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보는 시간들.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이 촘촘히 박혀 있다. 저것은 다 너의 눈이다. 저곳에 너와 내가 함께 한 시간들이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이 모두 다 하늘에 묻혔다. 그러니 너는 분명히 그 곳에 있을 것이다, 아니 반드시 그곳에 있어야 한다.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 네가 있을리가 없다.
길가에 플라타너스의 이파리가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 다리위로 아담하고 고풍스러운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해?"
"당신 생각."
"거짓말."
"응 거짓말이야."
"뭐야. 시시하게."
"그냥 우리집에 고양이는 잘 놀고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지. 그런데 내게는 그것도 다 당신생각이야. 항상 모든 생각의 끝은 너니까. 네가 빠질리가 없잖아."
여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슬며시 손을 풀어 남자의 팔에 팔짱을 꼈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살며시 기댄 남자의 어깨가 그 무엇보다 사랑스러웠다.
세월이 흘러 남자가 홀로 길을 걷고 있었다. 잎이 다 떨어져버린 플라타너스의 앙상한 가지에는 하얀 눈이 소북히 쌓였다. 검은 중절모에 검은 양장코트, 윤이 나는 검정색 신사화. 다 죽어가는 나무 거죽같이 갈라진 남자의 손등은 지팡이를 짚고 걸을 때마다 더 심하게 벌어졋다.
"아직도 내 생각해?"
"이제는 생각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자꾸 당신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저버려."
"괜찮아. 우리에겐 함께한 시간들이 별이 되었으니까. 조금은 잊어도 돼."
그 시절의 우리.
그녀는 매일 소파 위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제 막 그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세지를 남기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해가 지고 창문 너머로 달빛이 들어왔을 때쯤이야 그녀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우리 그만 헤어지자.'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었다. 마치 세상이 그들의 관계를 부정하는 것처럼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은 모두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아니다. 아니다. 그것은 얼핏 그녀의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인 것 같기도 했고, 길에서 우연히 들은 어느 연인의 대화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후배가 나타나기 전까지만해도 어떤 일이 있어도 그의 손은 놓지 않을 수 있는 자신감과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나타났다.
0월 0일 00시. 연극에서 1막의 커튼이 내리고, 2막의 정해진 등장 인물처럼 그녀는 자연스럽고, 임팩트 있는 등장을 알렸다. 둘은 과거의 연인이었고, 현재의 친구고, 동기이자 동료였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둘은 한 공간에서 지내고 있었다. 게다가 언제가부터 한 팀으로 묶이면서 야유회든 등산이든 회식이든 언제나 함께하고 있었다. 언듯 보는 그의 핸드폰 통화목록에는 그 후배의 이름이 맨 위에 있었고.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했던 날에는 그녀는 그냥 그의 옆에 붙어 있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둘 사이에 흐르는 알 수없는 묘한 전류,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그리고 연인이었던)사람들이 보여주는 편안함에는 다가갈 수 없는 방어막이 드리워저 있었다. 딱히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도 없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함께 섞일 수 없는 기름때 같은 더러운 기분. 마치 오래된 부부사이를 질투하는 불륜녀가 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한 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고, 참을 수 없어 꺼낸 말에 남자는 너무 가볍게 대꾸를 했다.
"예전에나 그랬지. 지금은 정말 아무렇지 않아. 매일 봐도 상관 없는 걸. 괜한 걱정이야."
그는 나를 사랑해주었다. 과연 그럴까. 그도 깨닫지 못하는것은 아닐까. 어느새 그들 사이에 끼어든 그 불청객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추억과 편안함으로 무장하고 그저 '친구'라는 예쁜 입으로 그녀만이 알아볼 수 있는 독한 가시를 드러냈다. 노골적인 비웃음, 유혹하는 붉은 립스틱과 늘씬한 실루엣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검은색 스키니. 그리고 빨간 하이힐.
"선배는 나같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너같은 사람을 내가 어떻게 감당하니.하하"
그 뒤로 그녀는 그와의 연락을 끊었다. 그에게서 오는 수많은 메세지를 닫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다. 그녀는 두려웠다. 모든것에서 상실감이 물밀듯이 밀려와 그녀의 모든 세포를 하나하나 공격해 그녀를 지치게 만들었다.
'띠링.'
다시 그에게서 메세지가 왔다.
"미안해. 네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은 몰랐네. 그 아이의 모든 행동을 오늘에야 알았어. 나는 바본가봐,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 너를 힘들게 했나봐. 미안해. 그래도 자영아. 내겐 네가 있어야 해. 우리 결혼하자. "
어두운 밤, 가로등이 켜진 길을 남자와 여자가 길을 걷고 있다.
여자가 남자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해?"
"음...네생각."
"..........고마워"
남자가 말없이 여자의 어깨를 끌어 않았다. 길에서 멀어저 가는 그 두 사람의 뒷모습을 수많은 별들이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