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lon de Madame Saw Jul 15. 2020

향기 없는 꽃으로

세속으로의 도피



세련된 화병에 꽂혀있는 백합 사진과 함께 다리를 활짝 벌리고 풀숲에 누워있는 애띤 소녀를 떠올리며 자유롭게 예술로 망명을 한다는 어느 예술가의 글을 보았다. 우리 집에도 같은 화병이 있다. 언니가 어버이날 선물로 거실 테이블에 갖다 놓은 것이다. 화병엔 조화가 꽂혀있다. 나에게는 이런 센스가 없다. 땅을 밟고 선 사람들이 예쁘고 멋지다고 칭송하는 것을 보는 눈 같은 것이라던가 스스로를 그 시선 그 모습 그대로 박제해 시들지 않도록 지키는 방법 같은 것들 말이다. 아직도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그 때문인지 사람들에게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땅 밑을 기어 다니는 지렁이 같은 존재였다. 반면 언니는 어려서부터 나와는 다르게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마치 날개를 달고 태어나 하늘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패션이든 대중문화든 유행의 선두주자였기에 인기가 많았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안전했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 괴롭힘을 당할 때면 늘 언니를 찾았던 것 같다. 괴롭히던 아이들을 대신 혼내주게 하고 언니 옷을 빌려 입고 언니의 말투와 글씨를 따라 하며 언니의 그림자 속에 숨었다. 그때만큼은 나도 안전했으니까. 땅속에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던 걸까? 싹을 틔우고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하던 앳된 시절 사랑 고백이라는 걸 받았다. 처음 받아보는 햇빛과도 같았던 관심에 더 활짝 피워내려 애썼던 것 같다. 수없이 내리 꽂히던 시선에 눈이 먼 지렁이는 그렇게 화병에 꽂히고 꽂혔다. 영화 ‘사쿠란(착란)’에서 오이란(花魁)이 된 한 유녀는 금붕어는 강에 돌아가면 금방 붕어로 변한다고 말한다. 예쁜 모습은 어항 속에서만 간직할 수 있다고. 나 역시 예술로의 도피를 시도했었다. 내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내 목소리로 노래하고 싶었다. 그러나 짓밟히고 잡아먹히는 것이 두려워, 반지하의 창문이 무서워 꾸물꾸물 숨어 들어갔다고 생각했던 그곳은 땅속이 아니라 어항 속이었던 것 같다. 끊임없이 반짝이는 모습으로 헤엄치는 날 바라봐 주는 수많은 연인들의 품 속.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지난겨울의 추억을 끝으로 나는 그곳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나에겐 언니가 선물로 드린 화병과는 아주 다른 모습의 나무 화병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 겨울 가장 처음으로 마음속으로만 바랬던 그것을 생일 선물로 받던 날 언젠가 더 큰 꿈도 이루어져 꽃을 꽂을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었다. 그때까지는 그래도. 이제서야 나는 비로소 수조가 아닌 예술로 도피를 할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 자신을 노래하기에 어항에서만 살던 금붕어는 제 목소리가 없고 추억을 써 내려가기에 지렁이의 사랑의 민낯은 차마 들키지도 못하게 처절하고 쓰리고 절망적이다. 겨울은 지났고 봄날도 지나갔지만 여전히 텅 빈 내 화병처럼 빛만 잃은 붕어는 어항에서 벗어난 지금도 목소리를 잃은 인어 마냥 여전히 뻐끔거리기만 할 뿐이다. 언니는 여전히 날개를 달고 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녀를 따라 한다. 비록 날지 못하고 세상을 내려다보지 못할지라도 그녀가 내는 소리를 그대로 흉내 내고 그녀의 눈을 통해 세상을 찍어 보인다. 그 시절 나를 울렸던 또 하나의 여자아이의 글을 빌려 보겠다. 오늘처럼 서러움이 밀려오는 날엔, 내가 속한 세상이 어디인지 마주하는 날엔 반짝이는 공작새의 깃털을 긁어모으는 까마귀처럼 그렇게 잠시나마 공중으로, 세속으로 망명한다. #화병 #향기없는꽃

작가의 이전글 나의 반지하 인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