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곤 Oct 16. 2017

내 고양이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불안함도 흔들림도 없는 안전한 관계

이십대 중반을 슬쩍 지나고 있을 때쯤 나는 몇 년 동안 짧고 가볍게 거듭해온 여러 번의 연애에 좀 심드렁해져 있었다. 연애를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재미있지만, 동시에 귀찮고 감정 낭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내가 좀처럼 누군가에게 완전히 몰두하여 사랑할 수 없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건 내 연애세포가 다 시들어 죽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사랑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 있기 때문이었다.


스무 살 언저리에는 나도 머뭇거리지 않고 사랑에 빠졌던 순간이 있었다. 스마트폰도 없었던 시절, 커플 요금제에 가입해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문자를 주고받으며 연애를 했다. 종일 데이트를 하고 와서도 할 말이 남아 새벽 늦게까지 전화를 붙잡고 있는 날들도 있었다. 잠깐 마주치는 순간도, 손잡고 걷는 일상도 일일이 기쁨이고 설렘이었다. 헤어짐은 그만큼 내 일상을 격렬하게 뒤흔들었다. 그 서툰 이별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울었다. 가슴이 아프다는 말이 물리적인 통증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생전 처음 겪은 나는 놀랐다. 그때의 나에게 사랑의 종말은 온몸을 쥐어짜듯 생생하고도 낯선 경험이었다.


그 후로는 웬만해서는 내 마음의 사랑 게이지가 100%까지 차오르지 않도록 노력하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그때처럼 격렬하게 요동치는 마음이 없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만 언젠가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동화처럼, 또 영화처럼, 그리고 피할 수 없이 진짜 사랑이 닥쳐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 통 기약 없이 느릿느릿한 운명의 걸음이 좀 답답하긴 했지만.


완벽한 사랑은 있다


부모님을 제외하고, 나는 10여 년 넘는 시간 동안 결코 변하지 않는 완전무결한 사랑의 종류를 딱 하나 알고 있었다. 그 사랑은 날 괴롭게 할까봐 겁낼 필요도 없고 내가 원하지 않는 시기에 거둬들여야 할 이유도 없었다. 내가 키우고 있는 반려동물에 대한 마음이 바로 그랬다. 나는 2년 전까지는 15년 동안 강아지를 키웠고, 그 강아지가 나이 들어 무지개다리를 건넌 후 지금은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반려동물에 대한 내 마음에는 조건이 없었고, 사랑의 기대치를 키워놓고 실망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반려동물과의 관계는 언제나 그 자체로 온전하고 충만했다.


내 손에 닿는 촉감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까만 눈으로 쳐다만 봐도 행복해지는 마음. 친구와 약속이 있어 씻고 옷을 갈아입고 초조한 마음으로 시계를 들여다보는데, 그 와중에 강아지가 따라 나서고 싶어 하는 몸짓을 눈치채면 머뭇거리다가 결국 10분이라도 산책을 시켜줘야 마음이 편한, 이게 사랑이 아닐 리 없었다. 고양이가 내 아끼는 조립품을 떨어뜨려도, 그래 그걸 선반 위에 올려놓은 내 잘못이야…… 하게 되는 그 마음은 분명 순도 100%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이성과의 관계는 대개 안전하지 않았다. 내가 무방비하게 마음을 쏟아도, 반대로 그의 속도를 내가 쫓아가지 못할 때에도 관계는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니 어차피 사그라질 감정이라면 낭비하고 싶지 않았고, 어차피 관계를 이어갈 사람이 아니라면 서로 티끌만 한 피해도 주거나 받지 않도록 또렷한 경계를 그으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람을 순수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미성숙한 점을 사랑으로 감싸야 한다는 점이 그랬다. 나는 얇은 가지 하나를 뻗더라도 유치하거나 부끄러운 짓을 덜 하는 방향으로 자라나기 위해 인생의 절반쯤을 애쓰며 살았다. 물론 늘 생각처럼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부끄럽고 유치한 모습은 스스로의 것을 감당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사람은 결코 완벽할 수 없는데, 그런 나 하나를 감당하기도 벅찬 마당에 다른 사람까지 함께 토닥이며 성장해 가기에는 언제나 사랑의 양이 부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 반려동물에겐 그렇지 않았다. 네 발로 걷고 온몸이 털로 뒤덮인 것이라면 난 대체로 다 좋아했는데, 그들을 대할 때 나는 무조건 관대해졌다. 나와는 다른 종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바꾸길 바라는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그들의 본능은 당연한 것이고 그들의 세상에서 옳은 것이었다. 늘 모든 게 궁금하고, 실수하고, 엉뚱한 행동을 하는 그들은 완벽하지 않아서 도리어 사랑스러웠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꼭 바꿔야 하는 것이 있다면 친절하게 설명하고 내가 조금 더 양보해도 좋았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강아지나 고양이는 나의 기대치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주고 있는 셈이었다.


illustration by JA


사람과도 이런 관계가 가능할까


연애는 했지만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딱히 비혼주의는 아니었고, ‘결혼? 그건 미친 짓!’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가졌던 것도 아니다. 다만 엄마조차 이기적이라고 하는 내 아량 부족한 성격으로 누구를 내 삶에 받아들일 수 있을지가 의문스러웠다. 적어도 고양이는 내 생활을 방해하지 않는다. 혹 고양이가 나를 방해한다고 한들, 나는 그것을 너그럽게 포용하고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나와 같은 어른의 자아를 가진 누군가와 운명 공동체가 되어 살아갈 수 있을지는 확신이 없었다.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 겉옷만 아무렇게나 집어던지고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꺼내 마시다가 자기 직전에 화장만 지우고 주말 아침이 되어서야 옷가지를 정리하고 과자 봉지를 모아 버리는 이 편리하고 거침없는 생활을 내가 포기할 수 있을까? 방안에 나와 키보드 소리밖에, 혹은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완벽한 고요를 깨뜨리고 언제나 누군가가 나와 같은 공간을 향유하는 생활을, 1박 2일 여행을 가더라도 배우자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구속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아무리 친한 친구더라도 같이 여행을 가면 싸우고 돌아오는 일이 그렇게 많다는데, 혼밥, 혼술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진 시대에 누군가와 같이 주거를 한다는 건 되레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까?


어떻게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엄청난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인지, 그런 의구심이 자꾸만 떠올랐던 건 어쩌면 나의 혼자 삶도 스스로 꽤 만족스럽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굴 사랑하면 바라게 되고, 기대하게 되고, 실망하고, 그로 인해 삶이 뒤흔들린다. 고양이에 대한 기대치는 '잘 먹고, 잘 자고, 제 본능을 따라 잘 살아주는 것'뿐이기에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내 일상을 언제나 평온하게 유지시켰다(그저 건강하기만 하다면). 하지만 사람에 대한 기대치는 다양하게 작용한다. 이 사람은 나랑 취미가 비슷한데 옷을 못 입고, 이 사람은 패션 감각은 있는데 너무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이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데 나를 안 좋아하고……. 사랑의 크기와 타이밍이 얼마나 잘 맞아떨어져야 평생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지 감이 안 왔다.


illustration by JA


당장 누굴 사랑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 차라리 '엉망진창이 되어도 좋으니 일단은 Go'라고 외칠 정도로 확실하고 충분한 사랑이 아니라면 애초에 연애를 시작도 하지 말자, 문득 나는 그렇게 결심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지 겨우 2주 만에 만난 남자와 덜컥 연애를 시작해, 그로부터 2년 후에 결혼을 했다. 사람 일이란 정말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다.


그게 콩깍지였는지 운명이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결혼을 결심할 수 있었던 그 마음은 예상외로 꽤 근사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과 이 사랑의 카테고리는 달랐지만, 나만의 독립적인 삶을 기꺼이 양보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겼다는 점이,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그를 있는 그대로 좋아할 수 있다는 점이 그랬다. 내 고양이를 대할 때의 너그러운 아량이 발휘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이 존재하다니. 그렇다면 고양이와 그랬듯 우리도 한 집에서 반려자가 되어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결혼은 아마 그런 것이리라고 나는 어렴풋 짐작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