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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음 Apr 02. 2021

퇴사는 잘한 일이었을까?

01. 내 선택의 의문

퇴사는 잘한 일이었을까?


분명 퇴사를 하고 싶어 퇴사를 했지만, 막상 많은 사람들이 퇴사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을 보고 나도 조금씩 불안해졌다.




퇴사 직후 한 달 동안은 쉬기로 했다. 밀렸던 영화도 보고 만화책도 보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까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공상들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공상의 끝은 '퇴사는 잘한 일이었을까?'로 마무리됐다.


밀려오는 찝찝함에 유튜브에서 '퇴사'를 검색했다. 거기서 취업 전문가들은 극한의 예외사항(불법적인 일 강요, 계약서 없는 회사 등)을 제외하고는 퇴사를 하지 말라고 했고, 퇴사 후 심정을 밝히는 유튜버들은 대부분 퇴사를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분명 퇴사를 하고 싶어 퇴사를 했지만, 막상 많은 사람들이 퇴사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을 보고 나도 조금씩 불안해졌다. 


하지만 퇴사 후 100권의 책을 읽기로 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불안하지만 일단 서점에 갔다.


원래 책을 좋아하던 타입이 아니어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막막했다. 간단하게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책을 읽으려고 마음먹었으면 일단 구애받지 않고 관심 있는 책부터 읽어보라 쓰여있었다. 나는 퇴사 직후였고 스멀스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느껴지던 시기라 '일', '직업', '회사', '미래' 등 과 같은 키워드에 관심이 있었다. 이러한 키워드에 관련된 책을 찾다 <일자리의 미래>라는 책을 보게 됐다.


관심 있는 키워드들이 책 제목에 들어가 있길래 어떤 내용이 있나 살펴봤다. 목차를 살펴보는 순간 내 눈길을 끌었던 소제목이 있었다. '열정 패러독스'. 서로 조응하는 단어가 아닌 듯한데 같이 쓰여 있는 게 이상했다. 열정에 어떤 패러독스가 있다는 것인지, 그 안에 있는 내용이 궁금했다.





... 1970년대 후반 헝가리 출신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성인 등 중에서 80퍼센트는 돈이 필요 없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반면, 절대 다수는 매일 밤 할 수만 있다면 자신들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을 당장 그만둘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 같은 사실로부터 그는 인간은 일하기를 갈망하지만 동시에 현재의 일자리는 원하지 않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엘렌 러펠 셀, 2019: 146).

내 얘기를 써놓은 것 같았다. 회사에 들어간 지 6개월이 넘었을 때, 나는 퇴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밤마다 '내일 팀장님에게 말해서 퇴사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침이 서둘러 일어나 통근 버스를 타고 출근하면, 퇴사라는 소리는 어느새 목구멍 뒤로 넘어갔다. 이유 없이 퇴사를 하지 못한 채로 6개월이 더 지난 후 진짜 퇴사를 한 것이다.  



... 모든 도서들을 데이터로 만들어 책 속에서 사용된 특정 단어의 전체 사용 빈도수를 알아볼 수 있는 구글 북스의 엔그램 뷰어(Ngram Viewer)는 '당신의 열정을 따르라(follow your passion)'라는 구절이 1980년대 대비 2008년에 무려 450배 더 많이 사용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구글앤그램뷰어, 구글북스, 2018). 1980년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던 말이었다. ... (엘렌 러펠 셀, 2019: 152).
... 그는 우리가 어떤 직업에 대해서 자신이 소명을 받았다고 믿으면 믿을수록, 그 직업과 함께 오게 마련인 어려움을 참거나 아예 무시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진다고 설명한다. 또한 이런 식으로 어려움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가 탁월함을 추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도 하지만, 비현실적인 기대와 착취로 스스로를 이끌 수 도 있다고 지적한다. ...(엘렌 러펠 셀, 2019: 175).
"... 자기 일에 빠져 들어가는 것은 그 자체로 훌륭한 일이고 헌신적인 일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반대 측면이 있습니다. 고용주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요. 왜 그러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우리가 하는 일에서 '소명'을 느끼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득이 되니까요." (엘렌 러펠 셀, 2019: 176).

어렸을 때부터 나는 학교나 어른들에게서 항상 열정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며 그래야 더 열정적으로 일 할 수 있고, 나중에 성공할 수 있다"라고 배웠다. 한두 명이 지나가면서 했던 소리가 아니라, 근 20년 넘게 여기저기서 들어왔던 소리다. 그래서 천직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배우지 않았던가.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열정을 불태워 꼭 성공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열정을 쏟을 만한 일이 무엇인지 찾기 위하여 대학교를 다니면서 학교 공부는 공부대로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대외활동, 봉사활동, 아르바이트 등을 경험했다. 그 사이 음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1년 넘게 작/편곡을 배우고, 직접 음원까지 제작해서 유통시켰다. 그 열정으로 결국 음악 회사에 들어갔다. 입사 후에도 역시 열심히 해서 성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일의 의미를 찾기 어려워졌고, 나에게 돌아온 결과는 퇴사였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내가 왜 힘들었는지를 알게 됐다.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열정과 소명으로 스스로를 계속 밀어붙인 것이었다.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이라고 배웠지만, 그게 나에게 맞지 않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 그러므로 좋은 일자리가 의미 있는 일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고집해서는 여러 이유로 힘들고 고달프다. 그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엘렌 러펠 셀, 2019: 193).
... 그 일을 하고 그 일자리에 몸담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면 이 세상은 보다 살기 좋은 곳이 된다. ... (엘렌 러펠 셀, 2019: 193).

나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음악에 대한 소명을 갖고 일에 대해 과도한 의미를 찾으려 해 그렇게 힘들지 않았나 생각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일에 대해 '나는 음악을 정말 좋아하니까 음악 일을 해야겠다'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면, 책을 읽은 후에는 '내가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일을 하면서 나만의 의미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퇴사는 잘한 일이었을까?' 고민하던 나에게 이 책은 불안감을 덜어주었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참고문헌>

엘렌 러펠 셸. (2019). 일자리의 미래 (김후 옮김). 서울: (주)예문아카이브.

구글앤그램뷰어, 구글북스, 2018년 2월 3일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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