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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음 May 23. 2021

모두가 외출한 후, 엄마는 어떤 일과를 보내고 있을까?

퇴사 후 알게 된 엄마의 하루

모두가 출근하는 시간이 지나면, 집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나는 어느새 퇴사한 지 1년이 넘었다. 퇴사 직후에는 과연 내가 시간낭비 없이 앞으로 계획했던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염려했지만, 지금까지 큰 무리 없이 잘 보내고 있다. 사춘기 이후 인생 최대의 혼란기를 극복하기 위해 작년에는 100권의 책 읽기를 목표했고, 올해는 이를 바탕으로 브런치에서의 나만의 글 쓰기를 목표로 했다. 이 브런치를 통해 알 수 있겠지만, 다행히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 기간이 1년 넘게 걸렸다. 그동안에 내가 가장 많이 시간을 보냈던 곳은 ‘우리 집’이다. 코로나로 인해 밖을 나갈 수 도 없었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데 집만큼 편한 곳도 없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면, 왔다 갔다 하면서 자연스럽게 엄마의 집안일을 거들 때가 많아지고 대화를 나눌 일이 많아진다. 그렇게 우연한 기회에, 나는 모두가 외출한 집안에서 엄마의 하루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게 됐다.




한마디로 말해서 엄마의 하루는 쉴틈이 없다.


엄마의 하루는 아침 7시부터 시작된다. 일어나서 세면을 하시고 옷을 갈아입은 후, 혹시 모를 누나의 아기 등원 SOS 요청을 기다리신다. 만약 누나가 SOS 요청을 하면 8시까지 누나네 집으로 가신다. 그렇게 아이를 깨워 9시에 등원을 시키면, 이제 엄마의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된다.


아버지의 건강검진 결과가 나쁘게 나온 이후, 엄마는 최대한 건강하게 아버지의 식사를 만들기 위해 마트에 장을 보러 가신다. 가서 ‘밥이나 면 대신 식사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식품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시면서 두부, 곤약, 버섯, 비건 라면 등을 사서 오신다.


그렇게 되면 벌써 11시를 향해간다. 12시쯤 집에서 식사를 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엄마는 그때부터 아빠의 식사 준비를 시작하신다. 서둘러 건강식 한상을 만들면 금세 아버지가 들어오셔서 식사를 하신다. 이후 엄마와 내가 밥을 먹는다. 먹은 걸 처리하고 설거지를 하면 어느새 1시 반에서 2시가 된다.


이후 밀렸던 빨래, 청소 등을 하시고 먹을 밑반찬 등을 만들면 어느새 3시가 넘어간다. 이때부터 손주 하원 시간인 4시까지, 엄마에게 한 시간 정도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


잠시 눈을 붙이고 4시가 되면, 엄마는 나와 함께 아이를 하원 하러 간다. 잠깐 아이랑 돌아다니면서 바깥 구경을 하고 누나네 집으로 들어가면 5시가 된다. 그때부터 아이는 내가 보고, 엄마는 누나네에 밀려있는 아이 옷 빨래, 젖병 소독 등을 하신다. 그렇게 육아를 마치면 저녁 7시가 된다.


집으로 온 엄마는 다시 저녁을 만들기 시작하신다. 그렇게 가족이 저녁을 먹으면 8시. 재빨리 정리하시고 나와 함께 운동을 갔다 오면 어느새 시간은 밤 10시가 된다.


이렇게 운동까지 끝내고 씻으면 엄마의 하루가 마무리된다. 이후에는 드라마를 보시거나 예능을 보시면서 꾸벅꾸벅 졸다가 수면을 취하신다.




엄마의 하루 일과를 제대로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쭉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고등학생 때 까지는 학교에서 늦게까지 있어서 몰랐고, 대학교 때는 수업에, 알바에, 대외 활동에 밖으로 돌아다니기 바빴다. 또 취직 후에는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오다 보니, 엄마가 하루 종일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가 없었다.


회사를 다니던 때, 연차를 쓰고 집에 있으면 종종 ‘집에서 집안일이나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1년 넘게 옆에서 엄마의 집안일을 지켜본 결과, 집안일을 우습게 봤던 나의 생각을 고쳐 먹었다. 집안일은 상당한 인내를 요한다. 일은 시작과 끝이 있고 성과가 드러나지만, 집안일은 잘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못한 것은 티가 나고 꼭 누군가 잔소리를 한다. 예를 들어 육아 중 잠시 다른 일을 하는 사이 아이가 다쳤다거나, 깜빡하고 행주를 삶지 않아 식탁에 우유 썩은 내가 나면, 우리는 콕 집어서 얘기를 한다. 이런 게 하나하나 쌓여 스트레스가 된다.


이전에는 ‘집’이라는 안식처는 그 자체로 안도감을 주는 곳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의 하루하루를 지켜보며, ‘집’이라는 곳이 주는 안도감은 어쩌면 엄마의 손길이 모든 곳에 닿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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