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음 Jun 06. 2021

퇴사 후,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이 많아졌다.

'식구'의 의미

회사를 다닐 때, 집에 돌아오면 혼자 방에서 라면에 소주를 즐겨 먹었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 집에 돌아왔을 때만큼은 조용하게 온전히 식사에 집중하고 싶었다. 텅 빈 것처럼 허해진 몸과 마음을 따뜻한 국물과 술로 채우면서 속을 덥혔다. 그러다 나른한 열기가 얼굴에 돌면, 불을 끄고 아무 생각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다음날 또 출근을 하고, 퇴근해서는 어제처럼 하루를 혼자 마무리했다.




그런데 퇴사 후,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굳이 나갈 이유도 없고, 평소에 외출을 자주 하는 성격도 아니라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서 점심과 저녁을 가족들과 함께 먹게 됐다.



퇴사 후 가족들과 함께 먹었던 첫 식사는 떡볶이였다. 사실 그 떡볶이는 오랜만에 먹어본 엄마의 집밥이었다. 별거 아닌 분식이었지만, 회사 근처 강남역에서 먹었던 8천 원짜리 찌개백반보다 훨씬 맛있었다. 백반집은 어딜 가나 찌개에서 항상 라면스프 맛이 났었는데, 오랜만에 엄마가 해준 떡볶이는 오히려 담백하고 달콤했다.  


그 떡볶이를 먹는 동안 마음이 참 편안했다. 일에 치이지도 않고, 사람에 치일 일도 없었다. 가족끼리의 식사시간에는 그저 떡볶이만 맛있게 먹으면 됐다.


회사에서는 밥을 먹으러 가도 기분이 항상 꿀꿀하다. 오전에 못한 잔업과 오후에 밀려올 미팅 생각에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밥이 나오면 처음 몇 숟가락은 "음~ 존맛탱!"이라고 말하면서 맛을 음미하지만, 배가 좀 차면 "아까 그거 다 했어?", "오전에 다 마무리해야 하는데 큰일 났네", "이따 회의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지?" 등 다시 일 얘기를 하게 된다.


그런데 집에서는 그런 것들을 신경 안 쓰고 먹을 수 있어서 심적으로 편안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자, 가족과의 식사시간이 많아졌다.


전에는 집에 돌아와도 같이 밥 먹자는 부모님의 권유에, "그냥 혼자 좀 쉬다가 알아서 챙겨 먹을게"라고 말하면서 거절했다. 하루 종일 사람들 사이에 껴있다 보니 저녁에는 아무랑도 얘기하지 않고 혼자 쉬고 싶었다.


지금도 물론 나는 혼자 밥 먹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먹을 때만 느껴지는 감정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밖에서 밥을 먹거나 집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 풍요롭게 먹었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 부족함을 더 많은 음식으로 메우거나 술로 채운다. 그런데 가족과 함께 밥을 먹으면 뭔지 모를 '풍족감' 때문에 한 끼를 먹어도 배가 더 부르다. 나누면 더 커진다는 옛말처럼, 밥도 가족과 함께 먹으면 더 꽉 들어찬다.




'식구'란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집에서도 밥을 따로 먹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어쩌면 '함께' 먹는다는 것이 이제는 낡은 사고가 된 시대일지도 모르겠다. 눈을 잠깐 딴 대로 돌리면, '혼자'라는 키워드가 자주 보인다. 혼밥, 혼술, 혼공, 혼코 등 이젠 더 이상 혼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는 집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혼자 밥을 먹는 것처럼,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혼자만의 식사로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식구'들이 채워줄 수 있다.


혼자만의 시간도 좋지만, 달래지지 않는 헛헛함을 느끼고 있다면,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어보는 건 어떨까?

이전 03화 엄마에게 용종이 발견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