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들 모두 가슴 졸였던 시간
올해 초 아버지와 함께 건강검진을 다녀오신 엄마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번 건강검진에서는 대장 내시경까지 진행했는데, 거기서 혹이 발견됐다고 했다.
며칠 뒤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다시 병원에 방문해 검진 결과를 문의하러 가셨다. 의사가 말하는 소견을 쉽게 요약하자면, 장에 용종이 있는데 이게 아직 작아서 악성이 될지 아닐지 판단이 불가한 상태라고 했다. 아버지 역시 용종이 발견됐지만, 악성은 아니라 제거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의 용종은 본 병원에서 정확한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단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집에 돌아오신 엄마는 애써 침착하시며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늙어 가는 거야... 이제부터는 엄마도 병과 하나씩 싸워가면서 사는 거야. 그런데 또 이런 삶에 적응해야지 그냥 절망만 하고 있을래?”
다음날부터 아버지는 큰 대학병원을 알아보고 계셨다. 다행히 사촌 형과 형수님이 대학병원 의사라서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의를 소개해주셨다.
아버지는 제대로 된 검진을 받기 위해 건강검진을 받았던 곳에서 영상/사진 자료와 결과서를 갖고 엄마와 함께 대학병원에 찾아가셨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부모님이 돌아오셨다.
“엄마 악성 질환 아니래!”
엄마는 현관문에 들어오시자마자 결과를 알려주셨다. 큰 대학병원이다 보니 자세히 검진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하셨다. 전문의가 쭉 보더니, 악성은 아니고 아마 건강 검진했던 병원에서 제거하기 어려워서 지켜보자고 했던 것 같은데, 여기서는 바로 제거가 가능하니 빨리 제거하자고 했다 하셨다. 지켜보기 위해 몇 년 기다리면 오히려 더 악성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해서, 부모님은 시술 날짜까지 받아 오셨다.
한 달 뒤, 부모님은 차례로 용종을 떼어내셨다. 특히 엄마는 용종이 얇고 분포가 넓어 시술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웠다고 하셨다. 그래도 시술은 두 분 다 무사히 끝마쳤고, 엄마는 천공의 위험이 있어 일주일 정도 더 지켜보자고 하셨다. 그렇게 일주일 뒤 엄마는 병원에서 시술이 잘 마무리됐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연초부터 심란했던 우리 가족은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주, 아버지는 엄마를 위해 장어를 사 오셨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엄마는, 오랜만에 걱정 없이 이렇게 기분 좋게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하셨다.
“엄마도 처음에는 철렁했는데, 적응하려고 했어. 그래도 이렇게 잘 마무리되니까 좋네”
그리고 덧붙여 이야기하셨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늙어 가는 거야. 없던 병이 하나씩 생기고, 그거랑 싸워가면서 남은 인생 사는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이런 일이 있더라도 너무 절망하지 말고, 그렇다고 안도하지도 말고 같이 적응해 나가면 되는 거야!”
늙으면 병에 걸려 죽어가는 게 생로병사의 인간이라고 하지만, 이런 일이 닥치기에는 엄마는 아직 젊다고 생각했다. 그런 엄마는 이번 일을 계기로 나에게 조금 더 단단해지라고 말씀하신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술에 취해 어린애처럼 엄마의 허리를 꼭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