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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가는 물고기 Oct 26. 2020

#24 거푸집을 만든 노인

– 영노의 분노

부여경은 눈앞에 향로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공포, 불안, 초조, 그의 얼굴빛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      

거대한 향로에서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향이 없는 연기였다.

부여경의 탁한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오직 하나였다.

     

 “당장 영노를 데려와라!”          


시뻘게진 눈동자와 푸른빛을 띠는 입술. 그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갑작스러운 흉통으로 호흡도 고르지 못했다.       

   

“부르셨나이까. 어라하!”      

     

부여경이 이미 진맥을 마치고 약사발을 들이켤 때쯤 초로의 노인이 군왕 처소에 들어왔다.   

  

“혹! 보명을 데리고 하늘 연못에 갔던 적이 있더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군왕 앞에 바싹 머리를 조아렸다.


영노는 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러나 곧 경악으로 그의 얼굴이 굳었다.


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끊임없이 향로에서 흘러나오는 뿌연 연기.           

향로에서 정말로 하얗고 맑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영노는 눈앞에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입이 벌어졌다.           

  

“이를 어찌 설명할 텐가!”          


부여경의 몸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향로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은…. 아니 이것은!”          


영노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리다 못해 창백하게 변해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절대로.

이것은 진짜 신물이 아니지 않은가.     


“정말 휘 그 아이가 하늘 연못을 모르는가. 만약 거짓을 고한다면 아무리 자네라도 그냥 두지 않을 테야!”

“그것은…. 아!”     


두려운 얼굴로 향로를 보던 영노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가 떠올린 것은 명광현의 진짜 모습을 바라보던 휘의 얼굴이었다.


애초에 무천은 왜 그곳에 공주를 보낸 이유가 단순히 사타무의를 만나기 위한 것이 아님은 지레짐작은 하고 있었다.       

   

“자네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공주라면, 그곳을 능히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노는 남아 있는 명광현의 박사들 중 유일하게 대향로의 거푸집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죽지 않고 있는 사비성 태학의 마지막 도공.          


그의 눈이 붉게 차올랐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자신의 만든 향로가 제 주인에게 화답했으니, 더는 여기서 죽어도 제 할 일을 다 했다 여겼다. 아마도 지금까지 이토록 죽지 못하는 몸을 끓고 살아왔던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황공하오나. 어라하! 공주께서 명광현을 들리신 적이 없사옵니다.”          


부여경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다 도로 주저앉았다. 그는 영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다시 한번 가슴을 압박하는 흉통이 찾아왔다.     

      

“대신관을 부르라!”          


뒷걸음질로 조심스럽게 나가는 영노의 기분이 이상했다. 나이가 들어 노쇠해진 몸과 달리 마음의 기운을 읽는 것에 더욱 예민해진 그였다.           

그는 단번에 부여경의 흐릿한 눈에서 살의를 느꼈다.


공주를 탐탁지 않는 것은 알고 있었다.

설마 죽이기까지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여 휘는 온조왕의 피를 이어받은 적녀였다.


그는 서둘러 사타무의가 머무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탕! 탕! 탕!          

건안성 영노의 대장간에서 규칙적으로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의 얼굴에 벌건 화기가 가득했다.

그는 지금 대형 향로의 거푸집을 향해서 사정없이 두드려 조각을 내려하고 있었다.


거대하고 시커먼 향로의 거푸집이 두 동강이 나고 세 동강이 나며 칼로 자른 듯 떨어져 나갔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헐레벌떡 대장간으로 뛰어 들어온 사타무의가 거칠게 영노를 밀쳐내려 했다.

그러나 평생 대장장이로 살아온 영노의 힘을 사타무의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영노 어른.”          


사타무의가 그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네 이노옴!”       

   

자리에서 벌컥 일어나 사타무의를 노려보는 그의 눈이 시뻘건 피가 가득 모여 있었다.   

       

“멈추십시오!”         

 

사타무의의 다급한 외침을 듣고도 영노는 거푸집을 두드려 형체 없이 조각낸 다음. 펄펄 끓고 있는 쇳물에 거칠게 처넣었다.      

     

“이깟 고작 향로 따위가 뭐라고!”

“어르신!!!”          


사타무의는 조각난 거푸집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영노는 펄펄 끓는 쇳물을 안타깝게 보는 그를 밀쳐냈다.       

   

“네놈이! 감히! 네놈이!”        

  

사타무의는 어렴풋이 그의 분노를 짐작했다. 언제고 겪을 일이었다.

다만 생각보다 그 시기가 빨리 찾아왔을 뿐.      

    

“향로에 연기가 피었다. 그 뜻을 네가 아느냐?”

         

‘향로에 연기가 피어오르면 신탁은 현실로 이루어진다.’        

  

길하지만 상서롭지 못한 일.     

사타무의는 신물이니 혈족이니 이런 것들을 믿지 않는 자였다. 제 아비가 의자왕을 끌어내린 공으로 받은 왕족의 귀걸이. 그것이 증거였다.


 진짜 혈족이란 것이 있다면 나라가 그렇게 형편없이 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명운의 힘은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 그는 하늘이 아닌 사람의 신념을 믿는 사내였다.  

         

그런데 진짜로 향로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감히 네 놈이 향로를 그따위로 이용을 하려 들어?”          


벌겋게 달아오른 쇠붙이를 손에 쥐고 있는 모양새가 당장이라도 찌를 태세였다.    

       

“이용하면 안 됩니까?”          


화난 영노의 음성과 달리 사타무의의 눈빛은 냉정하고 건조했다.         

 

“네가 감히 나를 기만하고, 공주를 기만하고, 유민들을 도륙하려고 작정한 것이냐?”

“현실을 보십시오!”      

    

사타무의가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네 놈이 이 물건을 만들게 했느냐? 그 잘난 세 치 혀를 놀려 감히 나를 기만해?”   

  

영노의 집안 대대로 향로의 거푸집을 만드는 집안의 후손이었고, 명광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박사였다.     


대부분의 박사들이 기술을 내어놓지 않고 쓸쓸히 하늘 연못에 잠들었다.


그들과 달리 영노는 사타무의를 도와 향로의 거푸집을 만드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가 동료로부터 배신자라는 따가운 눈초리를 보면서도 제 일을 묵묵히 했던 데는 하나의 이유뿐이었다.       

    

유민들을 모아 작은 백제를 다시 일으키는 일.  

         

“아무리 그리하셔도 거푸집을 없애시면 어찌하려고 하십니까?”          


대장장이의 피를 섞어 만든 향로의 거푸집은 그의 생의 근원과 함께해왔다. 거푸집이 사라짐과 동시에 나이를 알 수 없었던 노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그 빛을 잃어 가기 시작했다.

          

“내가 오래 살자고 이 짓을 하였는 줄 아느냐!”  

        

사타무의는 한숨을 쉬었다.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신물은 오랫동안 왕실 혈족과 하나였다. 영노 또한 부여 덕장과 힘든 세월을 보내왔다.


그는 휘의 비밀을 제일 처음 알았던 사람이었고, 죽어가면서 딸의 안위를 부탁하던 덕장의 오랜 벗이기도 했다.       

    

덕장의 뒤를 이어 대방군왕에 오른 부여경도 신물을 원했다.


군왕에 오른 자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왕족으로서 하늘과 태양에 제를 지내는 것은 주어진 신성한 의무였고, 신물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소명이었다.      

     

그러나,      

영노는 향로를 바라보는 부여경의 눈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살의!          

 

단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는 기운. 모든 촉감이 둔해져도 사람의 감정을 느끼는 심안만은 더욱 날카로웠다. 그가 혹독하게 견뎌야 했던 시간과 함께 쇠를 두드리듯 마음도 예리하게 벼려진 탓이었다.


“처음부터 계획된 거였어. 군왕께선 처음부터 신물에는 관심이 없었다. 말하라! 애초에 그 물건을 없애려고 만든 것이 아니더냐!”        

  

하얗던 영노의 머리가 순식간에 검게 부풀려졌다.

그의 예리한 눈동자에 붉게 핏물이 차올랐다. 창백하던 얼굴은 썩은 송장처럼 검고 붉게 변해갔다.          

 

거푸집을 만들었던 노인.

인간의 명운을 거슬러 제 생을 실로 엮어 거푸집을 만들었던 명광현 유일의 장인.       

    

“나는 이제 하늘 연못에 돌아갈 자격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네놈 때문에!”

“이제 와서 거푸집을 없앤들, 영노 어른의 명만 재촉하는 것이지요.”          


사타무의가 차갑게 일갈했다           


“흥! 그렇지! 내가 무엇을 꿈꾸었더란 말이냐! 어차피 사비로도 가지 못하는 이 몸뚱이는 이제 벗들의 곁에도 갈 수 없으니.”          


자조적인 웃음이 영노의 붉은 얼굴에 피어났다.

    



삼문협의 외길은 말 한 필이 들어갈 수 있을까 한 좁고 어두운 협로였다. 길이라기보다는 산의 구릉이 갈라지면서 생긴 틈.


“이런 곳에 잘도 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멀쩡한 문을 놔두고. 이렇게 어둡고 좁은 곳에, 그것도 움직이는 말 위에 딱 달라붙어 앉아 있으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말 허리가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몸이 지성의 가슴에 아슬아슬하게 닿았다. 저도 모르게 가슴 한쪽이 저릿해 왔다. 지성의 살냄새가 휘의 코끝을 스쳤다.     


 “사람들을 피해서 다니기에는 아주 제격이지요!”     

     

그녀의 머리 위에서 그의 음성이 나직이 울렸다.

사람들을 피해 다닐 일이 뭐가 있다고,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간신히 눌렀다.


지성이 운신하기 쉽지 않은 사람이란 걸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거추장스럽게 긴 비단이 드리운 유모를 맨날 쓰고 다니는 것도 처음에는 이상해 보였다.   

  

'어딜 가나 구름 떼처럼 사람들을 몰고 다니니 이런 길 하나쯤은 만들어 놔야겠지.'


그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장간 마을 깊숙이 들어와 있지 않았다면 어디 혼자 있을 구석도 없어 보일 정도로 사람들은 그를 단번에 알아봤다.


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처음에 보였던 것이 감탄이라면,그다음은 경멸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좋지 않은 시선도.     

반은 질투 어린 시선, 나머지 반은 알 수 없는 적의!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낙양에서 장안에서 떠도는 소문들.     

둘을 태운 말의 발걸음이 멈췄다.

또 하나의 작은 철문이 그들 앞을 막았다.     


“장소야!”      

    

안쪽에서 끼익! 소리를 내며 작은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린 곳으로 들어서자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호수를 끼고 있는 긴 회랑 양쪽에는 깎아지를 듯한 협곡이 이어졌고, 그 사이로 넓은 호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끝에는 작은 정자가 호수의 가장 후미지고 밝은 쪽에 자리했다. 회랑은 그 정자를 지나 안채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그녀가 방문을 열자 언 듯 스치는 꽃내음이 기분 좋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낙양의 왕부가 마치 누군가의 집에 얹혀사는 기분이 들었다면 이곳이야말로 진짜 제 방처럼 느껴졌을까.


휘는 습관처럼 창을 열고, 주변 정리를 하다 갑자기 찬비가 떠올랐다.       

    

“찬비는 어찌 됐나요?”     


때마침 들어온 지성에게 휘가 물었다.


“어차피 눈속임으로 데리고 왔으니 돌려보냈소!”     


아. 잔뜩 실망하고 돌아서는 찬비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최대한 사람 수는 줄여야지!”     


왠지 단순한 유랑이 아닌 듯했다.      

다시 문이 열리고 장소가 음식을 들고 들어왔다.

왕부에서 차려진 기름지고 풍성한 차림이 아닌 간소하고 담백해 보이는 음식들이었다.


장소가 물러가자 지성은 손수 음식을 덜고, 이것저것을 챙기는 모습이 왕부에서 봐 온 모습보다 훨씬 편안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이번에 영주로 가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으십니까?”

“예전 일도 있지만, 돌궐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지성의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묵철!

그의 음흉하고 우악스러운 웃음을 기억했다.


“태평공주가 당신을 그에게 보내려 하오.

“말이 되질 않습니다. 아무리 공주라 하여도 이미 혼인한 여인이 어떻게 화친으로 쓴단 말입니까?”

“우리의 혼인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이들도 있으니 말이오.”          


태평공주의 능력이라면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태자도 바꾸려고 바득바득하는 판국에 일개 왕비쯤이야.


게다가 그녀가 얼마나 자신을 미워하고 있을지는 뻔한 일이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그대를 빼앗기는 일은 없을 테니.”          


지성은 일부러 그녀를 보지 않고 무심히 말을 던졌다. 그녀가 자신의 말에 안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는 누가 빼앗아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의 등 뒤로 단정하고 힘 있는 여인의 음성이 들렸다. 지성이 실소했다. 맞다. 또 잊고 있었다. 휘는 그런 여인이었다.


은은한 달빛이 두 사람을 비췄다.     

 명광현에서 왕부에서 그리고 하늘 연못,

그리고 이곳 함곡관 자신의 별채에서 보는 그녀의 모습도.      


휘는 그의 시선에 얼굴을 바로 돌릴 수도 없어 목이 뻣뻣해져 왔다. 지성은 그녀에게서 흐르는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다. 오히려 장난기까지 불뚝 샘솟아 그녀에게 고개를 더욱 기울였다.  

         

“많이 피곤하셨을겁니다.”     


휘는 짧지 않은 제 소매를 들어 지성의 시선을 막았다.           


“피곤하지 않습니다.

“제가 곤합니다.

“그럼 쉬어야지요.”          


어쩐지 그의  말투에 정난기가 어렸다. 휘는 잠자코 그가 일어서길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지성이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어쩔 수 없이 그녀도 팔을 내려 지성을 정면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붉고 선명한 그의 입술이 그녀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하얗고 창백한 휘의 볼에 옅은 부끄러움이 머물렀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 알고 있을까. 감정이라는 것을 내보이는 것에 서툰 여인.     


항상 이지적으로 앙다물고 있는 입술에서도 따뜻한 온기는 흐르지 않았다.      


분명 서운했을 것이다.     

무진을 안고 돌아서는 그 찰나에, 지성은 어둠처럼 내려앉는 그녀의 검은 눈동자를 보았다.


그녀의 마음속 얼어붙는 소리가 그의 가슴을 송두리째 난도질하는 것을 느꼈다.       

    

“그때는 정말 미안했소!”

“사연을 들어 알고 있으니 신경 쓰자 마시옵소서!”          


어차피 앞으로 후궁이 몇이나 들어올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 이름 있는 가문의 영애들은 바리바리 싸 들고 왕부의 문턱을 넘으려 들겠지.      

     

“곽 장군을 만나면 무진의 일을 마무리 지을 것입니다.”     


그게 쉬울까. 무진은 지금 그녀의 힘만으로 왕부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뒤에는 태평공주가 있었다.


“좋을 대로 하시지요!”          


다시 돌아온 뻑뻑한 말투. 이중복의 죽음 뒤로 그녀와 나름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녀는 다시 저만치 되돌아가 있었다.      


그를 보는 것이 설레다가도 이내 무겁고 서운함이 마음 한쪽에서 밀고 나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왜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지. 그녀는 애써 부인하고 싶었다.     


어차피 정략적인 혼인,

애써 생각할수록 그녀는 제 마음이 멋대로 비뚤어져 가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갑자기 그의 손이 그녀의 어깨를 스쳐 느슨하게 묶어 내린 머리카락을 쓸었다.          

 

“편안히 주무십시오! 저는 지금 태자궁에 다녀와야겠습니다.”          


제멋대로 뛰던 심장이 쿵 떨어졌다.          

 

“혹여 궁에 다급한 일이라도 생긴 것입니까?”    

      

그녀의 눈에 걱정의 빛이 어렸다. 지성이 그녀의 볼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여기서 기다리시오! 아무도 이곳에는 함부로 드나들 수 없으니!”         

 

휘는 밝게 웃고 있는 그의 웃음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지금의 고요가 곧 몰아닥칠 태풍을 맞이할 전조인 것처럼 그의 뒷모습이 처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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