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좌석버스를 신기해했다.
지난주 엄마와 함께 서울 삼성병원에 다녀왔다. 엄마의 친한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함께 장례식장에 갔었다. 원래는 엄마 혼자 갈 계획이었지만, 우리 집에서 삼성병원까지 가는 길이 복잡하기도 하고, 늦은 저녁에 가는 거라 걱정이 돼서 내가 같이 가자고 했다.
경로를 알아보니 2대의 광역버스를 환승해서 타고 가면 됐다. 다행히 예전 회사 가는 길이라 눈에 익은 길이였다. 나갈 시간이 돼서 엄마와 함께 버스 정류장으로 갔는데, 버스 줄에 서있는 나와 달리 엄마는 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엄마! 뭐해? 여기 와서 줄 서야지!"
"응? 여기서 기다리는 거 아니야?"
"아니야~ 줄 서서 차례로 가야지!"
"아... 엄마는 그건 몰랐지!", 엄마는 웃으면서 말했다.
곧이어 우리가 기다리는 버스가 왔고, 평소처럼 카드를 찍고 앉았다.
"엄마. 벨트 매야지"
"벨트? 벨트가 어딨어?"
"여기 엄마 뒤에 있네"
"근데 이게 왜 나오질 않냐?", 엄마는 버클에 넣어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안전벨트를 풀지 못했다.
"아이고 엄마! 이걸 풀고 넣어야지!"
"내가 이런 걸 요새 타봤어야 알지!", 엄마는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앉아서 한참을 가고 있던 도중, 엄마가 물었다.
"이건 또 뭐니?", 엄마는 각 좌석마다 설치돼있는 충전단자를 가리켰다.
"아~ 이거 스마트폰 충전하라고 설치해놓은 거야. 요새는 핸드폰 배터리가 다들 부족하잖아"
"이야~ 세상 좋아졌다. 에어컨도 일반 버스보다 빵빵하고, 충전까지 해줘? 여기가 우리 집보다 낫다, 야"
이후 엄마는 버스가 정말 좋다며 여기저기 더 구경했고, 버스 구경이 끝나자 창 밖을 구경하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정말 집에 있는 것보다 낫다"
이후 한 시간을 달려 서울 삼성병원에 도착했다.
엄마는 예정대로 친구를 만나 조문을 드렸고, 엄마 친구분께서는 이런 시국에 와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식장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인사를 드리며 나왔다.
다시 버스를 타러 함께 버스 정류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엄마, 버스 타고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니까 힘들지?"
"아니? 전혀! 아까 말했잖아! 집 보다 버스가 더 좋은 것 같다니까! 앉아있지, 에어컨 틀어주지, 좌석 편하지, 충전도 시켜주지. 지금 집에 있어봐라. 더워서 잠도 제대로 못 잔다"
"진짜 괜찮아?"
"아! 좋다니까! 몇 번 말해!"
그렇게 말하고 엄마는 이제 능숙하다는 듯이 버스 카드도 잘 찍고, 벨트도 잘 풀어서 앉았다. 버스가 분당 쪽으로 빠져나갈 때쯤, 엄마는 다시 나지막하게 말했다.
"엄마도 옛날에 분당 자주 왔었는데..."
엄마는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창문 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엄마는 언제부터 외출이 뜸해졌을까?
나에게는 너무 당연한 좌석버스에 에어컨과 충전기. 엄마의 세월은 그걸 알아차릴 새도 없이 흘러간 걸까?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봤다. '엄마의 마지막 외출이 언제였을까? 식재료를 사러 마트에 가거나, 손자를 보러 나가는 '외출' 말고, 정말 누군가를 만나러 '외출'하러 간 게 언제였을까?' 쉽사리 생각나지 않았다.
종종 엄마랑 집 앞에서 바로 직행버스를 타고 서울 구경을 했으면, 엄마가 이렇게까지 신기해하지 않았을 텐데... 그동안 내가 엄마에게 신경을 많이 못 썼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는 별 것도 아닌 외출이었지만, 엄마에게는 특별한 외출이었다.
앞으로 시간이 나면 엄마와 함께, 동네 이마트나 시장 말고, 좌석버스 타고 서울도 다녀와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