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안개의 속삭임

- 각희

by 달 가는 물고기

사방은 안개가 자욱하고, 찬 바람이 어둠을 가르며 지나갔다.

그 바람을 따라 이승도, 저승도 아닌 붉은 여명의 경계가 따라다녔다.


각희는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왜 이곳에 있는지 전혀 기억나는 것이 없고. 머리 안은 텅 빈 허공처럼 무엇하나 잡히는 것이 없었다. 눈을 찌푸려가며 애를 써 보았지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도대체 언제쯤 여기서 벗어 날 수 있는 거야’



그녀는 벌떡 일어나 열보 쯤 옆에 있는 우물로 향했다.

시커멓고, 죽은 이끼가 더덕더덕 붙은 흉물스러운 물건이 마치 저를 감시하듯 지척에 따라다니는 것이 꽤나 성가셨다.



‘이 우물은 대체 뭐고?’



각희는 우물 안을 들여다 보았다. 엉망인 머리에 광대가 드러날 정도로 움푹 페인 눈은 벌겋게 핏발이 서 있고, 찢긴 적삼과 빛을 잃은 족두리 사이로 뼈가 드러날 듯한 창백한 피부가 누가봐도 사람보다는 귀신에 가까워 보였다.


물 속에 비친 얼굴은 분명 제 것인데, 익숙하지 않았다. 오히려 낯설고 무서웠다.



“너는 도대체 누구니?”



물 속에 비친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투명한 눈물방울이 뚝 떨어져 우물속으로 사라졌다. 떨어진 눈물이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자, 주변으로 서서히 검고 차가운 기운을 품은 안개가 사방에서 피어 올랐다.



“악! 기억이 안 난단 말이야!”



서서히 다가오던 검은 안개는 그녀의 시퍼런 외침에 급히 사라졌다. 그러나 이후에 찾아오는 고통은 끔찍했다. 마치 머릿속에서 모든 것을 짓누르듯 무거운 통증이 시작됐다.

각희는 제 머리를 쥐어 뜯으며 다시 주저 앉았다.



'그렇게 소리지르면 뭐가 떠오르기라도 할까?'



허공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부드럽지만 무겁고 침착한 말투였다.

그녀는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요? 어디 계신겁니까?”



그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허공에 대고 외쳤다.



'날 찾는 것보다 네가 여기 왜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 더 문제가 아닐까?'



두껍고 침착한 목소리의 울림때문일까. 그녀를 괴롭히던 고통이 잦아들었다. 각희는 우물 속을 다시 내려다 보았다. 물 속에 비친 낯선 얼굴이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우물은 왜이리 따라다니는 겁니까?”

"네? 왜 말이 없어!"



짜증스럽게 물었으나 대답은 없었다. 혼자 묻고 대답하다보니 이제는 환청까지 들리는구나. 이렇게 기대가 실망이 바뀌려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어떻게든 삼도천으로 가야하지 않겠느냐? 여기 있다고 딱히 방법이 나오는 것도 아닌 것을.'



목소리가 다시 말을 건낸다. 하지만 반가운 것은 아주 잠시였다.



“그럴 수 없소.”

‘어째서?’



목소리는 딱하다는 듯 혀를 찼다.

최근에 우물을 달고 다니는 생령귀(鬼)가 나타났다는 소문은 이미 구천에 파다했다. 이름도 성도, 자기의 기억조차 완전히 지워진 불분명한 생령이라는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그녀 옆에 항상 따라다니는 우물은 더 큰 문제였다. 비록 좁고, 볼품없어 보이는 우물이었으나 보기보다 아주 무시무시한 물건이었다.


바로 혼령을 잡아 먹는 귀물.


그 우물 속에 빠진 영혼은 그대로 삼도천도 건너지 못하고 혼백이 사라져 버렸으니,

그녀의 우물은 구천의 또 다른 지옥문으로 말썽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각희는 억울했다.


몰려드는 것들은 하나같이 정체 불명의 마물들이요, 저를 못살게 구는 잡귀보다 못한 저승이들뿐. 오히려 그녀 자신도 이유를 알고 싶을 뿐이었다.


도대체 저 물건이 귀찮게 왜 따라다니는지.

하지만,



“그 노인네들과는 말이 안 통해.”



누구보다 삼도천을 가고 싶은 그녀였다. 그러나 삼도천에서 문전박대를 당하는 영혼은 오로지 저 뿐이라, 대성통곡도 해보고, 어린 아이처럼 떼도 써 보았지만, 그녀에게만은 절대 허락되지 않았다.



‘사자를 하나 데려 가 보아. 여기 황천길에 널린 게 사자들이다. 그들 중 너 하나 보아줄 이가 없을까.’


“그걸 누가 모르는 줄 아시오? 그 흔한 저승사자가 나만 없소. 나만!”



각희의 창백한 얼굴에 그늘이 졌다. 커다란 눈망울에 차오른 운물은 얼음조각이 되어 찢어진 붉은 옷자락 위에 힘없이 툭 떨어졌다.



‘어제도 하나 달고 다니던데?’



목소리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각희는 더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입에서는 안개 같은 서리가 더 짙게 품어 나왔다.



어제 일어났던 그 일이라면,

그녀는 어둡고 후미진 곳에서 한 저승사자를 만났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벌거벗은 어깨 위에서 격하게 흔들리는 여인의 하얀다리를 부여잡고 있는 저승사자를 만났다.


이미 처음 겪는 일도 아니었다. 구천의 이곳저곳에 지나는 저승사자와 눈이 맞은 저승 각시들이 그 자리에서 주저 없이 다리를 벌리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보고 달려드는 사자들 때문에 기겁을 하고 도망을 쳤었지만.


시간이 지나 나중에야 깨달은 것은. 그저 몸이 기억하는 데로 움직일 뿐이라는 것. 본능 속에 남은 쾌락을 상기시키려는 무의미한 행위라는 것을 안 뒤로는 그들이 딱하게만 보였다.


어찌됐든 좀 민망한 만남이긴 했다. 하지만, 잡귀보다 못한 사자면 어때서. 더운 밥, 식은 밥 가릴 처지가 못 되는 마당에 각희는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저기.. 바쁘신 중에 정말 실례하오만.”



최대한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공손하고, 정중한 태도로 말을 걸었다.



“저리, 꺼져...!”



돌아오는 소리는 냉랭했다. 이마는 땀으로 흥건하고. 잔뜩 미간을 모은 남자가 그녀를 노려 보며 소리쳤다. 그 밑에 깔린 채 버들가지처럼 흔들리는 하얀 나신의 여인은 비명을 지르며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치받는 분노때문에. 그녀 주변으로 검은 안개가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커다란 눈이 희번득 돌아가고 긴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가시처럼 솟구치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거참, 그러니까 미안하다 하지 않소?”



끓어 오르는 화를 눌러 보려 애를 써 보았다. 누가 봐도 딱히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 황량한 구천에서 지나가는 억울한 혼령이 이토록 정중하게 부탁하는데. 원칙과 도리도 모르는 잡귀만도 못한 저승사자 같으니라구.



“어디서...미친년이....크윽!”



참으로 가관이다. 화를 내면서도 그의 허리짓은 멈추지 않았다. 각히는 저도모르게 혀를 차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하지만 화를 낼 수는 없는 처지이니. 참아야했다.



“저기 그러니까, 일단 하는 일 마저 하시면서, 내 말을 좀....”



그때였다. 그녀 앞으로 벼락도 아닌 하얀 섬광이 번쩍했다. 그때문에 절대 떨어질 줄 모르던 두 몸뚱이가 잘린 무처럼 단숨에 떨어져 나갔다. 밑에 깔려 있던 여귀는 아직 흥분이 가지지 않는지 연신 다리를 꼬며 신음을 흘렸고, 그와 다르게 옷을 여미는 저승사자의 손길은 몹시 다급해 보였다.

그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각희는 주저 앉은 채 비명을 질렀다.



“이크, 깜짝이야! 대체 어떤 놈이냐!"



아주 중요한 순간에 방해자가 나타났다.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그녀는 검이 번쩍였던 곳으로 버럭 소리쳤다.


키가 크고 늘씬한 남자가 저벅저벅 검은 안개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커다란 흑립을 쓰고, 어깨에서 허리까지 맵시있게 떨어지는 검은 철릭이 우아하게 펄럭였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붉고 푸른 비단을 두른 긴 환수도가 날카롭게 반짝였다.

흑립 밑으로 균형잡힌 턱선과 조소하듯 비틀린 입매가 어여뻐 보였지만, 그녀의 시선을 끈 것은 그의 아름다운 외양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도 맹수의 눈처럼 빛나는 금빛 눈동자때문이었다.


얼어붙을 것 같은 공포가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마치 누가 밑에서 발목을 붙들고 놓지 않는지 그 자리에서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눈 앞에 있는 남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각희는 절대로 저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검은 철릭을 입었으니 분명 저승사자다. 긴 검을 차고 있고, 천쪼가리가 매달린걸 보니, 조금 지위가 높은 자인가? 그 생각에 머물자 공포는 사라지고, 그녀의 입꼬리가 절로 실룩였다. 그동안 머리카락 하나 보기 힘들었던 저승사자를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오늘은 참 운수가 대통한 날이다.



“송, 송구합니다. 살, 살려 주십시오.”



제대로 옷도 여미지 못한 저승사자는 그의 검을 보자 납작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

두 손 모아 싹싹 비는 꼴을 보니, 그녀의 짐작이 맞았다. 눈 앞에 있는 이는 적어도 저 잡귀보다 못한 사자보다 위에 존재하는 이가 분명했다.



“영혼을 인도해야 할 사자가...그대는 한가한가 보군.”



방금 전, 무서운 칼부림과 달리 남자의 목소리는 나긋하고 침착했다.



“어서 돌아가시게. 할멈 성깔 알지?”



그는 바닥에 박힌 칼을 거두어 한번에 탁, 검집에 꽂았다. 절도 있는 동작은 위협적이었으나, 그의 심심한 말투와 변화가 없는 표정은 또 다른 말을 하는 듯 했다. 부드러운 그의 음성에 엎드려 있던 저승 사자의 낯빛이 환해졌다.



“감,감사합니다.”



각희는 그제야 깨알았다. 자신을 구원할 자는 부리나케 도망가는 구차한 저쪽이 아닌, 우아하고 아름다운 이쪽이 틀림없었다.



“저 좀, 보아 주십시오!”



그녀는 재빨리 남자 앞에 풀썩 소리는 내며 엎드렸다. 걸음을 막 떼려는 그의 바지통을 서둘러 붙들고, 대성 통곡하기 시작했다.



“제가, 죽었는데...아니, 살았는데...어디서 죽었는지도 모르고..끄윽,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끄윽!”



감정이 복받치니 숨 넘어가는 말이 울음과 함께 두서 없이 마구 쏟아졌다.



“누가 너더러 죽었다더냐?”



조용하고 부드러운 음성에 각희는 울음을 멈췄다.



“그렇지요? 소녀, 아직 아니 죽은 것이지요?”

“......”



대답이 없다. 각희는 뒤통수로 따갑게 느껴지는 시선때문에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더욱 수그렸다.



“소인 좀 삼도천에 데려다 주십시오. 거기 가면 천리안으로 기억을 볼 수 있다 들었습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최대한 공손하고 비굴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읍소했다.



“거, 참 딱하구나.”



진심과 따뜻함이 느껴질 만큼 부드러운 말투였다. 각희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보았다. 땅에서 한참을 올려다 본 그의 얼굴은 넓은 흑립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금수의 눈처럼 형형한 금빛 눈동자는 선명하게 그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하지만 죽지 않은 자, 삼도천으로 갈 수 없다.”



따듯한 위로? 그것은 착각이었다. 마치 그의 날카로운 검기에 단칼에 베이는 기분이었다.



“그럼, 저는 어찌 합니까?”

“어쩌긴. 그냥 이곳에서 이렇게 떠돌며 살아야지.”



그는 길고 곧은 손가락을 들어 허공에서 천천히 휘젖는다. 마치 제가 알 바 아니라는 듯.



“망할! 어찌 남 일처럼 그런 막말을 하십니까? 그게 저승사자가 할 소리요?”



각희는 벌떡 일어나, 그에게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남자는 악다구니를 쓰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 보기만 할 뿐이었다.



“구천에 어여쁜 망나니 하나가 돌아다닌다더니. 너였느냐?”



그의 얼굴에 잠시 호기심이 스치듯 지나갔으나, 이내 따분한 듯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어여쁜 망나니. 칭찬인 듯 놀리는 듯, 기분나쁜 어조에 각희는 입술을 꽉 말아 넣었다. 그는 일반 차사들과 분명 다른 존재였다. 더 무섭고, 더 위험한 느낌이 드는 남자였다.



“옷이라도 벗고 가보아. 운이 좋으면 의령수의 환심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말 한마디 남기고 그는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게 다였다.



"얼어 죽을 놈의 저승사자!"



각희는 울먹이며 다시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어제일을 떠올리니 다시 억울한 분노가 쏟아 졌다. 어디선가 쯧쯧, 혀를 차는 목소리가 멀리서 환청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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