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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곤 Jan 08. 2018

주기적인 안부전화는 무리예요

시댁에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나는 어릴 때부터 내 선택에 대해 책임지는 것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의무가 주어지는 것은 몹시 싫게 느꼈다. 물론 누가 좋아하겠느냐만, 사회 구성원으로서 윤리적으로 지키는 항목 외에 납득할 수 없는 의무는 정말이지 지고 싶지 않았다. 물론 살다 보면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생긴다. 회사에서는 때론 내가 보기에 쓸데없어 보이는, 비합리적인 의무를 부여할 때도 있지만 적어도 돈을 준다. 그러나 특히 개인적인 관계나 영역에서 생기는 의무는 내 일상 전체를 피곤하게 했다. 사실, 결혼하면서 부여되는 의무는 대개 그런 종류의 것이다. 내 성격이나 성향은 고려하지 않고, 시대적 변화도 반영되지 않고, ‘결혼했으니까 이 정도는 해야’ 한다면서 납득할 수 없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얹어준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바라는 것


사실 우리 시어머니는 며느리 입장에서 참 좋으신 분이다. 결혼한 며느리에게 뭔가 새롭게 요구하기보다는 자식에게 원래부터 하시듯 베푸는 부분이 훨씬 많다. 신랑이 나와 연애를 시작한 지 보름 만에 10년 동안 피웠던 담배를 끊은 덕분에 아마 난 처음부터 점수를 좀 땄는지도 모른다(며느리가 점수 따는 좋은 예가 아닐까?).


지난 여름휴가를 시댁과 함께 보내기로 해서 시부모님이 차로 우리 부부를 픽업하러 오셨다. 시어머니는 집에서 먹을 것들을 양손 가득 챙겨 오신 모양이었다. 아파트 1층 주차장에서 만났는데, 받은 음식을 일단 집에 올려놓고 가기로 했다. 무거우니 같이 들어준다고 하셔서 시어머니와 내가 함께 우리 집 엘리베이터를 탔다. 신랑이 분리수거를 버리러 가서 얼떨결에 어머니와 집에 들르게 된 것인데 순간 머릿속이 복잡했다. 집 엉망인데, 고양이 털 굴러다니는 거 보면 깜짝 놀라실 텐데……. 조금 난감한 마음으로 복도식으로 되어 있는 우리 층에 내렸는데, 어머니는 우리 집 현관까지도 안 오시고 옆집쯤에서 밖을 보며 기다려 주셨다. 우리 집에 오신 적이 거의 없으니 당연히 집안을 들여다보고 싶으실 텐데, 손님맞이를 준비하지 못한 상태이니 내가 민망할까봐 신경 써주신 것이다. 그 사소한 배려가 무척 감사했다.


이렇게 센스가 있는 시어머니라도, 물론 처음부터 서로가 원하는 종류의 배려를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로 알게 된 지 겨우 한두 해가 흘렀을 뿐이니 의도치 않게 서로를 당황하게 하는 순간이 왜 없었겠는가. 게다가 우리나라의 정서상 며느리와 시댁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서로 삐끗하는 부분도 생기기 마련인 것 같다. 특히 신혼 초에는 남편과 맞춰가듯 시부모님과 새롭게 정해나가야 하는 점도 많았다. 생일은 어떻게 챙길 건지, 집들이는 언제, 서로가 못 먹는 음식은 없는지, 제사나 명절 땐 어떻게 할 건지, 논의해야 하는 규칙들은 수두룩했다. 친정은 내가 알아서 엄마와 연락하며 가볍게 이야기했는데, 시댁에서는 이상하게도 어느새 내가 우리 부부의 대표가 되어 있었다. 그런 걸 결정할 때 시어머니가 나에게 전화를 하시기 때문이었다.


며느리에게 전화하는 이유는 남자는 바깥일을 하는 사람, 여자는 집안일을 관장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심지어 남편의 예비군 통지서가 시댁으로 왔는데 남편이 전화를 안 받는다며 혹 무슨 일이 있느냐고 시어머니가 내게 몇 번을 급히 연달아 전화하신 적이 있다. 나도 마찬가지로 일하느라 전화를 받지 못했는데 부재중을 확인한 다음 결국 내가 다시 남편에게 전화해 어머님께 전화 드려봐, 하고 연결해 드렸다. 남편에게는 전화가 한 번밖에 오지 않았다고 하여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봐도 많은 시어머니들이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에게 전화해서 집안 행사에 대한 의논을 하시는 것 같다. 결혼 전에는 없었던 집안 행사가 갑자기 생기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참여하기 귀찮은 아들이 며느리만 시댁에 보내는 경우도(정말 그러지 맙시다)…….



어쨌든 전화에 대한 견해는 사람마다 좀 다를 수 있겠지만 결혼 초반에 내가 시어머니를 대하기 가장 어렵고 곤란했던 부분이 바로 ‘전화’였다. 결혼 후 한 달쯤 지났을까, 집에 혼자 있을 때 시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그때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대부분은 음식 이야기였던 것 같다. 전화로 가끔 이렇게 수다 떨자는 이야기를 하셨고 나중에 끊고 보니 통화 시간이 40분이 넘었다.


사실 나는 연애할 때도 남편과 통화를 그리 길게 한 적이 없었다. 사내커플이라 물론 통화를 할 필요 자체가 별로 없기도 했다. 어쨌든 남편과의 평균 통화 시간은 대체로 5분, 길어야 10분가량이었다. 요즘 카톡 세대들이 전화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그 탓인지 나 역시 전화를 별로 안 좋아하고, 특히 누구와든 길게 통화하는 걸 힘들어하는 편이라 난감했다.


나도 물론 사회생활하면서 낯선 사람과의 긴 통화를 왜 안 해봤겠는가. 잡지사 기자로 일했으니 처음 보는 사람과 통화하고 길게 이야기 나누는 게 오히려 직업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일회성으로 끝나는 직업적 통화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두 번이라면 모르겠지만, 시어머니와의 전화 통화가 이렇게 길고 잦은 주기로 정착되면 앞으로 내가 어머니의 전화를 분명 피하거나 불편해하게 될 게 뻔했다.


다음 번 통화 끝 무렵에는 한 달에 한 번쯤 시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넌지시 하셨다. 어려운 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너무 낯선 이야기였다. 시아버지에게 전화 거는 상황을 재빠르게 시뮬레이션 해봤지만 내 성격에는 도저히 무리였다. 친정 아빠랑도 그렇게 해오지 않았고, 게다가 당시 가부장적 발언을 툭툭 뱉으시는 시아버지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이 약속은 결혼생활 내내 매달 갱신되는 마음의 짐이 될 것 같았다.


“어머니, 제가 전화는 너무 어색해서요. 친정 아빠랑도 자주 안 하거든요…….”

“자주 해야 익숙해지는데……. 남편도 친정에 자주 연락드리라고 해~”

“신랑이 그런 거 어색해하는 성격인 거 아시잖아요~ 그냥 신랑도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서요. 저희는 그냥 서로 부모님께 연락드리는 거에 대해 부담 주지 않기로 했어요.”


결혼하기 전에 신랑과 나는 결혼 후 생길 수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해 별의별 이야기를 다 했다(길고, 어렵고, 분노하고, 지치고 화해하는 엄청난 과정이었다). 물론 그중엔 연락 문제도 있었다. 친구들 여럿과 약속을 정해도 시간과 날짜를 주도해 정하는 한 명이 제일 피곤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한 명에게 몰아주지 않고 시댁 행사는 남편이, 친정 행사는 내가, 각자 연락 담당(?)이 되기로 약속을 했다. 기본적으로 안부 묻는 걸 서로에게 의무화하지 않기로 했다는 이야기도 최대한 돌려 말해보았는데 내 의도가 전달되었는지, 어쩌면 서운하게 들리셨을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좋은 관계로 지내고 싶은 상대방에게 불편한 말을 하는 건 누구에게나 고통스럽다. 상처 주지 않고 헤어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시댁에서 원하는 것 중에서 나에게 힘들고 어려운 것까지 참고 수용할 수는 없다. 평생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가족을 미워하게 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머니 입장에서 나는 불편한 걸 하나도 참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며느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좋은 사람이 되고 힘든 것보다, 조금 나쁜 사람이 되고 편해지는 것도 삶의 방식 중 하나라는 것. 무엇을 선택하는지는 각자의 자유지만, 어쩌면 결혼에 있어서도 일방적으로 양보하기보다 약간의 이기심은 챙겨야 하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일 수 없듯이, 꼭 완벽한 며느리가 될 수는 없다. 가족이니까, 오히려 이해해주셨다고 믿는다.


기대치를 거부하고 싶다


이상하게 많은 시댁에서 자식보다 며느리에 대한 기대치가 큰 것 같다. 연락도 며느리가 하길 원하시는 경우가 많다. 받아들이는 며느리 입장에선 그 ‘주기’와 ‘내용’에 따라 스트레스의 여부가 극명히 달라질 것이다. 나는 결국 전화는 어색하지만 시아버지께는 가끔 카톡으로 안부를 여쭤보겠다고 했다(시아버지는 카톡을 일상적으로 잘 쓰신다). 시어머니가 지금은 내게 연락하고 싶어도 방해가 될까봐 참고 계신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내가 먼저 종종 연락을 드리려고 노력한다.


나는 결혼 후에 ‘세대차이’에 대해 절감하고 있다. 며느리에게 당연한 세상과 시어머니의 당연한 기존 관념 사이에서 서로가 서운하고 부딪칠 수밖에 없다. 잘해주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방법이 다르다.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서로가 원하고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알아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 끝까지 서로가 모르는 외국어로 이야기를 하는 셈일 것이다.


사실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이러한 갈등의 요소는 대부분 사위 아닌 며느리 쪽만 짊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남편 성격도 나랑 똑같은데, 대부분의 친정 엄마들은 사위에게 전화가 오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거나 잔소리하지 않으니 연락에 대한 고민 혹은 배려 자체가 결혼 후 며느리에게만 적용되는 요소에 가까운 듯하다. 행복하려고 하는 결혼인데, 그렇다면 적어도 이와 관련된 모두가 그 스트레스를 우선 '인지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각자 한 걸음씩은 양보해야 하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시어머니가 전화 통화를 부담스러워하는 나의 성향에 대해 이해해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나와 맞춰가기 위해 노력해주신다는 건 운 좋고 감사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사실 나는 알고 있다. 이 변화가 이루어진 제일 큰 이유는 ‘연락을 의무화하지 말자’고 말해준 남편과 옆에서 ‘언니한테 자주 전화하지 말라’고 말하는 시누 덕분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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