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나만의 속도를 지킨다는 것
기한 맞추는 건 왜 그렇게 어려울까?
그렇지만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기분이 썩 좋은 것은 아니다. 하루 종일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이제 3주 차가 됐다.
1주 차에는 한 개라도 빨리 업로드 해보는 게 목표였고, 2주 차는 총 4개의 게시물 업로드가 목표였다. 하지만 내 브런치 피드에서 알 수 있듯이 지난주는 2개의 게시물만 업로드됐다. 그리고 그 결과물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최소한 한 주에 2개는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일단은 업로드했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지금 봐도 잘 모르겠다.
사실 지난주 수요일쯤, 글 4개 업로드는 무리라는 것을 느꼈다. 글 쓰는 속도를 보니 총 2개 정도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목표치에 다다를 수 없다고 생각이 들면, 목표치를 상황에 맞춰 다시 수정한다. 나의 생활 방식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문제이기도 한데, 어떻게든 목표를 달성하려 무리하는 게 나로서는 굉장히 부자연스럽다. 내가 못했구나라는 생각보다, 내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무리한 계획을 세웠구나 생각한다. 그렇지만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기분이 썩 좋은 것은 아니다. 하루 종일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유명 인사의 티브이 강연을 보거나 혹은 자서전을 보면, 나의 태도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비친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항상 약간의 벅찬 목표를 세우고 달성한다. 또한 그들은 "목표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높은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게 행동하라"라는 식의 조언을 한다.
어떻게든 목표를 달성하는 그들을 보다가, 상황에 맞춰 목표를 다시 수정하는 나를 보면 괴리감이 든다.
이런 방식 때문에 회사에서도 종종 문제가 있었다.
한번 이런 일이 있었다. 회사의 데이터베이스 고도화를 위해 급히 db업무에 투입된 적이 있었다. 전문적인 일은 물론 다른 팀에서 했고, 우리는 단순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을 했다. 그때 각각 할당받은 양이 있는데 단순히 몇 백개가 아니라 몇천에서 만개 사이였다. 그걸 3일 안에 확인하라고 해서 나는 식겁했는데, 다들 그냥 끄덕끄덕하며 태연하게 알겠다고 했다.
내 속도대로 대충 계산을 해보니 매일매일 전력으로 해도 못 할 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날부터 내가 가장 뒤처졌다. 그래도 일단 '시킨 일이니까 다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야근을 하면서 계속 확인했다. 그다음 날 팀원 한 명이 오후에 나한테 와서 말했다.
"왜 굳이 야근을 하면서까지 일해요? 무리하지 말고 퇴근하면서 일해요!"
"아... 저도 그러고 싶은데 제가 워낙 이런 일은 소질이 없어서 속도가 느려요."
"그거 일일이 다 보고 있죠?"
"네... 뭐..."
"그걸 누가 다 봐요... 다들 적당히 하고 기한 맞춰 넘기는 중이에요."
적당히 하고 넘긴다? 나한테는 그 말이 더 어려웠다. 그동안 적당히를 모를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는 게 아니라, 어디서부터 어디는 안 보고, 어디는 보라는 건지... 그 말이 너무 추상적이었다. 요령을 몰랐기 때문에 '적당히'라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오후가 지나고 그날도 야근을 생각 중이었다. 그런데 아까 오후에 대화했던 팀원이 나를 챙겨주려고 같이 퇴근하자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 못했다고 말했지만, 그 팀원은 이렇게 퇴근을 일찍 해봐야 내일 와서 어떻게든 빨리하게 되는 법을 배울 거라고 했다 (참... 지금 다시 생각하여도 좋은 사람이었다). 아무튼 일리 있는 말 같아서 모험 삼아 퇴근을 했다.
하지만 결국 나 혼자 데드라인에 그 업무를 끝내지 못했다. 과장님은 나를 따로 불러내며 진지하게, 데드라인에 못 맞출 것 같았으면 야근을 해서라도 더 했어야지, 일찍 퇴근하는 건 책임감이 없는 행동 아니냐고 했다. 사실 내 속도는 내가 제일 잘 아니 야근을 하면서까지 하는 게 당연했는데, 그렇게 못한 게 창피했다. 죄송하다 말하고 며칠의 시간을 더 얻어냈다. 그리고 다행히 그 시간까지는 완성할 수 있었다.
그 일이 있고 그다음 주 주간회의 시간, 고도화를 진행하던 팀에서 우리 데이터는 쓰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데이터에 너무 오류가 많아 도저히 밀어 넣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를 챙겨주던 팀원이 내게 다가와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이럴 것 같아서 적당히 하고 그냥 넘기라고 했던 거예요.”
결국 적당히 처리했다면 야근까지 하면서 업무를 더 할 필요도 없었고, 데드라인을 못 맞춰 과장님께 혼날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사실 생각해보면 데이터 팀이 우리에게 준 업무가 그렇게 중요한 업무가 아니었다. 시켜보고 잘 안되면 그냥 그쪽 팀에서 알아서 할 일이었다.
'기한 맞추는 거... 그게 그렇게 어렵냐...'
스스로에게 답답했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도 생각이 나고, 지난주 목표를 수정했다는 자괴감에 니체의 <아침놀>을 다시 읽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더 유명하지만, <아침놀>은 그의 사상을 쉽고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559. “과도함을 피할 것!”
사람들의 힘이 최고도로 긴장했을 때나 성취할 수 있는 것에 도달하도록, [보통은] 도달할 수 없고 그들의 힘을 넘어서는 목표를 세우라고 얼마나 자주 권해지는가!
그러나 이것은 정말로 그렇게 바람직한 것인가?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 사는 최상의 인간들과 최상의 행위는 너무 많은 긴장을 포함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과장되고 비틀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가 항상 발견하는 것은 투쟁하는 경기자와 그의 거창한 몸짓일 뿐, 월계관을 쓴 채 승리감에 취한 승자는 그 어디서도 발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통해 실패의 음울한 빛이 세계에 퍼지는 것은 아닐까?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81/2004).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브런치 작가 심사를 위해 글을 쓸 때도 보통 2~3일에 한편이 완성되었다. 물론 하루 종일 골머리 썼는데 2~3일이 걸린 것은 아니었다. 운동도 하고, 알바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틈틈이 썼다. 그때랑 지금이랑 생활 패턴이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런데 욕심으로 '일주일에 4개를 해보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또 앞에서 말했듯이 책이나 티브이에서 유명 인사들에게 '목표를 높게 세우라'라고 권유받지 않는가. 행동의 주체는 ‘나’인데 거기에 내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들어가니, 당연히 부작용으로 자괴감만 쌓일 수밖에....
고전은 이런 점이 좋다. 나만 겪고 있는 힘든 일 같았는데 비슷한 일은 이미 몇백 년 전에도 있었고, 그런 문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 철학자의 생각을 빠르고 싸게 훔칠 수 있다 (자기 계발서는 3만 원인데 비해 중고 철학서는 보통 3~5천 원 한다). 또한 계속 읽히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통해 작가의 생각이 검증됐겠는가.
자기 계발서의 그럴듯한 말 때문에 생긴 욕심은 이제 여기 버리고, 니체 아저씨 말대로 다시 나만의 속도로 더 좋은 글을 써보고자 한다.
<참고문헌>
Friedrich Wilhelm Nietzsche. (2004). 아침놀. (박찬국, 옮김). 서울: 책세상. (원서출판 18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