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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r 24. 2024

CROSSROADS

《암스테르담, 이안 맥완》 직조된 환상의 교차로

[AMSTERDAM, WOVEN FANTASY OF CROSSROADS] 2024. 3. 24. OPEN-AI DALLE·3 & RETOUCHING Design by CHRIS



"Two friends who met here and embraced are gone, Each to his own mistake."

"두 친구가 여기서 만나 포옹하고 사라졌네, 각자의 실수를 안고."

교차로 Crossroads, 위스턴 휴 오든 Wystan Hugh Auden



시(詩)는 미완의 역사적 경험과 선지적 예감을 함축하고 있다. 스스로 겪지 않은 직관으로도 충분히 앞선 세계를 바라보는 능동성과 투명함을 지닌다. 이안 맥완(Ian McEwan)암스테르담(Amsterdam), 첫 장에 등장하는 오든의 인용 시를 읽고, 등장인물 두 명의 말로를 점쳤다. 탄탄하게 써 내려간 소설의 기간구조가 쉽게 무너져버렸다. 맥완이 말한 창의적인 자들의 가면, 특히, ‘변덕스러운 침묵, 우울증, 만취가 고도의 의미를 지닌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려고 애를 쓰는’ 한 소설가의 평범한 재능이 첫 판부터 산통을 깬다.


“이거 너무 쉽군.”


하지만 단정하긴 이르다. 복날의 보신음식을 못 먹은 듯이 비틀거리기만 하는, 의지가 허약하며 삶에 찌든 남자들을 보라! 다 자랐어도 엄마의 품이 그리워 발버둥 치는 아이처럼, 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창녀보다는 싱싱한 돼지고기를 잘 고르던 침착한 손길의 여자, 고급시트의 까슬거린 감촉보다 더 깔깔한 음성을 가진 매력적인 한 여자를 공유한 시간이 생의 클라이맥스라 생각하는, 끈끈하고 편집증적인 환상에 매달린 남자들의 성채(城砦)가 서서히 몰락해 가는 과정을 추적할 단서들이 즐비하다.


몰리의 남자들.


"일상에서 쓰는 단어를 천천히 잃어버리고 남편의 통제에 무너진 그녀, 아름다웠다."


식당비평가이자 사진작가인 마흔여섯 살 여자의 죽음에 헌사된 남자들의 회상이 시작된다. 가련한 한 마리 짐승처럼 자각 없이 뇌사로 마무리된 2월의 매서운 추위는 흩어진 네 명의 남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다. 정부(情夫)라고 말하는 게 나을 것이다. 통정에 사로잡힌 심약한 두상들의 우두머리 격인 남편이자 출판 제작자 조지, 매수가 갈수록 하락하는 일간지 편집장 버넌, 천재작곡가 클라이브, 외무장관 가머니. 남성적 세계의 승리란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상징적인 기호를 누가 소유하는지 판명하는 권력투쟁처럼 보인다.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자들의 활인(活人)적 세계는 독특한 의견과 부유한 재산을 가진 것만으로 최후의 미소를 지을 수 없다.


"붙잡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어떤 사람에 대한 메마른 갈망"


살아있는 시신경은 죽은 자와 함께 한 기억을 미화시키곤 한다. 확장 시프트를 밟고 계단에 서 있는 형상을 잡기 위해 날조된 소통을 직조하는 것은 얼마나 참혹한 두려움인가. ‘리듬, 화성, 멜로디’ 삼계의 조화로 존재하는 호모 뮤지쿠스(Homo Musicus)의 협화음에 내재한 불협화음의 실상은 스스로의 허상에 빠져 잃어버린 꿈에 강탈당하는 인본주의를 보여준다.


부재(不在)란, 에디터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종말을 그리는 상투적인 회화일지도 모른다. 위쪽 팔이 화들짝 뜨거워질 때 열락을 데워내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무감각하게 남자들의 질투와 환상을 응시한다. 거짓으로 둘러싸여 마치 인생의 정당한 권리인 양 아무렇지 않게 가상의 우정을 생산하는 모습에 외마디 고개를 젓는다. 자학적인 불균형이 등장하면 허술하게 무너지는 인성의 파괴도 가소롭게 지켜본다. 깜찍한 외설스러움과 바보 같은 재미를 만들지 못하는 남자들은 쾌활하고 부드러운 여자 품에서만 태아시절 누린 자유를 재현할 수 있었던 전복된 사생활의 악성(惡性)들로 보인다. 약한 사람들은 일순간도 가까운 것에서 탈출하는 생각을 하기 싫어한다. 무엇에 조종되는지 조차 모르면서 도시의 익명성에 기대어 전문적인 작업에서의 유폐를 간절히 원하는 모습은, 가수면(假睡眠) 상태에서 일말의 진행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률보다 위태한데 말이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 것인가!



"우리는 서로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 빙산처럼 우리 모습의 대부분은 수면 아래 감추어져 있으며, 눈에 보이는 사회적 자아는 하얗고 멋진 부분만을 드러낸다." 《암스테르담, Amsterdam by Ian McEWan》



나는 길을 걸으면서도 멍하게 꿈을 꾸기를 좋아하지만 일상의 존재조차 잊게 만드는 환상은 경계한다. 끔찍하게 싫어하는 대상에 대한 점유욕, 괴벽에 가까운 편벽, 편집증의 소산은 의지로도 어쩔 수 없게 답습된다는 사실을 관찰해 왔기에 산 자에 대해서만큼은 가둔 기억으로써 형질변형된 아바타를 만들고 싶지 않다. 차라리 외면하는 게 낫다. 다만, 가상의 인물에게 쏟는 열정은 무너진 데도 흩어진 레고를 다시 쌓을 수 있으니까 안심이 된다. 개성이란 뒤틀린 종말이 끝나고 은근히 배어 나오는 조롱이런가.


주사기 속으로 꺼져가는 침묵의 공백은 두 남자의 의뭉스러운 선택에 대한 고역스러운 흥분을 이끌어낸다. 세계의 실상이 환상보다는 의도적인 환멸로 채워진 것은 아닌지 암스테르담이라는 교차점에서 한 번쯤 확인해 볼 일이다. 합리적인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왜곡된 실체는 사건의 말미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Two friends who met here and embraced are gone,
Each to his own mistake; one flashes on
To fame and ruin in a rowdy lie,
A village torpor holds the other one,
Some local wrong where it takes time to die:
This empty junction glitters in the sun.

So at all quays and crossroads: who can tell
These places of decision and farewell
To what dishonour all adventure leads,
What parting gift could give that friend protection,
So orientated his vocation needs
The Bad Lands and the sinister direction?

All landscapes and all weathers freeze with fear,
But none have ever thought, the legends say,
The time allowed made it impossible;
For even the most pessimistic set
The limit of their errors at a year.
What friends could there be left then to betray,
What joy take longer to atone for; yet
Who could complete without the extra day
The journey that should take no time at all?


친구가 여기서 만나 포옹하고 사라졌네,

각자의 실수를 안고; 한 명은

명성과 파멸이 번쩍이는 거짓 속으로,

다른 한 명은 마을의 무기력에 붙잡혀,

지역의 잘못 속에서 죽음이 오래 걸리네:

이 텅 빈 교차로가 햇빛 속에서 반짝이네.


그래서 모든 선착장과 교차로에서: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결정과 작별의 장소들이 

모험과 불명예로 이끄는지,

어떤 이별 선물이 그 친구를 보호할 수 있을지,

그의 직업이 필요로 하는 방향이

악한 땅과 불길한 방향인지?


모든 풍경과 날씨가 공포로 얼어붙지만,

전설에 따르면 아무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네, 

허용된 시간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심지어 가장 비관적인 사람들조차도 정했다네

그들의 실수에 대한 한계를 일 년으로.

그럼 배신할 친구가 또 있을까,

속죄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기쁨이 있을까; 하지만

그 누가 다시 여분의 하루 없이도

전혀 시간이 걸리지 않아야 할 여정을 완료할 수 있을까?


Crossroads, Wystan Hugh Auden


2005. 7. 14. THURSDAY




심리학적 미스터리 스릴러는 분명한 단어로 쓰이면 실망스럽다. 추적이 불가능하게 복잡하게 미로처럼 엮는다면 기꺼이 게임에 동참하겠다. 사회적 가면을 쓰고 있는 동물적인 남성들의 심리와 빼곡하게 처리된 편집증적인 시선은 그리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사라져 버린 대상 앞에서 치기 어린 경쟁의식과 한끝도 안 되는 성적인 질투에선 한숨도 나오지만, 양들의 세계를 점령하기 위해 늑대의 탈을 쓰고서 삭막한 감정으로 시간을 훌륭하게 소비해야 하는 사명을 가진 남자들에게 당면한 조급증은 스스로를 파괴하는데 무리가 없다. 도시에 걸맞게 포장된 왜곡된 사랑과 격정의 파멸은 일정한 시간이 다가오면 곧 점멸할 듯이 깜빡이는 신호등만큼이나 불안하게 신호를 보낸다. 저들이 길을 잘 건널지 말지, 주저앉을지 서 있을지, 교차로에서 조금은 멀리 떨어져 신호를 기다리는 운전자의 인내심은 꽤 길다. 길을 천천히 걷는 사람들을 한방에 밀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여유롭다.





사실 당신을 잘 모른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2013. 7. 12. FRI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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