 비주기적인 용돈과 얼마 안되는 아르바이트비 뿐이었지만지출도 적었기에 어느 정도의 잔고는 항상 있었고,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받고자 CMA와 RP계좌를 개설해서 메인 통장으로 이용했다. 지금도 CMA를 모르거나 알면서도 투자계좌라는 성격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재테크 좀 한다는 사람들만 사용하는 계좌였다. 또래 친구들은 당연하게도 재테크 공부를 해야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는데, 나는 누구보다 빨리 저축과 투자의 중요성에 대해 이해했고 절약하는 방법과 종잣돈 만드는 법, 굴리는 법 등에 대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어째 영 돈과 인연이 없었던 20대에는 기본 수입을 만드는 것부터 삐걱거리며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해 방황했고 그러면서 활용할 수 없었던 재테크 공부는 잠시 내려놓게 되었다.
그리고 20대 후반, 드디어 안정적인 직장을 구해 그동안 몸에 새긴 절약 정신을 활용, 빠른 속도로 종자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1년이 되지 않아 월세를 탈출했고, 가족에게 빌린 전세자금도 예정보다 빨리 갚았다. 커리어우먼을 꿈꾸며 재테크보다는 몸값을 올리는데 집중하고 싶었는데 본격적으로 현금 저축을 시작할 무렵부터 늘어난 업무와 떨어진 체력으로 자기 계발할 시간을 따로 갖지 못했다. 설계직으로 이직을 준비하면서 잠을 줄여 자격증을 준비했고 역시나 이 기간 동안 저축 외에 투자 공부는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퇴사 후 이직을 준비하는 동안 저축한 돈을 야금야금 까먹으며 버텼고 설계직으로 이직한 후에는 박봉에 시달리며 저축도 못하고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생활을 간신히 이어 갔다.
그 뒤로 비슷한 생활이 이어졌다. 회사에 다니면서 돈을 모으고 체력 소진으로 퇴사, 백수 기간 동안 저축을 까먹고 이직 성공하면 다시 모으고 또 퇴사 하기를 반복했더니 내 손에 남은 것은 나이에 비해 소탈한 자산이었다. 그나마 적금 이자에 화가 나서 지른 1억도 하지 않던아파트 덕분에 이 정도인데 다른 아파트에 비해 상승률이 형편없어 실제로는 자산이 줄어든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20살 어린 나이에 기특하게도 재테크에 눈을 일찍 떴지만, 돈그릇이 작아서 보낸 시간에 비해 담긴 것은 보잘것없었다.
더 많은 일 더 적은 월급
그렇다고 월급이라도 많았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여전히 10년 전에 받았던 초봉과 비슷한 월급을 받으며 일은 과장급으로 해내야 했다. 최저 시급이 오르면서 신입과의 월급 차이는 줄어들고 각종 국가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연간 총수입은 그들과 비슷한 게 현실이었다. 당연히 신입사원보다 일은 많이 해야 했고 월급 인상은 기대할 수 없었다. 사원은 최저 시급으로 월급을 받는 대신에 매년 오르는 시급에 맞추어 인상해야 했다. 대리 이상도 월급 인상은 있었지만 사원의 상승분만큼 반영해주지는 않았는데 회사 사정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내 정치에 휘둘리지 않아 나보다 더 적게 일하고 많이 쉬면서 더 많은 월급을 가져가는 이쁨 받는 직원에 대해서는 억울함이 컸다.
일 요령은 좋아서 받은 업무를 한껏 축소해서 그럴듯한 결과를 내지만 그것을 잘 숨기지 못해(나름 티 안 내려고 노력했는데도) 더 많은 업무를 받는 것은 매번 회사를 옮길 때마다 겪는 루틴이었다. 그나마 그것을 인정받아서 연봉을 인상해주면 돈만 생각하면서 버틸 수 있을 텐데, 왜 매번 경제 상황은 안 좋은 것이며 그것을 알아주는 고용주를 만나기는 하늘에 별따기인 것일까...
그 상황을 견디다 못해 퇴사한 이후, 다시 돌아온 구직 시장은 더 최악이었다. 기존에 하던 일에 운전까지 해야 하면서 월급은 최저시급인 곳이 태반이었고 더 최악은 토요일까지 출근을 시키면서 연차도 없는 곳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라더니 바로 이것이구나 라는 것을 실감했다.
도면을 칠 줄 아는 경리사무원은 월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엑셀을 공부하고 2급이나마 회계 자격증을 땄고, 회계사무소 전까지의 경리업무 경력을 쌓았으며 CAD까지 배웠는데 정작 그게 다 필요한 자리에서 제시하는 조건은 최저시급에 주 6일 연차 없음이었다. 그것을 준비하면서 들인 시간이 나이가 되었고, 다양한 업무를 하니 각각의 업무량이 조금이라 월급도 조금이라는 논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돈이 되는 세상에서 나에게 있는 "뭐든" 찾기
더 이상 보조적 성격의 지원업무로 월급을 받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열심히 구직을 하고 자격증 준비를 하고 블로그를 했다. 뭐든지 돈으로 만들 수 있다는 요즘 세상에서 그 뭐든 지가 뭔지 열심히 찾아보고 시도해보았다. 돈 버는데도 재주가 없지만 배우는데도 재주가 없어 관련 분야의 책을 수십 권 읽고 동영상을 아무리 보아도, 간절함을 강조하고 자기 사업을 갖는 것의 중요성과 좋은 점에 대해서만 알게 될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남들은 누구님 책을 읽고 한 달에 천만 원 벌었어요, 누구님 영상을 보고 억대 연봉이 되었다고 하는데 단돈 10원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아직도 계속 연구 중이다.
다행이라 하면,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 읽고 보고 직접 가보고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머릿속 창고에 뭐가 그득하게 쌓여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아직 도전해보지 않은분야가많다는 것,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세상이그리 무섭고 어렵지만은 않다는 경험치등이 여기서 포기하고 멈추지 않도록 기운을북돋아주는 원료가 되어 주고 있다. 생각보다 너무 작아 부서질 것 같은 적금 이자에 화가 난다고 아파트를 냅다 지르고 월세를 놓을 수 있었던 것은 적어도 그동안 무언가를 쌓아왔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돈 벌 수 있는 재주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 것은 자기 평가절하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재주가 언제나 필요한 정도보다 너무 작았을 뿐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없고 젊음의 혈기도 없고 가족들에게 기댈 만큼 든든한 빽도 없고 뭔갈 배워서 바로 적용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도 않다. 하지만 그동안 쌓아온 경험에서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자세 하나는 제대로 내 것으로 만든 것 같다. 포기도 많이 했지만 그만큼 새로운 것에 도전한 횟수도 많고, 일이 잘 안 풀리는 때가 지나기를 기다리는 인내도 기를 수 있었다. 성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지만 적어도 아주 헛된 시간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리 헛살았어도 들인 시간이 얼마인데 나에게도 세상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돈이라는 것을 만들 재주가 무언가 하나는 있겠지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읽고 정보를 찾고 머릿속을 정리해본다.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지만 뭐가 부족한지 아는 사람은 그것을 채울 수도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얼마나 약한지 잘 알고 있다는 거에서 어디서 시작해야 되는지 몰랐던 스무 살의 나보다 훨씬 유리한 자리에 있다고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