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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음 Jun 12. 2021

엄마는 앵두나무를 보면 친정이 생각난다고 했다.

엄마도 어릴 때가 있었다.



이맘때쯤이면 집 앞 화단 앵두나무에 앵두가 열린다. 아파트 앞 작은 화단에 한 그루 있는 나무지만, 엄마는 그 앵두나무를 보면 친정이 생각난다고 했다.


    "와~ 앵두다! 엄마 어릴 때 집 앞에 앵두나무 참 많았는데!"


그렇게 말하는 엄마를 보면서, '그러게... 엄마도 어릴 때가 있었겠네...'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말하는 친정에는 나도 자주 갔었다. 지금 사는 집과 엄마의 친정은 택시로 10분 정도 되는 거리라, 외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엄마는 나를 데리고 외할머니댁에 갔었다.


    "할머니는 엄마의 엄마야"


엄마는 외할머니를 그렇게 소개해줬다. 그 말에 '이렇게 큰 엄마를 할머니가 어떻게 낳지...?' 생각했다. 엄마는 나를 낳을 때도 너무 힘들었다고 했는데, 할머니는 어른을 어떻게 낳은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는 엄마도 애기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저 엄마는 엄마라는 어른으로 태어난 줄 알았다.




그런 엄마를 이상하게 쳐다봤을 때는 외할머니의 장례식 때였다. 외할머니와 엄마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내가 어렸을 때 여든 즈음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그때 엄마는 40대였는데, 장례식장에서 "엄마... 엄마..."하고 울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가 엉엉 우는 것도 이상했고, 엄마의 입에서 "엄마"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고 슬펐다. 엄마도 누군가의 아기로 태어났다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든 감정이다.


작년에는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한없이 무섭고 강했던 아빠는 친할머니를 화장할 때, 온몸을 부들부들 떨 정도로 울면서 "엄마... 잘 가..."라고 말했다. 그 모습과 어릴 때 외할머니 장례식장에서 봤던 엄마의 모습이 중첩됐다. 이제는 알고 있다. 엄마도 아빠도 어른으로 태어난 게 아니라, 갓난아이로 태어나서 어른이 됐다는 것을.


비록 세월이 흐르고 엄마 아빠가 되면서 강한 어른의 모습이 되었지만, "엄마"라는 존재 앞에서는 한없이 어린아이였던 것이다.





엄마는 집 앞 앵두나무에서 앵두를 몇 개 따왔다. 그리고 접시에 담아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씩 드셨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그런 엄마를 보면서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은 거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글에서, 엄마가 돌아가신 후 냉장고에 엄마가 담가 주신 김치를 보고, 하염없이 울었다는 사연을 읽었다.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엄마도 그런 마음으로 앵두나무의 앵두를 따먹는 게 아닐까 싶었다.


엄마에게 앵두나무는 '그리움'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이번 앵두도 다 떨어지겠지만, 엄마가 한동안 외할머니를 그리워할 수 있게, 되도록 오래 앵두가 매달려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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