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어여쁜 망나니

- 그녀의 구원자

by 달 가는 물고기

“아니! 오늘따라 잡것들이 왜 이리 들쑤시고 다니는 게야?”



삼도천, 사시사철 잎이 무성한 의령수 밑에 지어진 작은 오두막에서 날카로운 여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밖에 무슨 난리가 나긴 했지.”



흰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대충 걸치다 만 옷을 입은 노인이 의령수에 걸린 옷을 거두면서 심드렁하게 내뱉었다. 그의 말대로 어수선하니 삼도천의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유는 딱 하나뿐이었다. 요귀들을 뒤흔들만한 망나니 같은 생령귀 때문이었다. 현의옹은 머리가 아픈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좀 나갔다 와 봐요! 어제 밤에 이상한 게 떨어진 거 같아.”

“글쎄, 귀찮은데.”



현의옹은 크게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듯했으나, 다시 평상에 몸을 벌렁 누였다.



"지금 귀찮다는 말이 나와? 이 영감탱이야!”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서질 듯 문이 열리며 흰 머리를 곱게 올린 노파가 뛰쳐나왔다. 자지러지듯한 노파의 목소리가 카랑카랑 삼도천에 울렸다. 이내 매섭게 올라간 그녀의 가느다란 눈초리가 노인의 뒤통수에 꽂혔으나,

그러든지 말든지.

노인은 의령수 밑에 만들어놓은 나무 평상에 벌러덩 누워서 코를 후비적거리다 바지 속에 손을 쑥 넣더니, 몹시 가려운 듯 엉덩이를 벅벅 긁어댔다.


“이 영감이 노망이 났나, 더러워서 못 살겠어!”



마치 못 볼 거라도 본 것처럼 노파는 도로 안으로 들어가 쾅 소리 나게 문을 닫아걸었다.



“하여간 저, 저 성질머리 하고는, 이렇게 시끄러울 땐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라고 상책!”



노인은 의령수를 힐끗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의령수의 무성한 나뭇잎들이 가늘게 떨었다.



“아무 짓도 하지 말어. 이번에 정말 저 화상에게 잘릴 수도 있음이야.”



노인은 손끝을 목에 대고 긋는 시늉을 했다. 바람에 흔들리듯 고요하게 서 있는 나무를 보며. 그는 각희를 떠올렸다. 그녀라면 정말로 가만두는 것이 상책이었다. 상황은 딱하고 불쌍하지만, 그런 것 하나하나 다 신경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산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은 자도 아닌 망령을 함부로 삼도천에 들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굳이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노인은 세상만사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다시 평상에 벌러덩 누워 눈을 감았다.


이들 부부는 삼도천 의령수를 지키는 두 신, 탈의파와 현의옹이었다. 그때 의령수의 나뭇잎들이 괴이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안개가 자욱한 길 저쪽에서 웬 불빛이 반짝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저건 뭐지? 이봐 할멈! 좀 나와 봐.”



현의옹이 오두막을 향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하얀 머리 노파는 사라지고, 곱게 나이든 중년 여인이 이미 문을 열고 나와 있었다.



“우라질, 그 꼬락서니는 뭐야?”

“보면 몰라요? 오늘 우리 현림이 그 아이가 무슨 바람이 불어 이곳에 온다고 했잖아요.”



오랜만에 탈의파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현림이란 말에 오히려 얼굴을 구긴 것은 현의옹이었다. 우라질, 그는 탈의파의 귀에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히 욕설을 내뱉었다.


그냥 입만 열면, 우리 현림이, 우리 현림이. 어른 말을 쌍것 바짓가랑이로 아는 그 미친놈이 어디가 좋아서 오매불망 기다리는지, 그 꼴이 마뜩잖았다.



"저게 뭐야?”



탈의파가 마치 도깨비불처럼 허공에서 다가오는 불꽃을 불편한 시선으로 쏘아 본다. 불빛이 다가올수록 짙은 안개가 걷히고. 그 불빛 아래에는 한 여인이 고고하게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제가 이곳에 온 이유야 두 분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불빛 아래로 드러난 여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고요하게 물결쳤다. 각희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의 나신 위로 안개의 잔물결이 흘렀고, 그 모습은 삼도천의 망자들조차 고개를 돌릴 만큼 낯설고 강렬했다.


“입고 말해! 그 꼴로 주둥이 나불대지 말고.”



탈의파는 서둘러 그녀에게 넝마하나를 주워 던져 주며 추궁했다.



“할멈, 그렇게 화를 내지는 말구.”

“내, 저, 저것을 잡을 수도 없고, 죽일 수도 없고!”



탈의파의 성질머리야 묻고 따질 필요도 없었지만, 눈앞에 있는 각희는 달랐다. 원귀들을 잡아 먹는 우물을 달고 다니는 생령귀, 오늘따라 구천의 요귀들이 단체로 시끄러웠던 이유가 바로 그녀 때문이었다.


‘강심연의 물뱀 보다 무서운 것이 각희의 우물입죠.’


간혹, 아주 드믈게 그녀의 우물에서 빠져 나온 이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남아 있는 혼백마저 사라지게 만든다는 각희의 우물. 이미 죽어 고통 따위 느끼지 못하는 망자들도 그녀의 우물을 두려워했다.


그렇다고 그 우물이 망자들에게만 위협적이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각희의 우물 때문에 요귀에게 먹힐 뻔할 걸 살았으니, 그녀의 우물은 망자도 요귀도, 가리지 않는 귀물 중 귀물이었다.


그렇게 선한 망자들을 잃어 버린 저승사자들이 수백이요. 또 구천에서 사라진 요귀들이 수천이니, 위에서는 머리가 아플 일이었으나, 덕분에 삼도천은 편안했다. 그러니까 현의옹에게 각희는 귀여운 골치덩이일 수 밖에.



“잘 됐네. 오늘 현림이 온다 했으니, 그편에 아주 보내버려야 겠어요.”

“길을 잃은 망자를 그리 험하게 다루면 되겠는가?”



현의옹은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펄쩍 뛰었다. 탈의파가 말한 현림은 보통의 저승사자가 아니었다. 인간사에 관여하는 인왕차사이자, 염라대왕도 어려워 할 정도로 까칠하고 제멋대로인 인사였다. 그의 손에 저 불쌍한 것을 맡길 수는 없었다. 이후의 일이야 안 봐도 뻔한 일이니 말이다.



“망자는 개뿔. 여기 어딘지 잊었어요? 저건 요물이에요. 악귀보다도 더 지독한 요물. 어디서 저런 것이 굴러들어 와서는...”



탈의파의 엄청난 분노에 옆에 있던 의령수가 다시 희미하게 흔들렸다.



“도대체 누가 네게 이런 미친 짓을 귀띰해 준 것이냐?”

“그러니, 문 앞에서 매달릴 때 받아 주셨으면, 이런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이는 모두 할멈 탓이오.”



각희는 자신 만만하게 대답했다. 망자의 옷은 곧 그가 지은 죄의 무게였다. 때문에 망자는 절대 스스로 옷을 벗을 수 없었다. 망자라면.

결국은 스스로 옷을 벗어 그녀가 망자가 아니란 것을 증명한 꼴이었다. 때문에 이제부터 머리가 아플 이는 바로 탈의파였다.



“예가 어디라고 감히! 내 머리털 나고 세상 저런 미친년은 처음 본다니까요?”



탈의파는 괜스레 가만히 있는 현의옹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억울하니까 그렇겠지. 옷을 벗어던질 만큼 억울하니까.”



현의옹은 얌전히 두 손으로 공손하게 앞으로 모은 채,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탈의파의 화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



“억울? 나도 억울해요! 저, 저 요물만 나타나면 사방이 이렇게 시끄러운 것이..”



탈의파가 눈을 딱 감고 귀를 후비고 있는 각희를 보며 입에 거품을 물 때 쯤, 어둠 속에서 검은 안개가 일렁였다. 그 안개를 가르며 우아하게 걸어오는 한 남자, 그가 나타나자 주변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큰 키, 커다란 흑립을 쓰고 바람을 가르며 흩날리는 검은 도포자락이 퍽 우아하게 휘날렸다. 각희는 날리는 귀밑머리를 붙들어 귀 뒤로 넘기며, 몸을 웅크렸다.



“너는 그냥 아무말도 하지 말거라. 쳐다도 보지마. 대답도 하지말고. 진짜 미친놈이니.”



현의옹은 급히 안개를 일으켜 각희의 얼굴을 가렸다.



“우리 현림이 오셨는가? 왜 이리 오랜만이신 겐가? 그 어여쁜 얼굴, 자주 좀 봅세”

“자주 보면 질릴까 그렇지요.”



방금 전까지 불같이 화를 내던 탈의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각희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조용하고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그녀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옆으로 늘였다. 분명 그 은인의 목소리였다. 그렇다면?


기억 속의 그 남자와 구천에 떠도는 현림의 이미지는 판이하게 달랐다.

은인의 모습은 호리호리한 귀남자의 태지만, 소문의 현림은 도깨비도 저리가라 할 만치 무시무시한 괴물같았기 때문이었다. 각희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눈에 덮힌 안개를 치우려 손을 올렸다. 하지만 곧바로 현의옹의 의해 저지당했다.



“아무튼, 잘 왔느니라.”

“그저, 지나는 길에 들렀습니다. 무슨 일이신지요?”



방금 전까지 화를 주체하지 못하던 탈의파의 부드러운 말투로 보니, 그와 꽤 가까운 사이처럼 들렸다. 그와 반대로 현림은 깍듯한 말투와 느리고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분명히 선을 긋고 있었다.



“일은 무슨, 꼭 일이 있어야 오는 것이더냐?”

“그럼, 아무 일도 없이 바쁜 이를 붙잡으셨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에이 참, 그럴 리가 있겠는가? 온 김에 저 것 좀 데리고 나가거라.”



뾰족하던 탈의파의 목소리가 어쩐지 새색시처럼 간질간질 했다. 각희는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들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기어이 들이셨습니까?”



정말 목소리 하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버들가지처럼 낭창하니 부드러웠다.

저치가 그 무시무시한 현림이라니. 순간 그의 손에 들렸던 장검을 떠올렸다. 귀물을 베어 낸다는 귀도. 그제야 그녀의 손에 땀이 차올랐다.



“들이긴 누가 들여? 제 발로 들어온 물건이야.”

“후후! 탈의파께서도 어쩌지 못하는 걸,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는 귀찮은 듯 작게 투덜댔다. 각희는 저도 모르게 짧은 한 숨을 토해냈다. 잔득 움츠렸던 긴장의 끈이 탁 풀려 버렸다. 미친놈은 무슨, 각희는 희뿌연 안개속에서 장검을 들고 우뚝 섰던 현림을 떠올렸다. 이제보니 그 귀도를 휘두른 것도 다 저를 위해 한 일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세상에 의령수가 알몸의 여인을 좋아한다는 고급정보도 친히 알려 주시고. 각희에게는 현림은 미친놈이 아닌 귀인이요, 구원자였다.



“그러지 말고, 나 대신 저 귀신좀 염라에게 데려다 주련.”

“고작 그런 하찮은 일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고작 하찮은 일. 염라를 만나러 가는 일을 고작 하찮은 일이라고 말하는 우리 귀인의 흠결이라면 딱 하나, 저 아름다운 목소리로 나오는 말들에 도무지 정이 느껴지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정을 두지 않는 검 끝처럼 그는 단호했다.

마치 산들바람처럽 부드러운 목소리로 회초리를 맞은 기분이랄까.



“대왕과는 현재 얼굴을 볼 사이가 아니니, 두 분께서 알아서 하시면 되겠지요.”



그 말을 끝으로 현림의 규칙적인 발자국 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그녀의 귀인이 멀어저 갔다. 쫓아 갈까? 각희는 잠시 머뭇거렸다.


“저,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있나!”



탈의파는 그가 사라진 방향으로 삿대질을 하며 욕을 쏟아냈다.



“저 앞에서 왜 염라를 들먹이는가. 원래 좋은 사이도 아닌데.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니까.”



현의옹은 부드럽게 탈의파의 어깨를 감쌌다. 그녀는 현림이 사라진 곳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 보았다.



“저 위인도 어서 저 굴레를 벗어야 하는 것을..”

“그리 말 마시게. 어디 그게 쉬운 일이던가. 저 죄가 너무 무겁네..”

“그러니 이리 걱정하는 게 아닙니까.”



탈의파는 툴툴거리며 돌아섰다. 하필 그 시선이 닿는 곳에 걸리적 거리듯 각희가 서 있었다.



“아이구, 내 팔자야. 어디서 저런 골칫덩이가 굴러 들어와가지고는.”



넝마를 뒤집어 쓴 채, 망부석처럼 앉아 있는 그녀를 보자 탈의파는 앓는 소리를 냈다. 그때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 안개의 속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